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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2분…그 후 '5년의 기억'

입력 2019-04-16 21:11 수정 2019-04-16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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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팽목항에 나가 있는 서복현 기자를 다시 연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서 기자는 참사 당시 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팽목항을 찾은 바가 있습니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까지 듣고 팽목항에서의 진행을 서복현 기자에게 맡기겠습니다.

[서복현 기자]

네, 저는 세월호가 가라앉은 직후 3개월간 취재를 했었고, 세월호 참사 100일, 그리고 2014년 마지막날, 1000일, 그리고 4주기 때도 팽목항에 왔는데요. 그때마다 이 곳 방파제의 빛 바래가는 노란색 리본들이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줬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 옆에는 새로 묶인 노란색 리본들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렀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세월호를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줬습니다.

오늘(16일) 팽목항을 찾은 시민들 역시 지난 5년의 시간을 기억하면서 희생자들을 추모했습니다. 진도 앞바다에서 희생자들이 돌아오기를 하염없이 바라던, 기다리던 가족들의 절규, 세월호를 하루빨리 끌어 올려 미수습자를 찾아달라는 호소…

JTBC 카메라에 담긴 지난 5년의 순간을 신아람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신아람 기자]

<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2분 최초 신고 >

아이들은 기울어지는 배 안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고 박수현 군 (휴대전화기 영상) : 야, 구명조끼 입어. 너도.]

친구 어머니에게 '별일 없을 것'이라는 문자도 보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희망을 저버린 구조 작업은 결국 수습 작업이 돼버렸습니다.

< 참사 300일째 거리로 나선 유족들 >

참사 300일째 거리로 나선 유가족들은 선체를 온전히 인양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몇 번에 걸친 인양 실패, 가족들은 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인양 작업을 지켜봤습니다.

< 2017년 3월 31일 세월호 인양 >

2017년 3월 31일, 105km를 이동해 목포신항에 다다른 세월호.

옆으로 누운 채 뭍으로 들어선 모습이 참담합니다.

진흙을 맨손으로 걷어내며 뼈 한 점씩을 거뒀습니다.

그렇게 미수습자 4명이 돌아왔습니다.

< 2017년 11월 18일 미수습자 가족 '수색 종료' >

하지만 그 해 11월 18일, 미수습자 가족들은 결국 세월호 곁을 떠났습니다.

[미수습자 가족 (2017년 11월) : 남현철 학생, 박영인 학생, 양승진 선생님, 권재근님, 권혁규님 이 다섯 사람을 영원히 잊지 말아주십시오.]

< 2018년 5월 10일 세월호 직립 >

2018년 5월이 돼서야 선체는 바로 섰습니다.

참사 5년이 흐른 지금, 왜 제대로 구조하지 않았는지, 그 의문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영상디자인 : 오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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