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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사법부 '눈엣가시 학술모임' 와해시도…직권남용죄 될까

입력 2018-05-28 16:25

법원 내부서 논란…"규정에 근거" vs "사문화된 규정 부당 활용"
판사사찰 피해 여부도 논쟁…대법원장 "검찰 고발도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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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내부서 논란…"규정에 근거" vs "사문화된 규정 부당 활용"
판사사찰 피해 여부도 논쟁…대법원장 "검찰 고발도 고려"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 등 사법정책에 비판적인 법원 내 학술모임을 와해하려 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오자 관련자에게 직권남용죄를 물을 수 있는지를 두고 내부 논란이 거세다.

판사와 법원 내 학술모임 사찰, 재판을 이용한 청와대와의 거래 시도 등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정황이 담긴 문건이 드러났지만, 특정 판사에 대한 불이익이나 재판에 대한 간섭이 구체적으로 확인된 경우를 찾기는 쉽지 않다.

반면 학술단체 와해 정황은 법원행정처가 모임 탈퇴를 종용하는 상황까지 이른 것이어서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왔다.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형사법정으로 넘어갈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28일 법원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2월 13일 법원 내 학술단체의 중복가입을 금지하는 대법원 예규에 따라 이른바 '전문분야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 공지문을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에 올렸다.

이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법원 안팎에서 치열한 법리논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은 25일 조사결과 발표에서 "전문분야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와 관련한 직권남용죄 해당 여부는 논란이 있어 형사상 조처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고발 등을 하지는 않기로 했지만, 의도가 부적절하다는 게 조사단의 판단이다. 중복가입 해소(금지) 조치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추진한 상고법원 도입에 비판적인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하려는 차원에서 시도됐다고 조사단은 파악했다.

법원행정처는 이 모임에 대한 대책문건을 작성하면서 학술단체의 중복가입을 금지하는 대법원 예규를 활용하는 방안을 대책으로 검토했다.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1월 행정처 실장회의를 통해 '중복 가입한 판사 수가 많아 예산의 형평성 있는 배정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실제로 '중복 가입한 판사들은 그해 3월 5일까지 가장 관심 있는 분야 하나를 선택하고 나머지 연구회에서는 탈퇴하라'는 내용의 공지가 내려졌다.

이는 단순한 판사 사찰과 달리 구체적으로 '불이익한 조치'가 실행에 옮겨진 것이기 때문에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 법원 일각에서 나온다. 반면 조사단은 직권남용 적용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핵심 쟁점은 법원행정처 공지가 당시 상황에서 정책적으로 필요했는지다.

대법원 판례는 '직권남용 행위는 그 행위가 당시의 상황에서 필요성이나 상당성이 있는 것이었는지, 직권행사가 허용되는 법령상 요건을 충족했는지 등의 여러 요소를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상당수 법조인은 이 공지가 대법원 예규에 따라 시행됐기 때문에 직권남용 행위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는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은 그동안 법령에 따라 공무를 집행하면 직권남용 혐의를 부정했다"면서 "특별조사단도 이 같은 판례를 고려해 형사조치를 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법령에 근거했어도 부당한 목적으로 시행됐다면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재경지법의 또 다른 부장판사는 "애초에 국제인권법연구회가 2011년 설립한 후 6년여 동안 아무런 문제 제기가 없다가 상고법원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자 중복가입 해소조치에 나섰다"며 "사문화된 중복가입 금지 규정을 들어 모임을 와해하려는 목적으로 시행된 직권남용행위에 해당한다"고 평가했다.

개별 판사들에 대한 사찰 행위를 두고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도 논란이 이어진다. 사찰당한 판사들에게 피해가 발생했는지가 쟁점이다.

최진녕 변호사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는 구체적인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는 범죄"라며 "법원행정처가 판사 동향은 감시했지만 인사 불이익 등 실행에 나서지 않은 만큼 처벌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익명을 원한 또 다른 변호사는 "사찰을 당한 것만으로 충분히 피해가 발생했다고 봐야 한다"며 "동향을 파악했다는 것만으로도 이후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구체적 위험에 노출됐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이번 사안이 실제 형사조치로 이어질지는 결국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달렸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출근길에 검찰고발 여부에 대해 "결론을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그런 부분까지 (의견 수렴과정에서) 모두 고려하도록 하겠다"고 밝혀 추후 형사조치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김 대법원장이 형사조치를 취할 경우 검찰도 곧바로 강제수사에 착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지난해부터 접수된 시민단체 등의 관련 고발사건을 모두 공공형사수사부(김성훈 부장검사)에 배당한 상태다. 그동안 "사법부 자체 조사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조사단 보고서를 토대로 직권남용죄 성립 여부 등 법리 검토 작업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강제수사에 들어가더라도 직권남용 혐의를 밝히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법원조직 특성상 인사 불이익을 줬더라도 합리적으로 보일 만한 근거를 남겨두지 않았겠냐는 이유에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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