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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탐대실] 손가락 닿던 그 선풍기, 결국 판매금지 됐다

입력 2018-10-30 14:59

세상은 못 구해도 너의 일상은 구해줄게
작은 탐사, 큰 결실 #소탐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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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탐사, 큰 결실 #소탐대실

[소탐대실] 손가락 닿던 그 선풍기, 결국 판매금지 됐다

[소탐대실] 손가락 닿던 그 선풍기, 결국 판매금지 됐다


①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 http://bit.ly/2oQlQZB )
②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 http://bit.ly/2EOOepM )
③ 손가락 닿던 그 선풍기, 결국 판매금지 됐다


■ 이제 와서 선풍기로 뒷북치는 이유

'왜 선풍기 망에 손가락이 들어갈까?'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우리가 소탐했던 내용이다. 안전 때문에 설치하는 선풍기 망인데, 어른 손가락까지 쉽게 들어가는 게 이상했다. 알고 보니 그 배경엔 테스트핑거가 있었다.

 
[소탐대실] 손가락 닿던 그 선풍기, 결국 판매금지 됐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 http://bit.ly/2oQlQZB )

기사를 봤던 분들은 기억하실 거다. 당시 소탐대실은 시중 선풍기 3대를 구입해 KC인증 기준에 따라 모의시험을 했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문제의 C선풍기를 발견하게 됐다.

 
[소탐대실] 손가락 닿던 그 선풍기, 결국 판매금지 됐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선풍기 망에 테스트핑거를 넣었을 때 날개에 닿으면 안 된다. 그럼 KC인증을 받을 수 없다. KC인증을 받지 못한 선풍기는 판매할 수 없다. 그런데 인근 매장에서 사 온 C선풍기는 사람 손가락은 물론, 테스트핑거까지 쉽게 날개에 닿았다.

 
[소탐대실] 손가락 닿던 그 선풍기, 결국 판매금지 됐다

[소탐대실] 손가락 닿던 그 선풍기, 결국 판매금지 됐다

정확한 확인을 위해 우리는 국가기술표준원(이하 국표원)에 C선풍기 재시험을 요청했고, 9월 중순에 그 결과를 받아볼 수 있었다. 이후 추가 취재를 진행하고, 시험 결과에 따른 행정적 절차를 기다리느라 이제서야 그 뒷이야기를 전하게 됐다.

지금 선풍기 이야기가 심한 뒷북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년에도, 그 다음해에도 우린 계속 선풍기를 써야 하기에 대충 넘어갈 수 없었다.

의문의 C선풍기, 안전성이 검증된 제품이 맞을까? 그게 아니라면 어떤 경로로 우리 집 안방에 들어오게 된 걸까? 다시 한 번 소탐해보자.


■ '부적합' 선풍기가 버젓이 팔렸다

전기용품의 안전인증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정하는 인증기관에서 담당한다. C선풍기 역시 그중 한 곳에서 시험을 통과해 안전인증을 받았었다. 이번 재시험은 인증을 내렸던 기존 기관이 아닌 다른 곳에서 진행됐다.

 
[소탐대실] 손가락 닿던 그 선풍기, 결국 판매금지 됐다

[소탐대실] 손가락 닿던 그 선풍기, 결국 판매금지 됐다

그렇게 재시험을 요청한지 5일 뒤에 시험성적서를 받았다. 보다시피 '부적합' 판정이다. 선풍기 망에 5N의 힘으로 테스트핑거를 넣었을 때 날개가 닿았다. 소탐대실 모의시험과 같은 결과다.

 
[소탐대실] 손가락 닿던 그 선풍기, 결국 판매금지 됐다

예전에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면, 애초에 C선풍기는 안전인증을 받을 수 없었을 거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해당 시험을 통과했고, 안전인증을 받아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됐다.


■ 이 상태에서 안전인증을 어떻게 받았나?

