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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외교부-대법관 회동…국가가 나서 '전범기업' 손 들었나

입력 2018-08-16 20:26 수정 2018-10-3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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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제강점기 우리 국민이 피해자인 손해배상 소송을 두고 청와대, 관계부처, 그리고 대법원을 대표하는 대법관까지 모여서 '재판을 어떻게 해야한다'는 식의 논의를 한 정황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삼권분립이 뿌리째 흔들리는 일입니다.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전범국의 전범기업을 위해서 피해국의 대통령 등 수뇌부들이 자국의 피해자들에게 불리하도록 일을 도모한,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013년 12월 1일에 있었던 이른바 '삼청동 비밀 회동'에 대해서 이가혁 기자와 함께 조금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우선 드러난 사실부터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16일) 저희 보도를 통해 황교안 당시 법무장관도 이 자리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이 된 것이죠. 대체 2013년 12월 1일에 당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공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기자]

네, 검찰 수사 상황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측을 종합해 볼때 공통된 것은 당시 그 회동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2013년 12월 1일은 일요일 오전 10시, 휴일 오전 10시에 모인 건데요.

서울 삼청동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에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또 법원행정처장이던 차한성 대법관, 윤병세 외교장관, 황교안 법무장관, 이렇게 네 사람이 모였습니다.

김 실장이 차한성 대법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만남이 성사됐습니다.

당시 논의 주제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었습니다.

윤병세 외교장관이 회동에 앞서 이미 청와대와 정리한 자료를 가지고 와서 차한성 대법관에게 "일본 기업에 배상 책임을 물으면 한일 관계가 악화된다"이런 취지의 주장을 주로 설명했다고 합니다.

[앵커]

이런 모임의 배경이 무엇인가, 강제징용 소송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또 2013년 12월 1일이라는 시점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설명해주시죠.

[기자]

조금 복잡할 수는 있겠지만 이 회동의 의미를 알기 위해선 이것을 짚어봐야하는데요.

시간을 거슬러 2000년, 2005년에 2번에 걸쳐서 강제징용 피해자 총 9명이 일본 전범 기업 두 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습니다. 그러나 1, 2심에서 잇따라 패소합니다.

그러나 2012년 5월 24일 대법원이 "1965년 한일협정으로 우리 국민들이 청구권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또 일본 기업에 배상 청구를 할 수 없다는 2심까지의 판단이 틀렸다. 그러니까 배상을 하라"는 취지로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다시 돌려보낸 것입니다.

[앵커]

이게 그때 크게 뉴스가 됐습니다.

[기자]

신문 1면을 모두 장식했었는데요.

당시 이 판결이 나자 피해자들은 "70년 만에 징용피해 한이 풀릴 것 같다"며 환영했습니다.

1년 뒤, 2013년 7월 피해자 4명에게 1억 원씩, 또 다른 피해자 5명에게 8000만 원씩 지급하라 이렇게 고법판결이 났습니다.

이에 불복한 일본 전범 기업들은 우리 대법원에 "다시 판단 해달라"는 재상고를 했습니다.

이게 2013년 7월 그리고 8월의 일입니다.

앞서 대법원이 판단을 내렸고, 새로 다퉈야할 법리가 생긴 것은 또 아닙니다.

더 이상의 절차 없이 그대로 확정하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를 '심리불속행 기각'이라는 법률용어로 얘기를 하는데요.

통상 대법원에 사건이 올라오고 4개월까지 기각 여부를 정해야합니다.

아까 일본기업의 재상고가 2013년 8월이라고 말씀드렸으니, 회동이 있었던 2013년 12월은 대법원이 곧 사건을 끝낼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앵커]

바로 넉달쯤 되는 그런 시점이었으니까 그 직전이었겠죠. 대법원이 그대로 일본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할까봐, '삼청동 회동'이 이뤄졌다고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이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아직까지도 대법원은 결론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당시 회동에서 대법원이 요구 받은대로  그대로 따랐다고 의심해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앵커]

그런데 청와대나 외교부가 왜 이 소송에 관심을 보인 것입니까? '한일관계 악화 우려했다'는 것, 사실 이것도 말이 안되는 것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거 말고 다른 이유도 있습니까?

[기자]

일단 2013년 9월 뉴욕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보면, 양국이 과거사 문제 등으로 팽팽하게 맞서기는 했었습니다.

그만큼 상황이 더 좋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박근혜 청와대가 1965년 박정희 정부가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는 한·일 청구권 협정을 맺은 것을 고려했다, 이런 분석도 나옵니다.

당시 일본으로부터 3억 달러 무상 지원과 또 2억 달러 차관을 받는 대신에, 우리 정부와 국민 개인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를 사실상 소멸시킨 그 협정인데요.

검찰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왕 실장'이라고 불리는 김기춘 비서실장까지 직접 이 강제징용 재판을 챙긴 것이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책에 흠집을 남기지 않기 위해,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한 의도라고 보고있습니다.

[앵커]

그래서 말씀드린대로 피해국의 수뇌부가 전범기업을 위해 일한, 말도 안되는 상황이 실제로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 그리고 또한 삼권분립은 완전히 무너져 버린 시기, 이렇게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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