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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권 없이 시작부터 '삐끗' 가습기TF…외압 규명도 지레 포기

입력 2017-12-19 14:58

'가습기살균제 재조사하면 고발 가능' 의견 무시된 과정 소명 없어
"소회의 결정에 위원장 영향" 인정했지만 개선책 제시는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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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재조사하면 고발 가능' 의견 무시된 과정 소명 없어
"소회의 결정에 위원장 영향" 인정했지만 개선책 제시는 전무

조사권 없이 시작부터 '삐끗' 가습기TF…외압 규명도 지레 포기


공정거래위원회가 19일 외부 전문가 TF(태스크포스)를 통해 가습기살균제 사건 처리 과정을 평가한 보고서를 내놨지만 일부 의혹은 여전히 소명되지않아 반쪽 결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공정위 내부에서 이 사건의 형사 공소시효를 연장할 수 있는 증거를 찾을 수 있다는 의견이 묵살됐다는 의혹이 나왔지만 TF는 이에 대해서는 조사를 하지 않았다.

정재찬 전 위원장의 판단으로 전원회의 상정이 무산된 점에 대해서도 정 전 위원장을 조사하지도 않은 채 외압이라고 볼 수 없다고 TF는 결론 내 안이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TF는 향후 외압의 고리로 악용될 수 있는 이 같은 절차적 흠결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고 일부 '잘못'을 지적하고 '유감'만을 표했을 뿐이다.

구성에서부터 '제식구'라는 논란을 자초했고, 조사권이 없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TF 내부에서까지 나왔다.

이번 TF의 보고서가 "적극적으로 사건을 심의하지 못해 아쉽다"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기존 입장에서 단 한발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 "새로운 증거 있다" 내부의견 왜 수용되지 않았나

지난해 10월 공정위가 CMIT 가습기 살균제 표시광고법 위반에 대해 사실상 무혐의 결정을 내린 뒤 내부에서 다시 심의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환경부가 인정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중 공소시효 기산일 이후인 2011년 10월 7일 출생한 아동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이다.

지금까지 공소시효의 기산일은 정부가 해당 제품에 판매 중단·수거 조치를 한 2011년 8월 31일이었다.

판매 중단·수거조치일 이후에 태어난 아동이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해 피해를 입었다면 결국 정부의 조치 이후에도 일부 제품이 유통되고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했다.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심판관리실은 공소시효를 연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만큼 심의절차 종료 상태인 사건을 재심의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공정위 전원회의 위원들은 같은 해 12월 비공식적으로 재심의 여부를 논의했지만 재심의하지 않기로 했다.

당시 위원회는 심의절차 종료 결정을 내린 뒤로 상황 변화가 크지 않아 재조사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의 이런 입장은 지난 9월 CMIT 가습기 살균제 재조사 결정을 내릴 때까지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공정위는 문제가 된 제품의 위해성이 입증됐다며 재조사 방침을 밝혔지만 형사상 공소시효는 이미 지나 고발 처분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공정위의 이런 입장은 불과 석 달을 가지 못하고 다시 뒤집히고 말았다.

1년여 전 심판관리실에서 제기된 의견대로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가 2013년 말까지 추가로 판매된 사실을 확인했고 공소시효를 연장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공정위 사무처는 최근 애경과 SK케미칼을 검찰에 고발하는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전원회의에 '뒷북' 상정했다.

지난해 이미 재조사에 착수하고 고발 처분까지 마무리할 기회를 공정위 스스로 걷어차 버린 셈이다.

그런데도 공정위의 이 같은 부실한 심의 과정은 이번 TF의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고, 2012년과 2016년 소회의의 판단만 TF는 들여다봤을 뿐이다.

TF 팀장인 권오승 서울대 명예교수는 "두 판단의 실체적·절차적 잘못이 있는지를 평가한 것"이라며 "그 이상을 평가하는 것은 위임받은 범위를 넘는다고 봤다"고 해명했다.