C선풍기는 어떻게 안전인증을 받을 수 있었을까? 인증 과정을 되짚어보자.
그러기 위해선 먼저 '기본모델'과 '파생모델'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동일한 모델의 제품군 중에서 표본적으로 안전인증을 받은 제품을 '기본모델', 나머지 제품을 '파생모델'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기본모델과 기능, 구조 등이 유사한 게 파생모델이다. 전기적 기본 회로 및 안전 관련 기본 구조 등이 기본모델과 동일해야 한다. 파생모델로 등록하면 별도의 안전인증을 받지 않고 기본모델의 안전인증번호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 디자인 변경이 아닌 이상, 제조사가 파생모델을 등록할 때는 추가 시험을 거쳐야 한다.

 
[소탐대실] 손가락 닿던 그 선풍기, 결국 판매금지 됐다

1편에서도 나왔지만, C선풍기는 파생모델이다. 그럼 2004년에 먼저 인증을 받았던 기본모델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바로 날개 길이다. 기본모델은 35cm인데, 그의 파생모델인 C선풍기는 40cm로 더 길어졌다. 가동부 크기가 변경됐기 때문에 추가 시험이 진행됐어야 한다.

하지만 당시 C선풍기의 인증기관은 이를 간과했다. 전압 등 다른 항목은 시험이 이뤄졌으나, 테스트핑거를 통한 선풍기 망 테스트는 누락됐다. 담당 시험자의 착오였다는 게 국표원의 설명이다.

날개가 길어지면, 망의 크기도 커져야 하는 게 상식이다. 국표원 조사 결과, C선풍기처럼 기본모델보다 날개 길이가 늘어난 파생모델은 최근 3년간 없었다. 흔한 사례가 아니다. 조금만 더 신경 썼다면 이렇게 섣불리 파생모델로 등록되는 일이 없었을 거다.


■ 제조사는 판매금지, 인증기관은 업무정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재시험 결과가 '부적합'이 나왔기 때문에 그에 따른 행정적 절차가 진행된다. 일단 C선풍기 제조사는 판매금지에 들어간다. 국표원에서 판매금지 결정을 내려 담당 지자체인 광주시청에 전달한 상태다. 광주시청은 내용을 정리한 뒤 제조사에 판매금지 및 개선 명령을 집행할 예정이다.

그리고 C선풍기 인증기관은 3개월간 업무정지에 들어간다. 내년 1월까지 선풍기, 환풍기 등 팬 종류의 전기제품은 안전인증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

 
[소탐대실] 손가락 닿던 그 선풍기, 결국 판매금지 됐다


■ 이미 사버린 사람은 어쩌라고?

이제 C선풍기는 그 하자가 개선되기 전까진 매장에서 찾아볼 수 없을 거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 이미 지난여름에 이 물건을 구매한 소비자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자기 선풍기가 부적합 제품이란 사실을 알지 못한다. 누가 먼저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C선풍기는 판매금지 명령을 받았으나 리콜 대상은 아니다. 「제품안전기본법」에 따르면 소비자의 생명, 신체, 재산 등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중대한 결함'일 경우 제품을 수거할 수 있다. 국표원은 이번 문제가 '중대한 결함'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리콜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소탐대실] 손가락 닿던 그 선풍기, 결국 판매금지 됐다

리콜 대상이 아닌 경우 통상적으로 제품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게 국표원의 입장이다. 그럼 기존 소비자들은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을까. 내 선풍기가 정상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교환을 하든 환불을 하든 할 거 아닌가.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담당 지자체가 판매금지만으로 위해 예방이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판매중지 사실 공표, 해당 제품의 교환·환불·수리 등 추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광주시청은 현재 판매금지 명령을 검토 중이며, 추가 조치 여부는 더 지켜봐야 한다.

