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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비무장지대…의도치 않은 '무진기행'

입력 2017-11-0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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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김승옥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 무진 霧津은 한자 그대로 '안개나루' 라는 의미를 품고 있었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무진의 안개는 작은 도시를 신비로움으로 감싸는 한편 모호함으로 가득한 미래를 암시하는 듯 낮게 깔려 작품 전체를 지배합니다.

그러나 안개는 아름답지만 때로는 재앙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2년 전 인천 영종대교에서 벌어진 106중 추돌사고의 원인은 시야를 뒤덮은 지독한 안개 때문이었고 태평양 전쟁의 시작을 알린 일본의 진주만 공격 역시 증기무가 짙게 낀 바다의 안개가 전쟁사에서 보기 드문 대규모의 기습공격을 가능하게 만들었지요.

오늘 새벽, 사람이 살지 않아 인적이 드문 그곳 역시 자욱한 안개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파주의 시정은 0.87km. 여기에 중국발 미세먼지까지 겹쳤으니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를 방문하려 했던 두 사람의 여정은 의도치 않은 무진기행이 되어 엇갈렸습니다.

그 자욱했던 안개는 명쾌한 답을 찾기 모호한 남과 북의 관계를 상징하는 듯 시야를 어지럽혔고 여기에 더해 중국에서 불어닥쳤다는 누런 미세먼지는 우리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중국의 존재를 상징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무진기행 속 그 안개는 도시의 명산물이라 칭할 만큼 아름다웠겠지만, 시야를 어지럽히는 희뿌연 안개는 끝내 벗어나고 싶었을 무엇이었던 것입니다.

작가 한강은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비무장지대, 흙으로 가득한 그곳이 "때때로 바다와 같이 느껴진다"고 했던 동료 작가의 말을 전했습니다.

수십 년간 한국인의 내면에 축적된 긴장과 불안, 단조로운 대화 속에서 짧게 번뜩이는 공포.

남과 북은 마치 섬처럼 분리되어 함께 있되 함께 있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오늘날의 한반도 상황과 미중 사이에 얽힌 우리의 처지를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비무장지대를 감싸고 있었던 안개의 바다. 그리고 중국발 미세먼지.

오늘(8일)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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