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입력 2018-12-22 11:57 수정 2018-12-27 17:44

세상은 못 구해도 너의 일상은 구해줄게
작은 탐사, 큰 결실 #소탐대실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트위터

세상은 못 구해도 너의 일상은 구해줄게
작은 탐사, 큰 결실 #소탐대실


①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② 립스틱, 교묘한 용량 뻥튀기 ( http://bit.ly/2AjRdC3 )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 다 쓴 립스틱, 그냥 버리면 손해?

한창 사용하던 립스틱이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손잡이를 돌려도 더 올라오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쓰레기통에 넣으려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말린다. 아직 케이스 속에 립스틱이 많이 남아 있으니 버리지 말란다.

저 속에 립스틱이 어느 정도 들어있는 건 알고 있다. 근데 그걸 쓰자고 립브러시를 따로 사자니 귀찮았다. 근데 친구 말은 다르다. 속에 남은 립스틱이 얼마나 있는지 알면 그 귀찮은 마음도 사라질 거란다.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친구가 보여준 글이다. 내 것과 동일한 YV 브랜드 제품이다. 케이스 안에 상당량의 립스틱이 들어있다. 거의 새것 수준이다. 그럼 내 것도 저만큼 들어있단 말인가? 속이 어떻게 생겼길래 저렇게 많이 들어가지?
한번 해체해봐야겠다. 손힘으로 쉽게 안 빠져서 톱질로 케이스를 잘랐다.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이만큼이나 들어있다. 이렇게나 많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건 저 YV 립스틱뿐만이 아니다. 유명한 CH 브랜드의 한 립스틱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는 이 내용이 방송까지 탔다.

케이스 안에 립스틱이 잔뜩 들어간 이유가 뭘까? 바를 때 내용물이 빠지지 않도록 지지하는 역할이 필요하겠지만,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어차피 깊숙이 있는 부분은 사용하기도 어렵다. 왜 아깝게 굳이 그러는 거지? 소탐해보자.

 
■ 사전 실험 : 주워 모은 립스틱들을 열어봤다

다른 립스틱은 어떨까? 전부 다 사서 열어보는 거 말고는 뚜렷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겐 (금전적) 한계가 있지 않나. 그래서 주변에 립스틱을 동냥하게 됐다. 다 바른 립스틱, 안 쓰는 립스틱은 소탐대실에 버려달라고 했다.
덕분에 다양한 색상, 제형, 브랜드 립스틱들이 모였다. 이들을 하나하나 열어봤다.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전부 케이스 속에 립스틱이 더 들어있긴 하다. 하지만 앞에서 봤던 것처럼 눈에 띄는 경우는 없었다.
그럼 YV, CH 이 브랜드의 제품들은 다 그런가? 그건 아니다. YV 브랜드 중 다른 종류의 립스틱은 속에 내용물이 얼마 안 됐다.

헷갈린다. 아무래도 새 제품을 직접 열어보는 게 좋겠다. 그 전에 립스틱 구성을 아주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케이스 내부에 홀더가 있다. 립스틱 내용물을 담는 접시 같은 역할을 한다. 손잡이를 돌리면 이 홀더가 올라가면서 립스틱이 바깥에 노출되는 거다. 근데 립스틱이 전부 다 밖으로 나오는 건 아니다. 일부만 밖으로 나오는데, 이 ‘나온 부분’이 우리가 실제로 사용하는 부분이다. 나머지 ‘숨은 부분’은 손잡이를 끝까지 돌려도 케이스 안에 계속 머물러 있다.

 
■ 1차 실험 : 백화점 인기 제품들을 뜯어봤다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화제의 YV와 CH 둘 다 백화점 인기 제품들이다. 여기에 또 다른 인기 제품 MA까지 더해 구입했다. 케이스를 열어 속 상황을 살펴보자. 사자마자 톱을 들자니 마음이 아프지만, 별수 있나.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예상대로 YV와 CH는 안에 ‘숨은 부분’이 꽤 많았다. ‘나온 부분’과 비슷해 보인다. MA도 ‘숨은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앞선 두 제품에 비하면 적다. 이들의 용량은 얼마나 될까?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두 제품은 ‘나온 부분’과 ‘숨은 부분’의 용량이 비슷하다. 립스틱 절반을 차지하는 거다. 왜 이 둘만 이렇게 많이 들어있을까? YV와 CH의 제형이 묽어서 그런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다. ‘숨은 부분’의 용량이 적었던 MA만 셋 중 유일하게 매트한 제형이다.

