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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환자만 모르는 'PA', 이대로는 안 됩니다

입력 2018-05-22 13:19 수정 2018-05-2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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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환자만 모르는 'PA', 이대로는 안 됩니다


2달 전 쯤 의료 관계자들과 늦은 저녁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 분야를 취재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터라 이것저것 물어 볼 것들을 머리속에 정리하며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부랴부랴 합석해, 이들의 이야기에도 뒤늦게 합류하는 순간, 한 관계자가 "PA들이 처방을 하는데 참 이것도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PA가 처방을 한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의사들이 얼마나 바쁘면 PA가 병원 전산망에 들어가서 대신 처방을 하냐? 그리고 PA는 도대체 누구냐?"

돌아 온 답이 더 놀라웠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아니라 직접 합니다. 뭐 전공의가 하는 처방은 종종 고치기도 해요"
---비뇨기과 전문의

"봉합 같은 수술도 해요…사실, 수술방이 바쁘면"
---내과 전공의


심드렁하게 내뱉는 말에 이게 참 오래된 문제라는 직감이 왔습니다.


▶의사업무 맡는 PA간호사…그들은 '유령'

PA는 physician assistant의 약자로 직역하면 의사보조, 의료 현장에서는 통상 '진료 보조 인력'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로 간호사들이었습니다.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PA가 제도화 돼 있어 공식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국내 의료법에 PA에 대한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 그들이 의사들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실상을 이야기 해준 의사들부터 좀 더 만나봤습니다.

역시 직감대로 거의 모든 병원에서 PA들의 대리 처방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현직 PA를 만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기사 계획을 짜고 실상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PA간호사들의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PA 간호사들의 목소리에는 의사들이 심드렁하게 내뱉던 말과는 조금 다른, 더 절박한 상황이 담겨 있었습니다.

"실력이 늘어도 기분이 좋지 않죠, 잘해 봐야 불법이니까요"
---현직 수술 전문 PA

"나는 괴물이라는 생각, 밤낮 없이 일하지만, 떳떳하지 못합니다."
---현직 처방 분야 PA


병원에서 이뤄지는 구조적인 문제, 그래서 PA들은 불법 의료행위인 대리처방과 시술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유령처럼 일해야 하는 PA들이 간호사들만 1만명에 이릅니다. 그나마도 간호협회와 보건의료노조의 추산일뿐입니다.

공식 통계가 아닙니다. 아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실태 조사를 아직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응급구조사나 간호조무사, 의료기사…새내기 간호사도

더 놀라운건 그나마 간호사들이 PA를 맡으면 다행이고 간호조무사나 응급구조사, 심지어 의료기사들이 PA 맡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증언도 이어졌습니다.

간호대학을 갓 졸업한 새내기가 아예 PA로 병원에 입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간호 업무를 해본 적도 없는데, 간호사한테 시켜야 하니까 힘들었지요"
--- 전직 처방 분야 PA


숙련된 간호사도 해서는 안 될 상황에 새내기가 PA로 동원돼 수시로 처방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의사들이 거의 없거나 연락이 안되는 밤에는 PA가 의사이자 동시에 간호사인게 우리 병원의 현실입니다.

물론 환자들은 모릅니다. 아니 알수가 없습니다. 실상을 알 수도 없거니와 이런 상황을 예상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일 없다는 병원들…그러나 협회는 "공공연한 비밀"

그래서 병원에 물어봤습니다. 대체 왜 그러냐고?

돌아온 답은

"저희 병원은 그런 일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A 대학병원
"명확히 답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런 일에 대해서"
---B 종합병원


명확하든 애매하든, PA 불법 의료행위를 인정하는 병원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

물어 본 병원들은 대한전공의협회가 전공의 상대로 한 설문 조사에 "PA들의 독립처방을 봤다"는 비율이 높았던 병원들입니다.

현장에서는 그렇게 많다고 이야기를 하는데도 병원들이 부인을 하는 건, 정확히는 부인을 할 수 있는 건 실제 그 업무를 하는 PA와 그런 업무를 하도록 둘 수 밖에 없는 의사 모두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병원협회에 물어봤는데 의외의 답이 나왔습니다. "PA들의 처방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렇게 말한 겁니다.

