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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붉은 물을 빼고 푸른 물을 들인다'

입력 2018-04-12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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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초록빛 나무를 심는 일은 곧 미래를 심는 일일 것입니다.

한국전쟁 이후에 벌거숭이가 되었던 나라.

그래서 장기집권을 했던 대통령은 나무를 심었습니다.

"산이 푸르게 변할 때까지는 유럽에 안 가겠다."

정돈된 서독의 푸른 산을 한없이 부러워했다던 대통령은 대대적인 치산녹화 계획을 세워서 실행에 옮겼습니다.

1984년의 한 통계에 따르면 당시 20살 이하의 어린나무 10그루 중에 8그루 이상이 박정희 시대에 심어진 것이었다고 하니까…

물론 워낙 장기집권 했던 터라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아무튼 그 시대의 명과 암이 존재한다면 이것은 아마도 명에 속하는 일이겠지요.

군부정권을 이어받은 다음 대통령 역시 녹화사업을 펼쳤습니다.

더 이상 녹화할 산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그가 녹색화를 시도한 대상은 달랐습니다.

대학생들 머리에서 붉은 물을 빼고 푸른 물을 들인다…

즉 정권은 '좌경오염 방지' 라는 미명하에 눈엣가시였던 학생운동을 탄압했습니다.

대상이 된 대학생에게는 하루아침에 입대 영장이 날아들었고…

이렇게 들어간 군대에서는 구타와 고문은 물론이고 동료들의 학생운동 정보를 캐내 오는 이른바 프락치가 되라는 지시마저 내려졌습니다.

"동지를 팔아야만 전향으로 인정되었으니까…"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내가 친구를 팔았다는 가책에 평생을 시달리게끔…"
- 유시민 작가 (강제징집·녹화사업 피해자)


그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의문의 죽음을 맞은 젊음들…

푸른 청춘을 짓밟았던 비극적인 녹화사업의 결과였습니다.

나쁜 것은 더욱 전염성이 빠른 것일까.

국내 1위 대기업, 삼성의 노조파괴 공작에도 같은 이름이 달렸습니다.

"청정지역으로 만들어놔라"
"모든 것을 걸고 반드시 Green화"

위장폐업을 해서라도, 가족에게 협박 문자를 넣어서라도 노골적으로 필사적으로 노조를 막아냈다는 삼성의 녹화사업.

그들 역시 노동자들의 모임이 붉은색으로만 보였을까…

그리고 한쪽 눈을 질끈 감아주었던 검찰과 정부 기관의 묵인 덕분이었을까…

"죽음까지 생각하며 5년을 견뎌 오늘까지 왔다"
- 나두식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지회장

그들이 원하는 청정 환경은 완벽하게 조성되었지만 노동자들은 그 녹색지대 안에서 제대로 숨 쉴 수 없었고 아직도 선명한 이유를 규명하지 못한 질병과 죽음들은 이어졌습니다.

이제 봄비 그치고… 

하나둘 푸른 잎 돋아나기 시작한 늦봄의 하늘 아래, 초록빛이 모욕당한 봄날의 비극.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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