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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탐대실] 립스틱, 교묘한 용량 뻥튀기

입력 2018-12-27 10:33 수정 2018-12-27 11:43

세상은 못 구해도 너의 일상은 구해줄게
작은 탐사, 큰 결실 #소탐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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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못 구해도 너의 일상은 구해줄게
작은 탐사, 큰 결실 #소탐대실

①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 http://bit.ly/2rSBtkY )
② 립스틱, 교묘한 용량 뻥튀기

 
[소탐대실] 립스틱, 교묘한 용량 뻥튀기


■ 립스틱, 표기 용량만큼 쓸 수 있나?

지난주 소탐대실은 립스틱의 '숨은 부분'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다 쓴 줄 알았던 립스틱을 까보니 케이스 안에 내용물이 더 들어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어떤 제품이 또 이런지 알기 위해 우리는 시중 제품 10개를 구입해 그 속사정을 파헤쳐봤다.

 
[소탐대실] 립스틱, 교묘한 용량 뻥튀기

[소탐대실] 립스틱, 교묘한 용량 뻥튀기

실마리는 '구멍'에 있었다. 제품 밑바닥을 보면, 아래 사진처럼 구멍이 뚫린 경우가 있다. 백충진(back filling) 방식으로 생산되면 구멍이 있는 거다. 이런 백충진 제품은 케이스 속에 많은 양의 립스틱을 숨기고 있다. 지난 편을 훑고 오면 쉽게 이해될 거다.

 
[소탐대실] 립스틱, 교묘한 용량 뻥튀기
(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 http://bit.ly/2rSBtkY )

속에 립스틱이 새것만큼 또 있다니 일단 좋다. 근데 이상한 점이 있다. 1g이 더 있든 10g이 더 있든, 속에 들어 있는 건 우리가 사용하는 부분이 아니다. 손잡이를 아무리 돌려도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근데 엄연히 이 '숨은 부분'이 표기 용량에 포함된 것 같은 의구심이 든다.

 
[소탐대실] 립스틱, 교묘한 용량 뻥튀기

지난주에 뜯어봤던 YV 립스틱이다. 보다시피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나온 부분'의 무게는 2.4g이다. 근데 제품 포장에 나온 표기 용량은 4.5g이다. 나머지 2.1g은 어디로 갔을까? 갈 곳은 케이스 속밖에 없어 보인다.

립스틱의 표기용량, 이게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그만큼 내가 바를 수 있긴 한 걸까? 다시 소탐해보자.


■ 표기 용량 = '나온 부분' + '숨은 부분'

표기 용량은 무엇을 기준으로 정해지는지 확인해보자. 전편에서 실험했던 립스틱 10종의 내용물을 꺼내 전체 용량을 측정해봤다. 여기서 전체 용량은 '나온 부분'과 '숨은 부분'을 모두 포함한, 말 그대로 케이스 안에 들어간 모든 립스틱 내용물을 말한다.

 
[소탐대실] 립스틱, 교묘한 용량 뻥튀기

[소탐대실] 립스틱, 교묘한 용량 뻥튀기

표기 용량과 전체 용량을 비교해보자. 보다시피 대부분 큰 차이 없다. 전체 용량이 표기 용량보다 조금씩 더 많긴 한데, 이건 생산 중 발생하는 오차를 감안해 내용물을 더 주입하기 때문이다.

결국 립스틱의 '나온 부분'은 물론, 케이스 속에 있어 사용할 수 없는 '숨은 부분'까지 전부 표기 용량에 포함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나도 모르게 버려진 립스틱, 얼마나 될까?

우리는 제품 겉면에 쓰여있는 표기 용량만큼 립스틱을 바른 게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적게 쓰고 있었다. 그럼 얼마나 쓰고, 얼마나 버렸던 걸까?

립스틱 10종의 '나온 부분' 무게를 측정한 다음, 각 표기 용량으로 나누어 실사용률을 계산해봤다.

 
[소탐대실] 립스틱, 교묘한 용량 뻥튀기

최하위 3개 제품은 실사용률이 60%도 되지 않는다. 절반만 쓰고 마는 거다. 제일 비싼 YV를 예로 들어보자. 표기 용량 4.5g 제품을 정가 44,000원에 구입해 '나온 부분'을 모두 썼다. 근데 YV의 실사용률은 고작 54%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23,660원어치만 쓰고 버린 게 된다. 다 써도 다 쓴 게 아닌 거다.

물론 표기 용량이 립스틱 구매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게다가 소비자들도 케이스 속에 립스틱이 '조금' 더 박혀있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래도 저 실사용률은 이해하기 어렵다.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 양의 '숨은 부분', 그리고 이것까지 모두 포함한 표기 용량.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가 없다.

