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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탐대실] 선풍기 먼지, 왜 안 날아갈까?

입력 2018-08-09 11:44

세상은 못 구해도 너의 일상은 구해줄게
작은 탐사, 큰 결실 #소탐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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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탐사, 큰 결실 #소탐대실

[소탐대실] 선풍기 먼지, 왜 안 날아갈까?


■ 시작 : 바람 불어도 살아남는 선풍기 먼지

지독하게 더웠던 여름이다. 에어컨을 켜긴 하지만 전기세 폭탄을 맞을까 봐 선풍기를 더 많이 돌리고 있다. 지난 주말에도 선풍기를 틀어 놓고 바닥에 누웠는데, 선풍기 날개에 자잘하게 껴 있는 먼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두 달 전 베란다에서 꺼낼 때 청소했는데 그사이에 먼지가 다시 꼈나 보다. 또 닦아야 한다는 생각에 귀찮음이 몰려오던 찰나, 의문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 갔다.

 
[소탐대실] 선풍기 먼지, 왜 안 날아갈까?

선풍기 날개에 왜 먼지가 끼는 걸까? 여름 내내 풀가동했던 선풍기다. 매일 바람이 부는데 선풍기에 먼지 쌓일 틈이 있긴 한가? 바람이 약해서 그런가? 강풍으로 돌려봤다. 그래도 먼지는 대부분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손으로 문질러보니 그때는 쉽게 떨어진다. 이상하다.
이들은 어디서 왔을까? 그리고 바람에는 왜 꿈쩍하지 않을까?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소탐해보자.


■ 1단계 : 검색해봤다

비슷한 의문을 가진 사람들은 나 말고도 더 있었다.

 
[소탐대실] 선풍기 먼지, 왜 안 날아갈까?

하지만 뚜렷한 답을 찾기는 어려웠다. '공기에 섞인 먼지가 지나가면서 쌓인다' '날개 틈 사이에 껴서 그렇다' 등 여러 답변이 있었지만 명쾌하지 않았다. 먼지가 어디서 왔든 바람에는 날려야 하는 거 아닌가? 해외 사이트로 눈을 돌려 더 찾아봤다.

 
[소탐대실] 선풍기 먼지, 왜 안 날아갈까?
 
[소탐대실] 선풍기 먼지, 왜 안 날아갈까?

미국이나 유럽에서 실링팬(천장형 선풍기)을 많이 써서 그런지 질문 글도 많았다. 답변을 살펴보니 자주 보이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Boundary layer'다. 우리말로는 '경계층'이라고 한다. 이게 뭘까? 경계층이 선풍기 먼지와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 2단계 : '경계층'이 뭐지?

 
[소탐대실] 선풍기 먼지, 왜 안 날아갈까?

경계층이 뭔지 검색해봤다. 고체의 표면을 지나는 공기가 마찰에 의해 속도가 변하게 되는 층이란다. 무슨 말일까? 이해가 될 듯 말 듯하다. 이게 어떻게 선풍기 먼지를 만들어낸다는 걸까?

더 찾아봤다. 국내 자료 중에는 나 같은 문과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자료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해외 문헌 하나를 발견했다. MIT에서 전기공학과 컴퓨터과학을 가르치는 산조히 마하잔 교수의 저서 이다. 과학 및 공학 분야의 문제 해결력을 가르치는 교재라고 한다.

 
[소탐대실] 선풍기 먼지, 왜 안 날아갈까?

마침 책에서 환풍기를 예로 들며 경계층을 설명하고 있었다. 날개 주변 입자는 움직임이 '0'에 이르는데, 이 상태에서 입자가 표면에 붙어버린다고 나와 있다. 그럼 주변의 모든 입자가 다 붙어버린다는 건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 입자가 붙는 걸까?

 
[소탐대실] 선풍기 먼지, 왜 안 날아갈까?

책에 그걸 계산하는 식이 나와 있었다. 하지만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스스로 학습의 한계에 부딪히는 지점이다.


