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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감시·추방에도…민주화의 숨은 조력자 '월요모임'

입력 2019-05-14 20:45 수정 2019-05-14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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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보신 것처럼 주한외국인 단체인 월요모임이 당시 언론이 하지 못했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치부 유선의 기자와 좀 더 얘기 나누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지금 가지고 나온 것이 이른바 '팩트시트'인가요?

[기자]

그렇습니다. 1980년 5월.

[앵커]

들고 보여주시죠.

[기자]

1980년 5월 26일에 보낸 팩트시트인데 이것이 UCLA에 보관이 돼 있던 것입니다.

[앵커]

그것은 복사본이죠?

[기자]

UCLA의 이남희 한국학 교수와 5·18기념재단의 최용주 연구원이 같이 발굴한 것입니다.

[앵커]

80년 5월이면 엄혹했던 시절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내국인한테는 뭐 예를 들면 인권탄압을 했지만 외국인한테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 모양이네요?

[기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 어느 정도 좀 완화가 됐습니다.

연세의료원에서 80년 당시에 간호사로 일했던 진 베이싱어, 월요모임 회원인데 저희랑 통화를 할 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준 것이 있습니다.

일단 들어보겠습니다.

[진 베이싱어/월요모임 회원 : 한국 정부는 외국인은 고문하지 않았지만 한국인에게는 굉장히 잔인했습니다. 외국인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심한 조치는 추방 정도였습니다.]

[앵커]

70년대 초반부터 활동을 했다고 하니까 70년대 초반이면 72년에 유신이 있었죠? 그 이후 때부터 시작을 한 모양이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그때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사실 초기에 있는 것은 1968년부터 있었는데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된 것이 72년부터이고요.

그리고 규모는 50명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50명이 한 번에 모이거나 이렇게 계속 유지가 된 것이 아니고 중간중간 교체가 됐습니다.

예를 들면 74년에 2차 인혁당 사건이 있었는데 이때 화면에 나오고 있는 조지 오글 목사가 부당함을 주장을 하다가 추방이 됐습니다.

또 짐 시노트 신부도 같은 주장을 했었는데 종파를 초월해서 목사, 신부 모두 이제 월요모임 멤버로 활약을 했습니다.

당시 둘 다 추방을 당했습니다.

추방을 당하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그 자리를 이제 채우는 방식으로 됐습니다.

[앵커]

고문을 당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도청이라든가 이런 게 심했던 모양인가 봐요, 얘기 들어보니까?

[기자]

앞서 린다 존스가 얘기했듯이 서대문에서 만난다고 하면 동대문에서 만나는 식의 암호를 썼고 가명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월요모임의 멤버였고 그리고 문동환 목사의 부인인 페이 문 여사의 딸 문영미 씨가 당시 상황에 직접 가명을 사용한 내용을들은 게 있는데 들어보겠습니다.

[문영미/문동환 목사·페이 문(월요모임 회원)의 딸 : 짐 스텐츨(월요모임 회원)도 자기가 기사를 외국에서 굉장히 많이 써서 발표했는데 수많은 가명으로 발표해서 정작 한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서는 빠졌다고…]

[앵커]

이렇게 어렵게 정보를 모아서 외국에 보낼 때는 군사우편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 군사우편은 어떻게 사용이 가능했는지도 궁금하네요.

[기자]

이제 방금 보신 문영미 씨의 어머니 페이 문 여사가 당시 미군부대에서 상담관으로 활동했습니다.

하다 보니까 미군 쪽의 접촉이 가능했고 군사우편을 좀 사용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군사우편 외에 외교행낭도 사용했었는데 미국으로 주로 이제 소식을 보내다 보니까 미국으로 가는 인편하고 우편이 중간에 이제 차단을 많이 당했습니다.

검열을 당하니까 그다음에는 우회로로 일본을 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에 있는 선교사나 인권운동가들에게 가는 과정에서 힌츠페터에게도 광주의 소식이 전달이 됐던 것이고 일본이 막힌 다음에는 토론토, 캐나다라든가 독일, 영국, 스위스 이런 곳의 선교사, 인권운동가들이 이제 월요모임과 함께 활동을 한 것입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이것이 전부 왜 UCLA에서 발견됐다고 하는데 왜 그 대학에서 나왔을까요?

[기자]

월요모임의 회원이고 미국에서 월요모임에 보낸 팩트시트를 받아본 패리스 하비 목사가 1995년에 UCLA도서관에 기증을 했습니다.

1984년부터 시카고에서 아까 보신 린다 존스와 함께 시카고에서 인권운동을 했던 UCLA의 이남희 한국학 교수의 설명을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이남희/UCLA 교수 (린다 존스의 동료) : 그때 단체들의 성격이라는 것이 굉장히 열악한 상황에서 교회 건물 하나, 지하실이기 때문에 너무 눅눅하고 또 비가 왔을 때는 비가 새고… 그동안 모아놓은 자료들을 보관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죠.]

[앵커]

그렇게 해서 이런 상황이 됐다, UCLA로. 여기까지만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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