왜 표기 용량을 저렇게 써놨을까? 소비자들이 오인할 수 있는 여지를 굳이 남길 필요가 있었을까?
만든 사람들은 잘 알 거다. 표기 용량의 기준은 무엇인지, 왜 거기에 '숨은 부분'까지 다 포함됐는지 말이다. 실사용률 최하위를 기록한 3개 업체에 물어보기로 했다.


■ YV 본사에 편지를 보냈다 (feat.대답 없는 너)

우리는 취재 초반부터 YV 제조사에 연락을 했었다. 본사가 프랑스에 있어 답변이 늦을까 봐 좀 서둘렀다. 그리고 답변을 받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서둘러서 이만큼 걸린 거다. 그 인내의 과정을 간략히 설명해드리자면 이렇다.

처음엔 이메일을 보냈다. 립스틱에 '숨은 부분'이 왜 많은지, 표기 용량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지 정성스럽게 질문했다. 분량만 A4 1장이 넘는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깜깜무소식이었다. 메일도 읽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본사에 전화를 걸었다. 우리 이메일을 받았느냐고 물었더니, 이메일로 문의를 받지 않는단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우편으로 보내라는 거다. 그럼 이메일 주소는 왜 공개했나.

어쨌든 못할 거 없다. 그래서 다시 질의서를 작성해 국제우편을 보냈다. 하루라도 더 일찍 도착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특급우편을 선택했다.

 
[소탐대실] 립스틱, 교묘한 용량 뻥튀기

근데 보름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배송확인을 해보면 분명 받았다는 데 말이다. 다시 본사에 전화했다. 편지가 담당 부서에 전달됐는지 물으니 알 수 없다고 한다. 하루에만 2,000통 이상의 우편물이 오기 때문에 하나하나 확인할 수 없다는 거다. 그래, 전 세계에서 그렇게 편지가 쏟아진다면 바쁜 거 이해한다. 며칠 더 기다렸다.

그래도 답이 안 왔다. 계속 기약 없이 기다릴 수가 없었다. 한국 지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이번엔 메일로 문의 내용을 달라고 한다. 보냈다. 본사 확인 후 회신하겠다는 답이 왔다. 그렇게 또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마침내 YV사 답변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처음 이메일을 보내고 37일 만이었다.


■ YV, "보이지 않아도 쓸 수 있다"

 
[소탐대실] 립스틱, 교묘한 용량 뻥튀기

답변서 내용을 보자. YV의 표기 용량(4.5g)은 크게 3가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나온다.
 A.    눈에 보이는 부분 (2.5g)
 B.    보이지 않으나 사용 가능한 부분 (1g)
 C.    보이지 않고 사용 불가한 부분 (1g)

즉 '나온 부분'과 '숨은 부분'을 모두 합친 게 표기 용량이란 말이다. 근데 좀 의아한 부분이 있다. '보이지 않으나 사용 가능한 부분', 이건 무슨 말일까? 보이지 않는 데 어떻게 사용하나. 밖으로 나와야 바르든 말든 할 거 아닌가.

 
[소탐대실] 립스틱, 교묘한 용량 뻥튀기

립브러시를 쓰면 된단다. 그럼 1g 정도를 더 바를 수 있기 때문에, 숨은 부분 중 일부는 여전히 사용 가능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나온 부분' 2.5g과 '숨은 부분' 1g을 합해 총 3.5g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YV사 입장이다. 예상하지 못한 접근법이다. 그럴 거면 살 때 립브러시도 같이 주던가. 결국 다른 도구를 또 사야 하나.
그래, 일단 그렇다 치자. 그럼 표기용량은 왜 4.5g인가? 답변서에도 나와 있듯 결국 1g은 못 쓰는 건데 말이다.

이에 YV사는 몇 개월 전 표기 용량 방식을 변경했다고 답했다. 사용할 수 있는 부분만 표기해 인쇄에 들어갔단다. 단 생산 과정 오차를 고려해 3.5g이 아닌 3.2g으로 표기된다고 한다. 새 표기 용량이 적용된 제품은 몇 주 안에 출시될 예정이다.

타이밍이 참 절묘하다. 조만간 YV립스틱을 구매할 예정이라면, 표기 용량이 바뀐 것을 확인해보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겠다. 표기 용량만큼 다 쓰고 싶다면 YV사의 조언대로 립브러시 구매도 잊지 말자.


■ 다른 국내 제조사는 어떨까?

나머지 실사용률 최하위 립스틱은 국내 제품들이다. 전화를 걸어 각 제조사에 물어봤다.

TO의 표기 용량(3.4g)도 '나온 부분'과 '숨은 부분'을 합친 거였다. 실제 사용량이 표기 용량에 한참 못 미치는 문제는 내부 건의를 통해 개선 방법을 찾겠다고 TO사는 밝혔다.

그럼 TH는 어떨까? 참고로 이 립스틱은 실사용률이 52%로 10개 제품 중 가장 낮았다. 그래서일까. TH사 담당자도 '숨은 부분'은 밀어 올리거나 립브러시로 쓴다고 한다.

