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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계엄령 문건' 넉달 전에 시작했어야 할 수사

입력 2018-07-17 13:20 수정 2018-07-17 13:35

송영무 서랍 속에 갇혀 있던 '국민의 알 권리'
'의원 질의에 작성' 프레임에 스스로 갇힌 언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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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무 서랍 속에 갇혀 있던 '국민의 알 권리'
'의원 질의에 작성' 프레임에 스스로 갇힌 언론도

[취재설명서] '계엄령 문건' 넉달 전에 시작했어야 할 수사

지난 3월 16일에 시작됐어야 합니다.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에 대한 조사를 두고 하는 얘기입니다. 제 때를 놓치면서 국민의 알 권리는 4개월 동안이나 서랍에 갇혀 있었습니다. 기무사 개혁 역시 그 시간만큼 지체됐습니다.

송영무 국방장관이 기무사로부터 <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 방안 >이란 문건을 제출 받은 건 지난 3월 16일입니다. 송 장관은 문건이 가진 폭발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정무적 판단'으로 문건 공개를 늦췄다는 국방부의 해명이 말해 줍니다. 공개돼도 국민적 파장이 크지 않다고 봤다면 굳이 '정무적 잣대'까지 빌리지 않았을 겁니다.

▶ 공수부대가 광화문에?

40년 군 경력을 갖고 있는 송 장관이 아니라 일반인이라도 기무사 문건의 수상함을 알 수 있습니다.

기무사가 문건을 작성한 지난해 3월 초는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여부를 결정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문건은 헌재 결정 후의 탄핵 관련 집회를 직접 겨냥하며 위수령, 나아가 계엄령이 발동될 경우 동원할 사단과 배치 장소를 구체적으로 담았습니다. 헌재의 결정에 불복한 시위대가 경찰서에 난입해 무기를 탈취할 것이라는 당시 상황과 전혀 맞지 않은 전망과 함께였습니다. 촛불집회가 열리는 광화문에 공수부대를, 국회가 있는 여의도에 장갑차 등을 보유한 기계화사단을 배치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북한의 도발 위협이 커지고 있고 국가 안보가 위태롭다며 '계엄령의 명분'을 적시하면서 모순적이게도 전방 전투 사단을 서울 등 후방에 배치합니다.

위수령의 경우 위헌 소지와 군은 책임은 별개라거나 '국회가 무효 법안을 제정할 경우 대통령이 거부하면 2개월 이상 위수령을 유지할 수 있다고 적었습니다. 계엄 시 보도검열단(48명)과 언론대책반(9명)을 꾸려 언론을 통제하는 방안도 적었습니다. 각 정부 부처를 지휘·감독하는 계획도 담겼습니다. 사실상 군정을 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 문건이 송 장관의 손에 들어간 지난 3월 16일 당시는 국방부 감사관실이 움직이고 있을 때입니다. 같은 달 8일부터 촛불집회 때 병력 동원 검토 의혹을 조사 중이었습니다. 2주 간 조사한 결론은 "촛불집회 당시 병력 투입 논의 의혹을 뒷받침할 자료나 진술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무사는 조사 대상에서 빠져 있었습니다. 기무사에 문건 작성을 지시했다는 한민구 전 국방장관에 대한 조사도 없었습니다. 송 장관이 기무사 문건 조사를 감사관실에 지시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장관을 배제한 독립수사단을 구성하라'는 대통령의 질책성 지시도 없었을 것입니다.

▶ 합참·국방부·기무사 문건의 '연속성'

국방부가 기무사 문건과 한민구 전 장관까지 조사했어야 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당시 국방부가 조사했던 문건들과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 사이에는 연속성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2월 20일 합참은 < 위수령 관련 검토 경과 >라는 문건에서 군 내부의 위수령 폐기 의견을 은폐합니다. 불과 한 달 전 국방부·합참·육군본부 합동회의에서 "위수령 폐기 필요 판단"이란 결론을 내렸는데도 합참은 이 부분을 도려내고 "법률 개선 작업 필요성 인식"이란 문구로 갈아 끼워 문건을 다시 작성했습니다. 한 전 장관에게 보고한 이후 벌어진 일이라고 합니다.