◇ 소회의서 "전원회의서 재논의" 사실상 합의에도 상정 무산

지난해 CMIT 가습기살균제 심의 당시 소회의 위원 3인은 사회적 관심 등을 고려해 전원회의에서 이 사건을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주심위원이었던 김성하 상임위원은 이런 의견을 정 전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정 전 위원장은 표시광고법의 경우 소회의 심의가 원칙이라는 점, 전원회의로 상정하면 공소시효를 넘길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소회의에서 결론을 내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밝혔고 결국 전원회의 상정은 무산됐다.

문제는 소회의 안건의 전원회의 상정 여부는 3인의 소회의 위원이 결정하는 것으로 위원장이 개입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공정위 회의 운영 및 사건절차 등에 관한 규칙'을 보면 원칙적으로 전원회의 심의 사항이 아니더라도 '위원장 또는 소회의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전원회의 상정이 가능하다.

전원회의에서 안건을 다시 논의하면 형사상 공소시효를 넘길 수 있으므로 소회의 심의로 마무리했다는 해명은 공정위가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너무 소극적으로 처리했다는 비판을 받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TF는 이번 보고서에서 안건의 전원회의 상정 논의 과정에서 위원장의 판단이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파악했지만 절차적 흠결은 전혀 지적하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윗선'에서 근거 없는 영향력을 행사해 소회의를 통해 민감한 사안을 서둘러 마무리할 가능성을 그대로 방치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면죄부 논란이 끊이지 않는 심의절차 종료 결정은 전원회의보다 소회의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내려지고 있다.

2013∼2016년까지 내려진 83건의 심의절차 종료 결정 중 전원회의 결정은 12건에 불과했고 나머지 71건(86%)은 모두 소회의에서 이뤄졌다.

권 교수는 정 전 위원장과 김 상임위원의 일에 대해 "정 전 위원장을 조사하지는 않았다"며 "의견을 나누는 것으로 봤을 뿐 외압으로 볼 증거는 없었다"고 말했다.

◇ TF 4명 중 3명이 공정위 근무 경력자…'제 식구 TF'의 한계 지적도

이번 TF의 평가 결과는 절반 이상이 공정위 근무 경력자로 채워진 TF 구성의 한계라는 지적도 있다.

공정위 사건처리 절차에 익숙한 친 공정위 인사들이 TF를 구성한 탓에 결국 공정위 사건처리 과정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번 TF는 권오승 서울대 명예교수, 이호영 한양대 교수, 강수진 고려대 교수, 박태현 강원대 교수 등 외부 전문가 4명에 신동권 공정위 사무처장, 조홍선 감사담당관 등 6명으로 구성이 확정됐다.

권 교수는 2006∼2008년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냈다. 이 교수와 강 교수는 각각 2003∼2004년, 2008∼2010년 공정위에서 소송 업무를 총괄하는 송무담당관을 맡았다.

공정위는 지난 9월 애초 이들 3명과 공정위 내부 인사 2명으로 구성된 TF 명단을 발표했다.

하지만 외부 전문가 3명이 모두 공정위 근무 경력자라는 사실이 논란이 되자 부랴부랴 피해자 측 추천을 받아 박 교수를 추가로 TF 위원에 선임했다.

이런 이유로 사회적으로 논란이 많은 사건을 다시 점검하는 TF를 꾸렸지만 첫 단추부터 잘못 꿰졌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권 교수는 이런 비판에 "전문성을 생각하지 않고 근무 경험이 있다고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문가에 대한 결례라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TF는 정치적 외압 규명은 애초에 배제하고 법리적 측면만을 들여다본 한계도 드러냈다.

박 교수는 "강제 조사권도 없어 정치적 외압 규명이 불가능하다고 봤다"며 "한계는 분명히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일단 법리적 측면을 종결 짓고 공정위가 입장을 내는 게 진상에 한 발자국 나아가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이 밖에 TF의 결론이 '잘못'에 대한 책임자 징계 촉구 등 적극적인 행위를 요구하지 않고 유감만을 표하는 데 그쳤다는 비판도 나온다.

권 교수는 "책임자 징계 등 의견은 TF가 판단할 부분이 아니다"며 "공정위가 앞으로 안전 문제에 좀 더 적극적이고 예리하게 대응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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