병원들의 이익단체인 병원협회는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되레 "이제라도 정부와 정치권이 답을 찾아주길 바란다"

병원협회 조차 더 이상 두면 문제가 커질 거란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겁니다.


▶전방위적으로 투입되는 PA들, '골수천자'까지 한다

-자 그럼 PA들이 과연 어떤일을 하는 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보건의료노조의 공식 입장입니다. 현재 PA들은 수술, 처치, 처방, 환부 봉합, 진료기록지 작성, 동의서 설명 등의 업무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의사들이 하는 의료 행위의 거의 전부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익명으로 해달라며 제보를 해 준 한 병원관계자는 그곳에선 PA가 골수천자를 전담한다고 밝혔습니다.

골수천자는 혈액이나 골수의 병증을 진단하기 위하여 골수에 침을 꽂아 수액을 채취하는 의료행위를 뜻 합니다.

이걸 PA가 대놓고 하고 있다는 겁니다. 맡는 업무도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이른바 문재인 케어로 대형병원의 문턱 낮아지면서 발생하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풀이되는데 그 증가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대부분의 PA들의 입에서, 최근 환자가 2배는 늘었다는 답변이 돌아 왔습니다.

앞서 밝힌 것처럼 새내기 간호사가 PA를 맡는 극단적 상황이 점점 더 많이 발생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내가 이 환자를 지킬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부담감, 자책감이 떠나지 않았다



전직 처방 PA간호사의 고백이 귓가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내 가족과 지인이, 언제, 어느 병원에서든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라도 해법 찾아야…그런데 논의는 중단

PA 처방과 시술 등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JTBC의 PA 문제 보도가 나가는 중 보건의료노조는 때마침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PA문제를 공식적으로 다시 거론 했습니다.

그런데 각 이해 당사자간 논의는 중단이 된 상황입니다.

PA의 제도화, 양성화를 주요 대안으로 보는 간호협회와 이를 인정하지 않는 의사협회의 갈등이 주 원인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음지에서 꺼내 양지에서 일하게 해야한다"
---간호협회 등

"불법 행위를 멈추게 하면 된다, 그게 먼저다"
---의사협회 등


일단 의료 현장의 의사 부족을 두고서 의견이 갈립니다.

의사협회 등 의사 단체들은 병원들이 충분한 인력을 채용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입장이고 간호협회 등 간호 단체들은 의사가 턱없이 적어 벌어지는 문제라는 입장입니다.

의사 부족 논란은 의사 정원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의사 정원은 법을 고쳐야 가능할 정도로 쉽지 않고 민감한 사안입니다.

여기에 이런 논란을 넘어 제도화로 논의가 이어진다 해도, PA의 의료 행위를 과연 어디까지 허용할지 정하는 일도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문재인 케어 안착? PA 문제 부터 풀어야

국민 모두가 아는 것처럼 정부는 지금 건강보장성 강화대책, '문재인 케어'를 추진 중입니다.

실제 선택 진료가 폐지되고 상복부초음파가 건강보험혜택에 편입되는 등 계획대로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 주는 게 핵심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의료 수요의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PA 문제를 더욱 서둘러 풀어야 합니다.

병원에서, 그것도 환자 쏠림이 심해지는 대형병원에 공공연하게 심화되고 있는 PA들의 의료 행위를 그대로 둬선 안됩니다.

의료의 질 문제이기도 하고 동시에 환자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이걸 풀지 않고 정부가 문재인 케어의 안착을 바랄 수 있을까요?

이미 수십년은 된 관행, 그래서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이해 관계자들을 설득하고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 심판자 역할을 복지부가 맡아야 합니다. 지금처럼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면, 불법 의료행위로 인해 발생할 지 모를 의료 사고와 분쟁이 '문재인 케어'를 송두리째 뒤흔들 부메랑이 돼 돌아 올 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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