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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두환, 21일 낮 헬기 타고 광주 와…움직일 수 없는 사실"

입력 2019-03-14 21:40 수정 2019-03-14 23:55

5·18 당시 미군 정보요원…39년 만의 '첫 증언'
"광주 전투비행단서 모여 회의…발포명령 정황 뚜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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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미군 정보요원…39년 만의 '첫 증언'
"광주 전투비행단서 모여 회의…발포명령 정황 뚜렷"


■ 인터뷰의 저작권은 JTBC 뉴스에 있습니다. 인용보도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방송 : JTBC 뉴스룸 (20:00~21:20) / 진행 : 손석희


[앵커]

지금부터는 앞서 1부에서 예고해 드린 대로 5·18 당시 광주에서 미군 정보요원으로 일했던 김용장 씨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겠습니다. 한국분이지만 당시에 미군에서 일을 했던 것입니다. 잠시 후에 방송되는 저희 스포트라이트팀에서 이분을 수소문해서 만났는데 5·18 이후에 한 번도 언론과는 인터뷰를 한 적이 없고 오늘(14일) 그러니까 39년 만에 처음으로 JTBC를 통해서 증언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에 알려지지 않았던 놀라운 내용들이 있는데요. 물론 이분의 증언이고 이것을 좀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사가 더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김용장 씨는 남태평양 피지에 거주하고 있는데 따라서 전화로 연결해야 되는 상황입니다. 김용장 선생님 나와 계시죠?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네, 안녕하십니까? 손석희 사장님, 반갑습니다.]

[앵커]

반갑습니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우선 감사드리고요. 당시에 미군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던 것인가요. 미군 정보요원으로 활동했다고 제가 소개는 해 드렸는데요.
 
  • 5·18 당시 미군 정보요원, 어떤 일을 했나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그렇습니다. 제가 광주에서 근무를 했었는데요. 미국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정보를 입수해서 보고를 했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광주민주화운동이 진행되던 그 기간 동안에 계속 미국 당국에게 그러니까 본국에 정보를 전달한 그런 역할을 하셨다는 말씀이신가요?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그렇습니다.]

[앵커]

대개 어떤 내용을 보고하셨습니까? 혹시 기억이 잘 나실지 모르겠는데.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광주항쟁 기간 동안 일어났던 모든 보고를 입수해서 보고를 했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그것이 대표적으로 어떤…인터뷰를 풀어가도록 하죠, 그러면. 제가 듣기로는 그렇게 보고를 해서 매우 중요한 보고를 했다는 것으로 표창도 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무튼 알겠습니다. 제가 가장 지금 궁금한 것은 저희가 1부에서 보도를 해 드렸지만 5월 21일에 그러니까 1980년 5월 21일에 전두환 씨가 광주를 찾은 것으로 증언을 해 주셨는데 이건 지금 39년 동안 계속 전두환 씨는 그날, 즉 광주민주화운동이 진행되던 그 기간 동안에 광주를 가지 않은 것으로 돼 있기 때문에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게 굉장히 중요한 그런 증언이 됩니다. 그 당시 상황을 좀 전해 주시겠습니까?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전두환 씨가 그 당시 5월 21일 낮. 그러니까 한 점심시간쯤에 헬기를 타고 광주에 왔습니다.]

[앵커]

헬기를 타고?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그렇습니다. 이미 거기에 와서 대기하고 있었던 정호용 특전사령관, 505보안부대장 이재우 대령 그리고 또 한 분이 계셨는데요. 그분이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마는 그분들이 전투비행단장실에서 만나서 어떤 회의를 했고 그리고 거기서 사살명령이 하달됐다고 그렇게 보고를 했습니다.]

[앵커]

사살명령이요?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그렇습니다. 이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전두환 씨가 헬기로 서울로 돌아간 이후에 바로 광주도청 앞에서 집단 발포, 사살행위가 이루어졌었습니다. 그런 걸로 봐서 거기서 전달이 됐다고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앵커]

물론 그것이 어떤 근거자료가 있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고 거기서 사살명령이 있었다. 다시 말해서 발포 명령이 있었다는 것은 김용장 선생님의 추측이죠?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아니, 추측이 아니고 이미 저는 그걸 보고를 했기 때문에 이미 모든 정황으로 봐서 그 일이 있었습니다.]

[앵커]

그런데 그게 미군 당국에 그 내용을 보고를 하셨다는 말씀이신가요?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그렇습니다.]

[앵커]

미군 당국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미국 당국의 어떤 반응은 없습니다. 우리가 보고서를 내면 그 보고서가 우리 본부로 올라가고 그 본부에서 우리 INSCOM이라고 정보보안사령부 그쪽으로 보내면 거기서 다시 미 국방본부로 와서 일부는 CIA로 들어가고 일부는 백악관으로 들어가고 이렇게 해서 거기서 배포가 됩니다.]

