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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진압' 문구는 삭제…가위질 당한 '5·18 체험수기'

입력 2017-10-12 08:48 수정 2017-10-1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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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JTBC가 입수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은폐 공작 문건은 진상 규명의 핵심 열쇠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취재 기자와 한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지은 기자, 이른바 광주사태 체험수기라는 문건인데 이게 정확히 뭡니까?

[기자]

육군본부가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의 수기를 정리한 것입니다. 1985년과 88년에 작성된 것인데요.

1988년 국회 광주 특위 청문회를 앞두고 국회에 제출되면 수기 내용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보안사 511분석반이 내용을 뜯어 고치도록 한 것입니다.

[앵커]

발포명령자 문제가 불거질 수 있으니까 고쳐라 이렇게 했다는 것인데 또 어떤 부분을 고치라고 했습니까.

[기자]

네. 과잉진압이나 사격 시기, 사망자 수 등과 관련한 것들은 수정 조치했고, 과도한 진압이었다는 내용 등이 담긴 수기는 아예 통째로 빼버렸습니다.

[앵커]

자, 그러면 과잉진압에 대한 부분부터 하나씩 살펴보지요.

[기자]

당시 11공수여단 인사참모였던 권모 중령의 수기입니다.

'다음 작전을 고려 초기진압 단계에서 강력하게 대항했다' 이게 문제점으로 지적돼 있습니다. 이것을 '초기 작전부터 의도적인 과잉진압으로 인식'이 될 수 있으니 '본인에게 통보, 부분 수정'을 하라고 조치합니다.

[앵커]

과잉 진압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수정을 하도록 했다는 것이지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다음 장면도 보시겠습니다. '5월 20일은, 19일의 과잉진압으로 시민 반응이 좋지 않다. 오후부터 적극적 진압지시'라고 된 부분 역시 '과잉진압 관련설의 근거가 된다' 이런 이유로 재작성을 하라고 했습니다.

수정된 권 중령의 20여장 짜리 수기를 확보해서 봤는데, 빼라고 한 내용은 역시나 빠진 채로 국회에 제출됐습니다.

[앵커]

당시 국회 청문회에서 문제를 삼을만한 부분은 모두 빼라고 한 것 같은데, 또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기자]

당시 3공수여단 15대대장의 수기를 보면 '화염방사기 깨스 분출구와 공포사격 실시'라고 돼 있는데 '사격 시기와 관련한 부분'이니 역시 재작성을 하라는 조치가 내려집니다.

또 '폭도들의 허위첩보에 의해서 오인 사격'이라는 부분은 '군 위신 추락 내용'이기 때문에 다시 작성하라고 했습니다.

[앵커]

수기를 고치라고 한 것이 아니라 아예 제출 대상에서 빼버린 것도 있다고 했는데, 그건 어떤 내용들입니까?

[기자]

네. 당시 31사단 군수처 선임하사는 '초기 진압작전이 너무 과도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18일과 19일 7공수 진압작전이 오늘에 이르는 문제를 발생하게 한 동기다' 이렇게 썼습니다.

이 수기는 과잉진압의 근거가 된다는 이유로 아예 제출 대상에서 빠졌습니다.

[앵커]

반대로 신군부에 유리한 내용은 적극 활용하라는 부분도 있지요?

[기자]

네. 당시 3공수여단 16대대장이 쓴 수기에 '전남대 정문과 후문에 2만~3만 명의 군중이 있었는데 이들 속에서 간혹 카빈총을 쏘아대곤 했다' 이렇게 썼습니다.

이는 '반증자료로 활용'이라고 나왔는데요. 그러니까 신군부 입장에서 정당방위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근거로 쓰라는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5·18 특별 조사위원회가 이같은 자료의 진위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할 것 같군요. 40년 가까이 묻혔던 진실들이 이번에는 반드시 모두 밝혀지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이지은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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