만일 이마저도 안 된다면, 소비자가 할 수 있는 방법은 2가지다.
제조사의 자발적 리콜을 기다리거나, 직접 먼저 알아보는 거다. 우리 집 선풍기가 부적합 제품으로 의심된다면 후자의 방법도 괜찮다. 제품안전정보센터 사이트에 접속해 선풍기 모델명 또는 안전인증번호를 검색하면 적합 여부를 알 수 있다.


■ 비주류라고 그냥 넘겨도 되는 걸까

지금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C선풍기는 재시험 결과 테스트핑거가 날개에 닿아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문제 제품은 곧 판매금지에 들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제품정보가 공개될지 그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선풍기 안전에 있어서 망이나 날개는 그리 주목받는 부분이 아니었다. 제품안전협회 등 관계 기관이 실시한 유통제품 조사도 마찬가지다. 최근 5년간 테스트핑거로 선풍기 망을 점검한 사례가 없었다. 여름철마다 집중 점검에 들어가는 제품인데도 말이다. 한정된 예산으로 최대한 많은 제품을 조사하기 위해 주요 항목만 살펴봤다는 거다.

모터나 충전부 등 다른 부분에 비하면 사소할 수 있다. 그렇다고 단 한 번도 확인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게 변명이 될지는 모르겠다. 선풍기 손가락 사고는 매년 꾸준히 발생한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조사 한 번을 안 했는데, 언제까지 사용자의 부주의 탓만 할 수 있을까?


■ 국표원 "어린이 안전 위한 방안 검토"

지난 선풍기 보도에서 소탐대실이 문제 제기했던 부분은 또 있다. 바로 인증기준의 현실성이다.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 http://bit.ly/2EOOepM )

테스트핑거가 날개에 닿지 않더라도, 정작 손가락은 쉽게 들어가는 제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직접 인근 가전 매장 6곳을 둘러본 결과다.

 
[소탐대실] 손가락 닿던 그 선풍기, 결국 판매금지 됐다

[소탐대실] 손가락 닿던 그 선풍기, 결국 판매금지 됐다

[소탐대실] 손가락 닿던 그 선풍기, 결국 판매금지 됐다

게다가 이 테스트핑거는 성인 손가락을 기준으로 한다. 어린이의 경우는 선풍기 망 시험에서 배제되어 있다.
현재 인증기준은 IEC 국제표준과 동일하며, 다른 국가에서도 통용되는 내용이다. 무역이나 기술교류 등을 생각한다면 이것만 준수해도 큰 문제 없을 거다. 하지만 우리 실정에 맞는 기준인지 한번 검토해볼 필요는 있다. 좌식환경에서 스탠드형 선풍기를 주로 쓰는 우리는 특히 어린이 사고 위험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소탐대실의 선풍기 보도를 계기로 국가기술표준원도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현행 기준이 국제표준과 동일하긴 하지만, 어린이 위해 우려가 남아있는 만큼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한국인의 인체치수, 외국 사례 등을 조사해 관계 전문가들과 장기적 검토를 진행할 예정이다.

 
■ 하찮아 보여도 안전 문제다

선풍기 보도의 첫 시작은 순전히 호기심이었다. 왜 손가락이 들어가는지 궁금했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지금,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얻어 처음 의도와 달리 조금은 무거운 이야기를 하게 됐다.

겨울 문턱까지 온 마당에 우리가 계속 선풍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담당 부처나 제조사를 무조건 질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작은 부분도 안전으로 귀결된다는 지극히 당연하고 원론적인 사실을 다시 상기하기 위해서다. 그게 소탐대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추선(秋扇), 가을 부채란 뜻으로, 철이 지나서 쓸모없이 된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여름은 다시 돌아온다. 선풍기도 다시 돌아온다. 지금 우리가 뒤늦은 가을 선풍기 이야기를 하는 이유다.

#저희는_작은_일에도_최선을_다하겠습니다

기획·제작 : 김진일, 김영주, 박진원, 이지연

 
[소탐대실] 손가락 닿던 그 선풍기, 결국 판매금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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