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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완전범죄는 없다'…용인 일가족 살인사건의 재구성

입력 2017-12-03 18:39 수정 2017-12-04 10:59

용인 일가족 살인사건 #서효정 기자
뉴스의 숨은 뒷얘기! JTBC 취재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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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일가족 살인사건 #서효정 기자
뉴스의 숨은 뒷얘기! JTBC 취재수첩

[취재수첩] '완전범죄는 없다'…용인 일가족 살인사건의 재구성


#1. "언니가 연락이 안돼요."

지난달 21일 용인의 한 아파트, 50대 여성 이모씨와 15세 아들 전모군이 오전 9시쯤 집을 나섰습니다. 3시간이 지난 낮 12시에 이 씨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장남 김씨가 빈 집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아파트 CCTV에는 오후 2시쯤 어머니와 전 군이 귀가하는 모습과, 3시간 뒤인 오후 5시에 장남 김씨가 혼자 밖으로 나오는 모습만 포착됐습니다. 그 이후 드나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용인소방서와 파출소에 신고가 들어온 건 그로부터 나흘이 지난 25일 밤 10시 반쯤입니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이씨의 여동생이 "언니가 며칠간 연락도 안 되고 집에도 없는 것 같다. 아이도 등교를 안 한다"며 신고한 겁니다.

#2. "범행 장소 같지 않게 깨끗했어요. 처음엔 여행간 줄 알았죠."

아파트에 출동한 소방대원과 파출소 직원들은 이씨 집 출입문이 잠겨져 있어, 윗집에서 줄을 타고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 소방대원과 경찰 말에 따르면, 집은 아무런 흔적 없이 깨끗하게 청소돼 있었고 사람도 없었습니다.

앞서 이씨 휴대폰을 위치추적 결과, 공항으로 확인돼 '여행을 떠났나' 하는 순간, 안방을 수색하던 한 소방대원이 안방 베란다 한켠에 있던 이불에서 뭔가를 발견했습니다. 이불 끝자락에 사람의 발이 드러나 있었던 겁니다. '처음엔 마네킹인가 싶었다'고 할 정도로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이불로 덮인 채 발견된 시신은 바로 이씨 모자였습니다. 칼로 목과 가슴 부위를 여러 차례 찔렸고 얼굴에서도 자국들이 발견됐습니다.

특이한 점은 시신에 밀가루가 뿌려져 있었다는 겁니다. 영화 <공공의 적>에선 부모를 살해한 뒤에 밀가루를 뿌려 사건 은폐를 시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입니다. 곧 혈흔 반응은 집안 곳곳에서 나왔고 용의자는 빈집에 드나든 장남 김씨로 지목됐습니다. 경찰은 김씨가 친어머니와 이부동생을 살해한 뒤 시신을 베란다로 옮긴 후 집안을 깨끗이 청소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범행 이후에도 친어머니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면서 걸려오는 전화들을 자신이 받으며 주변 지인들은 물론 경찰 수사까지 교란시켰다는 겁니다.

[취재수첩] '완전범죄는 없다'…용인 일가족 살인사건의 재구성


#3. "두 마리 잡았어. 이제 한 마리 남았어."

김씨는 곧바로 피의자로 전환됐지만, 이미 한국을 떠난 상황이었습니다. 경찰은 김씨가 범인이라는 정황을 곳곳에 포착했지만, 정작 그와 관련된 자백이나 진술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김씨의 행각은 의외의 상황에서 꼬리가 잡혔습니다. 친어머니와 이부동생을 살해한 김씨는 아파트에서 나온 직후, 강원도 횡성에 있는 한 콘도 프런트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김씨가 자신의 부인과 아이와 함께 그 전날부터 콘도에 묵고 있었는데, 휴대전화가 없는 자신의 부인 정모씨와 통화하기 위해 전화를 건 겁니다. 김씨는 당시 통화에서 "두 마리 잡았어, 이제 한 마리 남았어"라고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해당 콘도는 프런트를 통해 객실로 전화를 걸 경우 자동으로 녹음이 되는 곳이었습니다. 경찰은 김씨와 부인 정씨가 이런 사실을 몰랐거나, 아니면 이를 알기 때문에 '두 마리' '잡았다' 와 같은 은어를 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결국 이 통화녹음은 김씨의 살해 혐의 뿐만 아니라 부인 정씨가 사전에 범행을 공모했다는 의혹을 추궁할 때도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됐습니다.

범행 진행 상황을 은밀하게 공유한 김씨는 의붓아버지 전모씨까지 불러냅니다. 지역 향우회 모임에 지인들과 함께 있던 전씨는 아들 김씨의 전화를 받고 자리를 떴습니다. 김씨는 건물 앞에서 의붓아버지를 차에 태워 강원도로 출발했습니다. 김씨는 의붓아버지에게 강원도에서 펜션사업을 할 만한 매물이 나왔다며 이를 보러 가자고 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선 오후 8시쯤 CCTV 하나 없는 평창의 한적한 도로 졸음쉼터에서 전씨를 흉기로 가격해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김씨의 대담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숨진 의붓아버지의 시신을 트렁크에 실은 뒤, 부인과 아이들이 머물고 있는 횡성의 콘도로 향합니다. 그리고 이튿날(22일), 애초 예약했던 퇴실일보다 하루 일찍, 시신이 담긴 렌터카를 주차장에 두고 서울로 출발합니다. 강남에 있는 도심공항터미널에서 항공권을 산 김씨 가족은 바로 다음날 뉴질랜드로 출국합니다.