■ 3단계 : 유체역학 전문가에게 물어봤다

혼자서는 경계층의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이게 선풍기 먼지의 원인이지도 정확히 모르겠다. 전문가에게 물어보자. 김광선 코리아텍 메카트로닉스공학부 교수에게 찾아갔다. 국방부 방위산업국, 핵발전소 엔지니어, 항공 제어시스템 개발 등의 이력이 있는 유체역학 분야의 석학이다.

 
[소탐대실] 선풍기 먼지, 왜 안 날아갈까?
 
[소탐대실] 선풍기 먼지, 왜 안 날아갈까?

선풍기 날개에 먼지가 쌓이는 원인은 무엇일까? 김 교수는 경계층이 맞다고 설명했다.

공기나 물 같은 모든 유체에는 점성이 있다. 그래서 물체 주변 공기가 표면에 달라붙게 되는데, 표면과 가까울수록 점성이 강해 공기의 움직임은 없어진다. 점성의 영향을 크게 받는 이 구간이 바로 경계층이다. 자연히 경계층 안에 있는 입자들은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게 된다.

 
[소탐대실] 선풍기 먼지, 왜 안 날아갈까?

선풍기도 마찬가지다. 날개가 돌아가면서 주변 입자들이 표면에 부딪힌다. 그중 날개의 경계층에 들어간 입자들은 움직임 없이 그곳에 머무른다. 바람이 불어도 점성의 영향을 받아 계속 남는 거다. 그게 바로 선풍기 먼지다.

 
[소탐대실] 선풍기 먼지, 왜 안 날아갈까?

우리가 손으로 문지르지 않는 이상 경계층에 있는 먼지들은 제자리를 꿋꿋이 지킬 수 있다. 선풍기 망에 있던 먼지들도 이와 같은 원리로 쌓이게 된 거다.


■ 4단계 : 먼지는 얼마나 쌓일 수 있을까?

선풍기 날개에 먼지가 어디까지 쌓일 수 있나 알아보자. 날개 주변의 경계층 두께를 구해보면 알 수 있다. 마하잔 교수의 책을 다시 살펴보면, 경계층 두께를 구하는 계산식이 있다.

 
[소탐대실] 선풍기 먼지, 왜 안 날아갈까?

마하잔 교수는 창문형 환풍기를 예로 들었다. 지름 50cm의 날개가 초당 약 15바퀴를 돈다고 가정하고, 점성 계수와 시간을 이용해 계산했다. 그렇게 나온 날개의 경계층 두께는 0.05cm다. 공기 중 작은 입자들이 이 경계층 안에 계속 축적되면, 최대 0.05cm까지 먼지가 쌓일 수 있는 거다. 샤프심 정도의 두께라 육안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선풍기 청소를 게을리하면 안 되는 이유다.


■ 결론 : 여름 동안 고생한 선풍기, 잘 닦아주자

하찮아 보이는 선풍기 먼지지만 거기엔 경계층이라는 유체역학 원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가 선풍기를 통해 알아봐서 그렇지, 실은 다양한 산업에서 근간이 되는 이론이다. 자동차, 기차, 항공기, 미사일 등 저항을 극복해 속도를 내는 물체에는 경계층 연구가 기본이다.

 
[소탐대실] 선풍기 먼지, 왜 안 날아갈까?

그 중요성에 비해 이를 쉽게 설명해주는 국내 문헌이 없다는 점은 취재 내내 아쉬웠다. 소탐대실에 경계층을 설명해준 김광선 교수는 기초과학이 탄탄해야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선점자(First Mover)로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선풍기에 먼지가 왜 생기는지 질문하러 갔다가 과학의 미래까지 고민하고 온 자리였다.

 
[소탐대실] 선풍기 먼지, 왜 안 날아갈까?

오늘은 집에 있는 선풍기를 잘 살펴보자. 먼지가 쌓여있는가? 이제 왜 그런지 의아해하지 마시라. 그만큼 우리를 위해 열심히 돌았다는 증거다.


소탐대실 끝.

#저희는_작은_일에도_최선을_다하겠습니다

기획·제작 : 김진일, 김영주, 박준이, 송민경

 
[소탐대실] 선풍기 먼지, 왜 안 날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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