하지만 사전실험에서 살펴봤던 묽은 제형의 다른 립스틱은 ‘숨은 부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무르기 자체가 ‘숨은 부분’의 양을 결정하는 직접적 요인이 되는 건 아닌 듯하다.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혹시 케이스 디자인 때문인가? 정면에서 보면 CH와 YV는 기둥 윗부분이 사선으로 마무리됐다. MA는 일직선이다. 기둥 끝이 사선인 제품들이 내부 용량도 많은 건 아닐까?

 
■ 2차 실험 : 디자인이 비슷한 것들을 뜯어봤다

로드샵부터 드럭스토어까지 주요 화장품 매장들을 돌아봤다. YV, CH처럼 기둥 끝이 사선으로 처리 된 제품들이 꽤 있었다.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앞에서 그랬듯이 이들도 뜯어보고 ‘숨은 부분’ 양을 확인했다. 케이스가 견고해 립스틱이 쉽게 빠지지 않는 제품은 긁어 파서 측정했다. 그에 따른 무게 오차는 감안하고 결과를 보자.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분명 겉보기엔 비슷한 제품들이었는데 속사정은 제각각이었다. TO는 ‘숨은 부분’ 용량이 꽤 됐다. YV, CH와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반면 IO와 LO는 ‘숨은 부분’의 용량이 많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펴본 6개 제품 중 ‘숨은 부분’이 많이 들어있던 건 YV, CH, TO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우리가 분해 작업을 하면서 발견한 게 있다. 케이스 바닥에 있는 구멍이다.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원래는 케이스 바닥에 제품 정보를 표시하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해체 과정에서 이걸 떼어보니, ‘숨은 부분’이 많았던 제품은 이렇게 구멍이 나 있었다. ‘숨은 부분’이 적은 MA, IO, LO는 구멍이 없었다.

그럼 밑바닥에 구멍이 뚫린 제품은 '숨은 부분'이 긴 걸까?
 

■ 3차 실험 : 밑에 구멍 뚫린 제품들을 뜯어봤다

다시 립스틱을 사러 나갔다. 이번엔 밑에 구멍이 난 제품을 찾았다. 테스트용 제품이 훼손되지 않게끔 스티커 위를 손으로 만져보니, 구멍 있는 제품을 식별할 수 있었다. 그렇게 4개 제품을 사 와서 립스틱을 꺼내봤다.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우리 예상이 적중했다. 이들 전부 ‘숨은 부분’이 꽤 길었다. 길이가 ‘나온 부분’보다 더 긴 경우도 있었다. 용량도 상당하다. 대부분 ‘나온 부분’에 버금갔고 TH는 오히려 더 많았다.
 

■ 속이 꽉 찬 립스틱은 따로 있다

정리해보면 이렇다. 실험군 10종 중 ‘숨은 부분’이 눈에 띄게 길었던 건 7개 제품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케이스 밑에 구멍이 있었단 거다.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구멍이 있는 립스틱과 없는 립스틱, 뭐가 다른 걸까? 그 차이는 주입 방식에 있다. 제조 과정에서 케이스에 립스틱 내용물을 어떻게 넣느냐가 구멍의 유무를 결정한다.

립스틱 주입 방식은 크게 몰딩 방식과 백충진(back filling) 방식으로 나뉜다.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몰딩 방식은 금형에 립스틱 액상을 부어 ‘나온 부분’의 모양을 만든다. 그 상태로 굳힌 뒤 거기에 케이스를 꽂는다. 이렇게 제조된 립스틱은 밑바닥에 구멍이 없다.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출처 : Youtube


반대로 백충진 방식은 케이스에 바로 립스틱 액상을 넣고 굳힌다. 이때 케이스를 거꾸로 세워 밑바닥으로 내용물을 주입하게 되는데, 그래서 그 자리에 구멍이 뚫려 있는 거다.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출처 : sciencechannel.jst.go.jp

둘 중 어떤 제조 방식을 택할지는 제품 개발 단계에서 정해진다. 디자인, 제형, 생산 설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되기 때문에 제조사나 브랜드에 따라 백충진 립스틱 생산 여부가 다 다르다.