[앵커]

그런데 이건 여러 가지 좀 따져봐야 될 문제인데요. 왜냐하면 그렇게 된다면 근거자료가 기록으로 남아 있을 것이고, 그러니까 보고 내용이. 그건 지금 공개가 안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조사를 통해서 그것은 확인을 해 봐야 되는 문제인데. 일단 여기까지만…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그건 얼마든지 그건 확인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헬기가 출발을 하면 기록이 남습니다. 그것을 갖다가 Flight Plan이라고 해서 비행계획서라는 게 있습니다. 전두환 씨가 헬기를 타고 어디로 출발했다고 하면 비행계획서. 영어로 말하면 Flight Plan인데요. 그건 절대 남게 돼 있습니다. 그건 도착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걸 따져보면 바로 나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지금 두 가지를 말씀해 주셨는데요. 5월 21일 점심경에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 그리고 505보안부대장인 이재우 대령 등이 모여 있는 광주전투비행단장실에서 전두환 씨가 도착을 해서 있었고 아마도 거기서 발포명령을 한 것이 아니냐라는 말씀을 해 주셨는데 그것을 미군 당국에 보고를 해 주셨다고 했는데 그건 사실 지금 저희한테 어떠한 근거자료가 있지는 않기 때문에 일단은 이 시간에는 김용장 씨의 주장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좀.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아닙니다. 이건 내 주장이 아니고 우리 정보원을 통해서 받은 정보를 보고를 한 것입니다. 나는 지금 앞으로 어떤 얘기를 해도 제가 개인적인 추측이나 제 의견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제가 보고했던 내용만을 제가 얘기를 합니다.]

[앵커]

그렇습니까? 그러면 거기서 발포 명령이 있었다는 것은 어떻게 취득을 하셨습니까?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그 정황으로 봐서 그렇습니다. 그분이 전두환 씨가 서울로 귀환한 뒤 바로 발포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앵커]

그것도 정황이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아까 그렇게 말씀을 드렸던 거고요. 일단 알겠습니다. 21일에 전두환 씨는 당시에 용산에서 있었던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주장이고 그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건 어떻게 할까요? 그러니까 오전 11시에 서울 용산구 국방부회의에 참석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고 그것으로 지금까지 광주에 내려가지 않았다라는 것의 근거로 삼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습니까, 그러면?
 
  • '5월 21일 국방부 회의 참석' 기록 어떻게 보나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저는 그 기록을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광주에 왔다는 사실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건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건 본 사람들이 있습니다.]

[앵커]

본인이 혹시 직접 보셨습니까?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우리 사무실과 단장실과의 거리는 약 1km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연락을 받았습니다.]

[앵커]

누구에게 연락을 받으셨습니까?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우리 정보원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앵커]

당시의 정보원이 직접 보고 그러면 연락을 했다는 얘기인가요?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그렇습니다.]

[앵커]

그 정보원은 지금 생존해 계십니까?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지금 살아계실 겁니다.]

[앵커]

연락이 되는 건 아니겠죠, 물론.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물론 연락은 안 됩니다.]

[앵커]

저희가 1부 리포트할 때 21일 오전 11시에 서울 용산 국방부 회의에 참석했다는 그 기록에만 유독 이상하게 전두환 씨가 참석했다고 기록이 남아 있다. 그 전후의 다른 모든 회의나 아니면 모임 같은 데에 아니면 행사에 전두환 씨가 참여했다라는 것은 이름이 그렇게 적혀 있지 않은데 21일에 그 회의에만 참석했다고 유독 써 있는 것 자체가 사실 좀 의심스러운 것이다라는 내용은 보도를 해 드렸습니다마는 지금 말씀하신 내용은 어찌됐든 21일에 국방부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광주에 전두환 씨는 갔다. 그렇다면 같이 있었던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이라든가 505 이재우 부대장 같은 경우에 같이 있었으니까 알 텐데 이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 증언을 하지는 않고 있죠, 아시는 것처럼.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그분들이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헬기로 광주에 왔을 적에 헬기장에 착륙을 하고 거기서 단장실로 옮겼을 것 아닙니까? 그렇죠? 그러면 분명히 거기에 플라이트 플랜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걸 보면 바로 나옵니다. 헬기가 왔는지, 안 왔는지는 그쪽 서울에서 출발한 그 비행계획서하고 광주에 도착한 비행계획서 기록을 보면 바로 나옵니다. 이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물론 그것이 지금 공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저희들이 당장 그것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만 말씀을 드리고요. 21일에 대한 행적에 대해서는 지금 오늘의 증언으로 인해서 굉장히 많은 논란이 있을 것 같고요. 그에 따른 어떤 조사가 더 이루어져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하게 됩니다. 당시의 광주 상황을 직접 보신 것도 많이 있으실 테고 그렇게 해서 또 보고를 올린 것도 많이 있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떤 게 있으십니까?
 
