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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장, 전두환 측근과 밀접…수사 막혔었다"

입력 2018-10-13 21:23 수정 2018-10-13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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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980년대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죽어 나간 사람만 500명이 넘었지만, 제대로 처벌받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당시 수사검사에 이어서 수사관도 저희 취재진에게 내사 초기부터 압박이 있었다고 털어놨습니다. 형제복지원장이 전두환씨 측근과 가까운 사이라서 수사가 막혔었다는 것인데요.

박민규 기자가 먼저 검찰 수사 단계에서 어떤 압력이 있었는지 전해드립니다.
 

[기자]

[김용원/당시 수사 검사 : 50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한 수사를 시작했다가 그것도 좌절됐지요.]

1987년 검찰의 형제복지원 수사는 울산 작업장에서 벌어진 강제 수용 부분에만 한정됐습니다.

복지원장 박인근 씨의 개인 횡령 그리고 건축법 위반 혐의 등만 검찰은 기소했습니다.

폭행과 성폭행, 살인 등이 벌어졌다는 증언과 정황을 두고도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수사관이었던 이상복씨는 내사 초기부터 압박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상복/당시 수사관 : '울산지청에서 박인근이를 수사할 수 있겠나' 이러더라고 형사가. '부산시장하던 박영수 시장하고 호형호제하던 사이인데…'.]

당시 전두환 씨의 비서실장이던 전직 부산시장 박영수 씨와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박 전 실장은 전두환 씨의 육군사관학교 후배로, 서울시장과 88올림픽 조직위 부위원장을 거친 정권 실세였습니다.

[이상복/당시 수사관 : 조사할 때 아주 당당하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청와대 가 있었거든, 박영수 씨가.]

대검 진상조사단은 이런 내용의 이씨 진술 등을 토대로 "형제 복지원장이 전두환씨의 측근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당시 수사검사는 수뇌부 요구로 당초 무기징역이던 형제복지원장에 대한 구형량을 15년으로 줄여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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