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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유물로 상상해본 '천년 왕국'…1600년 전 신라의 삶

입력 2019-04-02 21:30 수정 2019-04-02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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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000년 왕국, 신라 왕성이 위치한 경주 월성 유적지입니다. 여기서 발굴된 씨앗과 열매를 토대로 상상해서 그린 1600년 전, 옛 모습은 이렇습니다. 성 주위를 둘러싼 도랑에는 멸종위기종 '가시연꽃'이 자라고. 성 너머에는 느티나무, 참나무, 소나무 숲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여기서 작은 나무 배도 나왔고, 온전한 방패도 발굴돼서 신라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헤아려보게 합니다.

권근영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기자]

어촌 풍어제에는 작은 배에 불을 붙여 바다로 띄워 보내는 띠뱃놀이가 빠지지 않습니다.

마을의 나쁜 기운을 떠나 보내고 물고기를 많이 잡게 해달라는 의미인데, 1600년 전 신라 시대에도 제사에 모형 나무 배를 쓴 흔적이 나왔습니다.

1000년 신라의 타임캡슐인 경주 월성 유적지, 옛 왕성터 주위를 둘러싼 도랑에서 작은 나무배가 출토됐습니다.

40cm 정도의 이 모형 배는 뻘에 묻혀 공기와의 접촉이 차단된 덕분에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5세기 전후 만들어져,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모형 배.

당시 신라인들이 타던 배의 9분의 1 크기입니다.

정교한 모양에 불에 그을린 흔적도 있어 왕실의 제사에 사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최문정/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사 : 물에 배를 흘려보내면서 어떤 의례를 했을 것으로, (의례에는) 왕실과 관련된 염원이 들어 있지 않을까.]

궁궐터에서는 나무 방패도 두 점 나왔습니다.

표면에는 동심원 무늬를 그렸고, 잡기 편하게 손잡이도 달았습니다.

고구려 안악 3호분을 비롯한 고분 벽화로만 볼 수 있었던 방패의 온전한 모습이 처음 확인된 것입니다.

나무판에 글을 적은 문서, 즉 목간에는 곡물의 수량을 기록했는데 1, 3, 8 같은 숫자는 위조를 막기 위해 획수를 늘린 한자를 쓰기도 했습니다.

반달 모양이라 '월성'이라 불리는 신라의 왕궁, 1600년 전 사람들은 여기서 작은 배를 띄워 보내며 무엇을 기원했을까.

오랜 세월을 버틴 유물은 신라인들의 삶을 넌지시 알려주며 여러 상상을 불러내고 있습니다.

(영상디자인 : 김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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