[취재수첩] '완전범죄는 없다'…용인 일가족 살인사건의 재구성


#4. "잡히면 너는 모르는 일로 해."

김씨 가족은 뉴질랜드 이주 이후 현지 교민들의 제보로 꼬리가 밟혔습니다. 신도시 호화 주택에 갑자기 이주하면서 가전제품들을 사들이는 것을 수상하게 여기고 한국 경찰은 물론, 현지 영사관에도 이를 알린 겁니다. 도주를 우려한 현지 영사관에서는 김씨의 과거 절도 전력을 뉴질랜드 경찰에 알려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부인 정씨는 살인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귀국하라고 설득하는 친정 식구들과의 전화통화에선 "김 서방이 예전에 저지른 절도죄 때문에 체포됐는데 별 일 아니니 금방 풀려날 거야" 라고 말했던 것으로도 파악됐습니다.

실제 지난달 1일 부인 정씨는 자진귀국했습니다. 당시 정씨가 가지고 있던 태블릿PC에는 구체적인 범행 계획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김씨가 자신의 친어머니를 살해하기 전날, 콘도에서 해당 태블릿PC를 활용해 범행과 도피 계획을 세운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입니다. 범행 전날 밤 이들은 태블릿PC에선 '찌르는 방법' '경동맥 깊이' '범죄인 인도 조약' 등을 검색한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해당 콘도 역시 범행 계획을 위해 부부가 임시로 아지트를 마련한 셈입니다. 경찰은 김씨가 흉기로 부모와 이부동생을 죽이게 된 배경도 부부가 함께 의논을 거쳐 나온 방법으로 보고 있습니다. 부인 정씨는 경찰 진술에서 "영화에서 봤는데 수면제를 수건에 묻혀서 코와 입을 막아 죽이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고 남편에게 제안했다"고 말한 겁니다. 하지만 김씨는 "그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방법"이라며 실제 그 방법을 채택하진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부인에게 "발각되면 너는 모르는 일로 하라"고 당부하며 치밀하게 은폐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5. 120자의 계속된 부인

"저 돈 때문에 아닙니다 저는 제 딸들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저희 딸들을 납치하고 해한다는데 어느 부모가 화가 안 납니까 죽이고 싶다지 죽이자 계획한 거 아닙니다 저는 남편한테 3년 동안 속고 살았습니다 모든게 거짓이었습니다 저는 억울합니다 제 말 쫌 들어주세 기자님 변호사님 제발 도와주세요."

지난달 10일 남편의 살인 사실을 모른다고 잡아뗐던 부인 정씨는 존속살인·살인 공모 사실을 자백하고 검찰에 송치됐습니다. 정씨를 태운 호송차가 지나간 직후 경기 용인동부경찰서 앞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부인 정씨가 기자들에게 120자의 쪽지를 남기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경찰도 사전에 몰랐던 돌발 상황이었습니다. 경찰은 정씨가 구속된 뒤 유치장에서 해당 쪽지를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유치장에선 피의자가 종이나 펜을 요구하면 줘야 하고, 뭔가를 쓴다 하더라도 그 내용을 볼 수 없습니다.

정씨가 작성한 쪽지의 핵심은 본인도 남편에게서 속았다는 것입니다. 경찰 조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취지로 진술을 해왔다고 합니다. 남편이 평소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왔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에게 물려 받을 100억대의 유산이 있는데, 이를 어머니가 가로막고 있다. 여의치 않으면 우리 가족들을 해칠 수도 있다.' 때문에 남편은 어머니를 죽이고자 했고, 본인도 처음엔 말리다가 결국 어머니가 자신과 아이들을 해칠까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는 겁니다.

경찰은 주범 김씨를 조사하지 않은 상태라 조심스러운 입장이지만 정씨가 쪽지에 쓴 주장에 대해선 신빙성이 높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일단, '100억대 자산가'라는 김씨의 할아버지를 정씨는 만나본 적도, 만나려고 시도해본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존재 여부도 알 수 없는 할아버지 때문에 남편의 살인 계획에 동조한다는 점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체포 전과 체포 후, 구속된 이후 정씨의 진술이 범행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계속 바뀌어왔다는 점도 진술의 신빙성을 낮추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물론 경찰은 김씨를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씨 주장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입장입니다. 실제 아직 재판도 받지 않은 피의자이며, 억울함은 충분히 고려돼야 합니다. 하지만 잔혹하게 살해당한 의붓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중학교 2학년밖에 안 된 동생의 죽음을 생각한다면 김씨는 물론, 정씨에 대한 혐의도 명명백백하게 가려져야 할 것입니다. 실제 지구 반대편으로 도주했던 김씨도 곧 송환을 앞두고 있습니다. 김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요청 서류가 이미 뉴질랜드 법무부에 접수됐고, 김씨 본인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에 반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인과의 공모부터 아직 사건과 관련해 풀리지 않은 의혹들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범행 동기나 범행 과정은 주범인 김씨만 진술할 수 있을 겁니다. 이부분이 곧 명백히 밝혀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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