  • 당시 광주 상황,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모든 것을 다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그 모든 것들이 하나도 잊혀지지 않고 바로 제 머릿속에 다 남아 있는데요. 그 가운데서도 제가 직접 내 손으로 만진 것이 있어요. 그리고 사무실에 가져온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곤봉이라고 하는데요. 그건 곤봉이 아니고 진압봉이라고 합니다. 그건 길이가 약 1m고 그다음에 무게가 약 10kg. 재질은 우리나라의 물푸레나무로 만들었는데요. 하드우드 굉장히 강한 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그걸로 한 대 맞은 사람들은 바로 골절이 되거나 그 피해로 인해서 나중에 치명적인 치사에 이르는 그런 무기입니다. 그걸 바로 우리 사무실에 누군가가 가져다줘서 그걸 우리 본부로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앵커]

지금 사진에 나오는 조금 전에 보여드렸던 그 진압봉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길이가 1m 된다고 하셨는데 사진 속에 있는 진압봉은 그것보다 짧아보이기는 하는데 그건 기억이 조금 다를 수도 있는 거니까요. 아무튼 대부분…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아니, 제가 직접 자로 쟀기 때문에 그건 정확합니다.]

[앵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제가 직접 쟀고 무게도 달아봤고.]

[앵커]

조금 전에 사진 속에 보여드렸던 진압봉은 지금 김용장 씨께서 말씀하신 진압봉은 아닌 것 같기는 한데. 아무튼 그렇게 재보셨다니까 틀림없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글쎄요. 오늘 굉장히 좀 뭐랄까요. 여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얘기들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이건 제가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해해 주십시오, 새롭게 증언하신 내용들은 사실은 다 검증을 해 봐야 되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저희가 일단 인터뷰에서는 김용장 씨의 주장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라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라고요.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좋습니다.]

[앵커]

그리고 북한군 개입설이 지금까지도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그건 어불성설이다라고 말씀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 '북한군 개입설' 부인하는 근거는?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그렇습니다. 소위 지만원 씨가 말하는 600명, 북한 특수군을 얘기하신 것 같은데 그 당시 때 광주는 그야말로 물 샐 틈 없이 전부 다 봉쇄가 돼 있었습니다. 해안이나 육로나 모든 것이. 그리고 그 당시 때에 미 군사첩보 위성이 광주 상공을 2시간 내지 3시간 간격으로 선회를 했습니다. 한 위성은 아주 위도가 높은 고공으로 순회했고 한 개 위성은 보다 더 낮은 위도로 했습니다. 평소에도 우리 한반도 상공을 군사 첩보위성이 항상 순회하는데요. 광주항쟁 당시에는 그 궤도를 바꾸어서 광주 상공으로 회전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지만원 씨가 주장하고 있는 600명 북한 특수군이 잠입했다는 사실은 창작적인 소설에나 나오는 얘기지 그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헬기 기총소사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는데요.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했습니다.]

[앵커]

그건 직접 보셨습니까, 혹시?
 
  • 5·18 당시 헬기 사격, 직접 확인했나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그건 5월 21일 낮에 광주 중심지에 가보면 전일빌딩이라고 있습니다. 그 주변에다 발포를 했고, 사격을 했고 그리고 나서 27일 광주천 상류 양림동이라고 거기서 했거든요. 그때 사용했던 헬기 기종이 UH-1H라고 해서 M60 기관총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보고를 했습니다.]

[앵커]

그것도 미군 당국에 보고를 했습니까?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당연히 했습니다. 저는 방금도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보고한 내용만 제가 말씀드립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역시 그에 대한 미군 쪽의 반응이라든가 이런 것들은 접수되지 않았고요.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우리 채널은 우리가 보고하는 본부는 절대 어떤 그런 의견을 우리에게 보내주지 않습니다.]

[앵커]

그렇습니까?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미국 정보기관은 다 그렇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거의 한 40년 만에 이 말씀을 처음으로 내놓으신 셈인데 그동안에는 한 번도 언론 인터뷰라든가 이런 데 응하지 않으셨습니다. 특별히 이번에 저희한테 이런 내용을 말씀하신 이유는요?
 
  • 5·18 첫 증언…결심한 이유는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지금 처음입니다. 아직까지 어떤 언론사가 저한테 인터뷰를 요구한 적도 없었고 제가 자진해서 양심선언을 한 적도 없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정보기관에서 근무하다 보면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 한국에 있는 언론기관을 저는 믿지 않습니다. 심지어 저는 JTBC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그래도 공신력이 있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언론이 바로 JTBC입니다. 그래서 JTBC가 한번 이 일을 그래도 차선책이나마 그래도 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제가 했고요. 그래도 증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광주에 대한 진상이 이루어져야지 우리가 만약에 죽고 나면 그 일을 누가 하겠는가. 지난 39년 동안에 제가 가지고 있는 십자가는 굉장히 크고 무거웠습니다. 이제 제 개인적으로도 이걸 내려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부 다 말을 하고 나니까 제 개인적으로 굉장히 마음이 그야말로 가볍고 마음이 참 편합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저희들이 뉴스 끝나고 바로 이제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가 나가는데 거기에서 거기에서 보다 더 많은 얘기를 들을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하신 내용들이 사실은 굉장히 논란에 빠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저희들이 김용장 선생님을 더 취재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용장 선생님, 고맙습니다.

[김용장/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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