나흘 뒤인 지난해 2월 24일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은 한 전 장관이 지시로 < 군의 질서유지를 위한 병력 출동 관련 문제 검토 >란 문건을 보고합니다. 문건은 '위수령 등에 대비해 병력 출동 부대 및 그 규모 등 사전 계획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 '계엄령 선포 후 병력 출동이 타당'이라는 내용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로부터 10여일 뒤 기무사는 위수령의 제한 사항을 해소할 방안과 계엄령을 발동할 경우 부대 배치 등을 담아 한 전 장관에게 보고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합참과 국방부, 기무사의 문건이 점차 구체성을 띄고 있는 겁니다. 특히 교집합에는 한 전 장관이 있습니다.

▶ 지체된 4개월 간 난무했던 각종 프레임

가장 우려되는 건 4개월이나 지체되면서 진상 규명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 전 장관이나 국방부·군의 핵심 관계자들이 서로 말을 맞추거나 대응 논리를 짤 시간을 벌어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한 전 장관 측은 지난 3월 국방부의 '병력 출동 관련 검토' 문건이 공개되자 "이철희 의원의 요청에 따라 제도를 검토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일종의 프레임을 만든 겁니다. 국방부 관계자들은 '제출 프레임'까지 들고 나왔습니다. '문제되는 문건이라면 국방부가 이 의원에게 스스로 제출했겠느냐'는 논리입니다.

이 두 프레임은 일부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 됐습니다. 국방부 문건은 이 의원의 요청한 '위수령 폐지 검토'와는 결이 달랐습니다. 당사자인 이 의원도 본인의 요청과 맥락이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은 이 의원의 요청을 핵심 전제라고 확정한 뒤 국방부 문건을 보도한 JTBC를 향해 '사실 왜곡' '취사선택' '군에 대한 대중의 선입견에 올라탔다'고 공격했습니다.

한 전 장관 측은 이번 기무사 문건 역시도 "이 의원의 질의에 따라 작성됐다"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의원 질의 프레임'이 한 전 장관에서 시작해 일부 언론으로 다시 한 전 장관으로 옮겨가며 퍼지는 양상입니다. 국방부가 이 의원에게 문건을 '제출'했다는 것도 일부 언론은 문건에 문제가 없다는 근거로 활용했습니다.

그렇다면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은 어떤가요? 기무사 역시 해당 문건을 송영무 국방장관에게 제출했고 국방부는 이를 다시 이철희 의원에게 제출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제출'이 아닌 '유출 프레임'이 등장했습니다. 취재설명서를 쓰기 전에 이 점을 유독 강조했던 해당 언론사의 인터넷 기사를 다시 읽어보려 했지만 아무 설명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기무사 개혁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국방부가 문건을 유출했다는 취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출'이건 '유출'이건 이런 프레임의 한계는 공개되는 방식에 집중한 나머지 문건 자체의 심각성을 놓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 전 장관과 함께 문건에 개입한 국방부 관계자들이 이번 특별수사단의 조사를 받게될 때 해당 언론사의 기사를 '방패'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 "진짜 하려고 했겠느냐"는 질문보다 중요한 것

"정말 계엄령을 내리려고 그랬겠느냐, 너무 호들갑이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조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단순 검토인지 실행 계획인지를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법적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실체 확인입니다. 모든 사실 관계를 확인한 뒤에 법적 책임의 유무를 따져도 늦지 않습니다. 설익은 법의 잣대로 실체 확인 과정을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잃어버린 4개월 동안 진상 규명의 무게는 더 커졌습니다. 당장 송영무 장관도 조사하라는 목소리까지 들립니다. 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건 군이 시민들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대전제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계엄령을 대비하며 언급한 기계화 사단 등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더욱이 지난 촛불집회는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비민주적으로 활용한 국가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촛불집회는 비폭력과 포용의 상징으로 전세계에 알려졌고,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 1700만명은 독일 에버트 인권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국가는 비민주적인 수단으로 시민들을 통제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촛불집회 당시 군에서 벌어진 일들을 국민들이 정확하게 알아야 할 이유는, 이렇게 너무나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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