이 제품의 표기 용량(4.5g)도 기준은 다르지 않았다. '나온 부분', '숨은 부분' 구분 없이 내용물 전체가 표기 용량에 들어간다. 단 생산 중 오차를 고려해 표기 용량보다 살짝 더 주입한다고 한다. 우리가 측정해보니 0.5g 정도 나온다. 이건 TH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화장품 업계의 관례라는 게 그들의 답변이다.


■ 표기 용량,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이런 표기 용량 방식은 최하위 그룹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른 제품들도 표기 용량에 '숨은 부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해외 브랜드든 국내 브랜드든, 비싸든 저렴하든 다 그랬다. 다만 그 중 눈에 띄는 제품이 있긴 하다.
앞에서 봤던 실사용률 순위를 다시 보자.

 
[소탐대실] 립스틱, 교묘한 용량 뻥튀기

보다시피 실사용률이 높은 제품은 대부분 몰딩 방식으로 생산됐다. 전편에서 이야기했듯, 몰딩 방식에 비해 백충진 방식이 립스틱의 '숨은 부분'이 훨씬 많다. 근데 표기 용량에 '숨은 부분'까지 다 포함되기 때문에, 실사용률를 계산하면 당연히 몰딩 방식 제품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근데 CH는 좀 특이하다. 상위권 중 유일한 백충진 방식이다. 어떻게 된 걸까?

앞서 우리는 표기 용량과 전체 용량을 비교했었다. 이때 CH의 전체 용량이 표기 용량보다 훨씬 많았던 거, 혹시 기억하시나? 표기 용량은 3g인데, 립스틱을 꺼내서 측정한 전체 용량은 4.6g이었다. 표기 용량보다 1.6g 더 들어있는 거다. 보통 0.5g 내외로 더 넣는 타제품보다 훨씬 많은 양이다.

 
[소탐대실] 립스틱, 교묘한 용량 뻥튀기

CH사는 립스틱의 견고함을 유지하기 위해 '숨은 부분'이 많이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대신 표기 용량은 3g으로 해 사용자가 제품의 양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단다. 그래서 표기 용량 대비 실사용률도 높았던 거다. 백충진 립스틱 중에서는 CH가 표기 용량과 '나온 부분'의 용량 차이가 가장 적었다. 어찌 보면 앞에서 YV사가 밝힌 개선 계획을 먼저 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것만 봐도 표기 용량 조정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전체 용량=표기 용량', 이 수식이 업계 관례라는 건 설득력 없는 핑계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CH가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니다. 다른 제품보다 실사용률이 높을 뿐이다. 이 제품도 표기 용량에 '숨은 부분'은 여전히 포함되어 있다.

 
[소탐대실] 립스틱, 교묘한 용량 뻥튀기

CH사는 립브러시를 사용하면 케이스 속 '숨은 부분'까지 다 쓸 수 있다고 전했다. 이쯤 되니 립브러시가 립스틱 산업의 역군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 '숨은 부분', 꿀팁이 아니라 꼼수다

립스틱 구조상 '숨은 부분'은 사용할 수 없는 곳이다. 굳이 속에 있는 걸 바르려면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구멍에 막대기를 넣어 내용물을 올리거나, 제조사의 추천대로 립브러시로 바르거나 말이다. 전자는 립스틱이 망가질 가능성을 감수해야 하고, 후자는 별도의 구매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둘 다 내키지 않는다. 표기된 용량에 대해 정당하게 값을 치르고 산 건데, 왜 저런 번거로움을 소비자가 감당해야 하나. 번거롭거나 또는 버리거나, 지금 소비자에겐 이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

천경희 가톨릭대 소비자주거학과 교수는 기업과 소비자 모두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다른 화장품에 비해 립스틱은 가격이 저렴하고 동시에 여러 개를 소유하는 특성이 있다. 그만큼 쉽게 소비하고 쉽게 버리는 제품이기 때문에, 표기 용량의 오류를 소비자가 인지하기 어렵다. 그러니 기업도 개선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다."라는 게 천 교수의 지적이다.

립스틱에 '숨은 부분'이 왜 많아야 하는지 제조사에 물었더니, 다들 공정상 필요한 부분이라고 대답한다. 알겠다. 그렇다 치자. 그럼 용량이라도 제대로 알려달라. 정확한 제품 정보를 확인하는 것, 너무나 당연한 권리이지 않나.

립스틱의 표기 용량이 바뀌어도 소비자에게 당장 큰 이득이 돌아오는 건 아니다. 아마 평소와 다를 바 없을 거다. 하지만 적어도, 속았다는 이 불쾌감은 사라지지 않을까.

소탐대실 끝.


#저희는_작은_일에도_최선을_다하겠습니다

기획·제작 : 김진일, 김영주, 박진원, 송민경

 
[소탐대실] 립스틱, 교묘한 용량 뻥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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