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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봄 맞았지만…현장엔 '그날'의 아픔과 흔적 여전

입력 2018-04-14 21:32 수정 2018-04-1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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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년 전, 그 날… 가족들은 생사도 모르고 무작정 팽목항으로 갔습니다. 그 뒤로 오랫동안 소중한 누군가는 돌아오지 못했고, 가족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가족들이 오간 동거차도, 또 목포신항엔 참사의 아픔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상엽 기자입니다.
 

[기자]

팽목항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아름다웠습니다.

아이를 찾아 달려가던 4년 전 그날. 엄마는 이 길이 아름다워 더 많이 울었습니다.

그날 눈에 담긴 벚꽃은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앞두고 건우 엄마는 오랜만에 팽목항으로 향합니다.

오랜 시간 아들의 이름을 불렀던 곳입니다.

이제 4년 전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팽목항엔 아직 우재 아빠가 남아있습니다.

아들 사진을 걸어놓고 바다를 바라보며 4년을 지냈습니다. 

[고영환/고 고우재 군 아버지 : 14년 10월에 왔으니까. (거의 4년 가까이 계신 거네요.) 그렇죠.]

언제 이곳을 떠날 마음이 생길지 기약이 없습니다.

4년 전 유가족은 이곳에서 숫자로 불렸습니다.

294번, 295번. 숫자가 들리면 팽목항 시신 안치소로 달려갔습니다.

숫자가 불리길 바랐고 또 불리지 않길 바랐습니다.

7달 넘게 아이들을 기다렸던 이곳은 이제 텅빈 채 조용합니다. 

동거차도는 안개에 덮여있습니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침몰 해역에서 가장 가까운 이 섬에 3년을 머물렀습니다.

산길엔 빛바랜 노란 리본이 아직 남아있고 생활하던 움막도 그대로입니다.

유가족들은 매일 칼바람을 견디며 바다를 기록했습니다.

몸이 아파도 섬을 떠나지 못했던 지성 아빠의 약봉투가 아직도 움막에 남았습니다.

세월호가 누운 목포신항은 막바지 수색 작업이 한창입니다.

녹슨 자동차들은 아직 다 치우지 못했습니다.

배 안에선 사고 원인을 밝히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은 배에서 나온 유류품을 씻은 뒤 모으고 있습니다. 이제 6500점을 넘었습니다.

밤이 오고 세월호 주변이 어두워집니다.

[정성욱/고 정동수 군 아버지 : 하나둘씩 떠나니까 그때부터 고립감이 오는 거야. 아무도 없잖아.]

유가족들은 낡고 녹슬고 찢긴 세월호 곁에서 이제 5번째 봄을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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