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2월 2일 찬바람 부는 겨울의 초입. 그는 꼿꼿한 목소리로 성명을 읽어내려 갔습니다.
검찰의 출두 통보 바로 다음날 오전 9시에 전격 단행된 이른바 '골목성명'이었습니다. 방송사들은 급히 특보를 편성해 내용을 중계했죠.
"온 나라가 극도로 혼란과 불안"… 전 정권을 "타도와 청산의 대상으로 규정한 것은 좌파 운동권의 일관된 주장"… 검찰 수사는 "현 정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
군형법상 반란수괴 혐의를 받은 전직 대통령의 뒤편에는 측근들이 도열해 있었고 그의 목소리엔 노기가 서려있었습니다. 그리고는 호기롭게 국립현충원에 참배했고 고향인 합천으로 내려가 버렸지요.
그리고 찬바람 가득했던 지난 일요일. 22년 전 연희동 골목길에서 들어보았던 익숙한 단어들은 또다시 시민들의 앞에 등장했습니다.
"개혁이냐, 감정풀이냐, 정치적 보복이냐…" "국론을 분열"시키고 "외교 안보를 더욱 위태롭게 만든다"
4분에 걸친 이른바 '공항성명'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도 또한 '역정'이 묻어났습니다.
마치 데자뷰와도 같이 다른 듯 닮아있었던 1995년의 골목성명과 2017년의 공항성명.
하긴… 연희동 골목성명에 담겨있었던 그 말들은 바로 얼마 전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의 법정 진술에도 등장했다 하니 청산 대상이 된 전직 대통령들에게는 이른바 표준 작문법이라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결기 있게 쏟아낸 주장은 되레 그가 처한 현실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