 
■ 백충진 립스틱만 유독 내부가 긴 이유

결국 우리가 궁금한 건 이거다. 왜 립스틱에 ‘숨은 부분’이 많아야 할까? 어차피 사용하지도 못하는 부분인데 말이다. 쓸데없이 제조원가만 높아지지 않을까? 백충진 방식 때문에 주입량이 많아진다면 제조사 입장에서도 손해 아닌가?

아니란다. 원재료 값이 무척이나 저렴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걸 담는 케이스가 더 비싸다. 이건 립스틱뿐만 아니라 다른 화장품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라온 유명 제조사들의 올해 사업보고서를 보자. 원재료 매입비보다 케이스 매입비가 훨씬 많다.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제조원가에서 원재료가 차지하는 비율은 브랜드마다, 제품마다 차이는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원재료를 좀 더 넣는다고 해서 손해를 보는 건 아니란 거다.

뭐, 그렇다고 원재료 손실을 줄일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립스틱의 ‘숨은 부분’까지 다 바를 수 있는 케이스 특허가 다수 있다. 하지만 상용화된 경우는 거의 없다. 이미 말했던 것처럼 원재료 값은 무척이나 저렴하고, 케이스가 더 비싸기 때문이다. 케이스 예산을 늘리느니 원재료를 더 넣는 게 효율적인 거다.

이영주 안양대 화장품발명디자인학과 교수는 시대적인 영향도 있다고 했다. “요즘 소비자들은 여러 개의 립스틱을 사용하기 때문에 한 제품을 끝까지 쓰는 경우가 드물다. 속에 남아 있는 것까지 다 쓸 만큼 절박한 시절도 아닌 데다 회사 입장에서는 케이스 값만 더 늘어나기 때문에, 관련 특허가 나와도 상용화가 된 경우는 거의 없다.”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저렴한 원재료, 그보다 비싼 케이스, 그리고 립스틱 소비 성향까지 다양한 요인들이 모이고 모여 이렇게 '숨은 부분'이 가득 찬 립스틱이 등장하게 됐다. 브랜드가 무엇이든, 가격이 얼마든, 제형이 무엇이든 상관 없이 말이다.
 

■ 다 쓴 립스틱, 버리기 전에 구멍부터 찾아보자

그래도 좋아하는 립스틱은 알뜰살뜰 쓰고 싶어하는 분들 계실 거다. 그렇다면 케이스 바닥을 확인해보자. 스티커 뒤에 구멍이 있다면, 속에 립스틱이 가득 찼을 가능성이 크다. 버리기 전에 확인해보시라. 립스틱을 살짝 얼린 뒤 구멍에 막대를 넣어보면, 속에 있는 ‘숨은 부분’을 쉽게 밀어 올릴 수 있다.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 근데 이게 꿀팁이 맞나?

립스틱을 다 쓴 줄 알았는데 밑에 또 새것만큼 남아 있다면 반갑긴 하겠다. 1+1 행사 같은 거랄까. 근데 이걸 ‘와 꿀팁이다’하고 넘기려니 뭔가 찝찝하다.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YV 립스틱을 다시 보자. 립스틱의 ‘나온 부분’, 즉 우리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의 무게는 2.4g이다. 근데 제품 겉에 표기된 용량은 4.5g이다. 이상하다. 나머지 2.1g은 어디로 갔을까?

혹시나 표기 용량이 ‘나온 부분’과 ‘숨은 부분’의 립스틱을 모두 포함한 것이라면, 우리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더 이상 꿀팁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속에 숨어있는,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는 립스틱들을 꺼내 쓰지 않으면 손해인 거다.

립스틱이 용량 따지며 구매하는 제품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내가 지불한 가격의 절반치만 쓰고 버렸다 생각하니 뭔가 속은 기분이기도 하다. 백충진 립스틱의 표기 용량, 이건 문제없는 걸까?
YV 업체에 물어보려고 하는데, 본사가 프랑스에 있네?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다음주에 계속 소탐해보자.

 
소탐대실 끝.

#저희는_작은_일에도_최선을_다하겠습니다

기획·제작 : 김진일, 김영주, 박진원, 송민경

 
[소탐대실] 립스틱, 그 속에 하나 더 있다


 

관련기사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