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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난 위치 알리는 '국가지점번호' 표지판 설치는 고작…

입력 2018-11-0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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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지금 어디에 있는지 신고를 쉽게 하려고 위치 정보를 알려주는 번호가 곳곳에 있습니다. "있는 곳의 번호를 불러주세요" 해서 이를 알려주면 바로 어디있는지 파악하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아직까지 표지판이 터무니없이 적습니다. 밀착카메라로 취재했습니다.

손광균 기자입니다.
 

[기자]

한국의 이른바 '100대 명산'으로 꼽히는 운장산입니다.

정상까지는 약 1100m가 넘고요.

제가 서 있는 곳은 이 산의 중턱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낙엽이 많이 떨어져서 등산로가 어디인지 구별이 쉽지 않고요.

일부 산악회에서 붙여놓은 등산로 표시도 떨어져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신고를 해야 할까요?

실제로 이 산에서는 지난 2016년 12월 등산객이 실종됐습니다.

하산을 하다 길을 잃은 등산객은 119에 "전화기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신고한 뒤 연락이 끊겼습니다.

겨울이라 눈이 많이 쌓인데다 사고 당일 비가 내리고 안개까지 껴 위치를 알리지 못한 것입니다.

[등산 많이 와요. 겨울에 눈산이 예뻐. 눈이 많이 오고 잘 안 녹으니까. 그래서 겨울에 좀 많이 와요.]

이 등산객은 실종 9달 뒤 시신으로 발견됐는데 등산로에서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등산로) 거기가 아니고 뒤로 넘어가서 저쪽 가서 있었어. 그것도 버섯 따러 간 사람이 찾았지. 어디로 간지를 모르니까, 위치를 모르는 거지.]

같은 길로 올라가 봤습니다.

낙엽으로 뒤덮인 등산로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데 이정표 하나가 눈에 띕니다.

정부가 2013년부터 보급한 국가지점번호입니다.

등산로 한쪽에 설치된 바로 이것이 국가지점번호 표지입니다.

문자 2개와 숫자 8개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산에서 갑자기 다치거나 지원이 필요할 경우에 119로 신고를 해서 이 지정번호를 말하라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재작년에 실종사고가 발생된 이후에야 지자체에서 20개 넘게 추가했습니다.

하지만 등산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표지판은 찾기 어렵습니다.

산에서 길을 잃은 상황을 가정해보기 위해서 등산로에서 불과 3분 정도만 걸어 나와 봤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사방을 둘러봐도 제 위치를 알 수 있는 정보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스마트폰 GPS도 오차가 나서 꼭 필요한 표지판이지만 설치된 것은 전국에 약 2만개입니다.

전체 필요한 양의 3%도 안 됩니다.

그나마 재작년 기준 서울과 광주만 10%를 넘겼고, 실종 사고가 발생한 전라북도는 0.9%에 불과했습니다.

설치 책임이 각 지자체, 산림청, 국립공원관리공단 등으로 나뉘면서 서로 미루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얼마나 많이 설치해야 하는지 기준도 모호한 상황입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 : 저희가 시·군에 몇 미터 간격으로 설치하라고 하기는 힘들고요. (지침은) 없고요. 국립공원 경우에는 500m 정도에 하나씩 설치하는…]

시민들의 반응도 엇갈립니다.

등산로에만 만들면 된다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굳이 가지 말라는 길까지 갔다가 조난을 당하고. 거기서 국가가 국가지점번호를 해놓지 않았다고 해서 그거를 탓할 수 있습니까?]

위도, 경도 정보를 놔두고 복잡한 번호를 새로 만들어 쓰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박병기/서울 흑석동 : 조난당했으면 보통 등산객들은 보고 지나간단 말이에요? 저기로 한참 가다가 봤다? 번호 암기 못해요. 간단해야 하는데 너무 길어.]

정부는 2022년까지 표지판을 1만 3000개 정도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등산 중 조난사고 상당수는 이 등산로 바깥에서 일어납니다.

안전을 위해 만든 장치라면 꼭 있어야 할 장소에 설치하고 제대로 홍보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영상디자인 : 배장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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