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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쏘는 정치] '창경궁~종묘' 88년 만에 다시 잇는다

입력 2017-09-28 19:18 수정 2017-09-2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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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 아나운서]

안녕하세요, 톡쏘는 정치 강지영입니다. 제가 오늘(28일)은 창경궁에 나왔습니다. 추석 연휴도 다가오고 고궁에 온다고 해서 한복을 입어봤습니다. 잘 어울리나요?

이곳 창경궁을 아마 40대 이상이신분들은 창경원으로 기억하시는 분들 많을 겁니다. 바로 일제시대때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면서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는데요. 뿐만아니라 종묘와 이어지는 길을 단절시켜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서울시가 종묘와 창경궁 사이에 담장을 만들고 보행길을 만든다고 하는데요. 과연 어떤 길이 만들어지고, 어떤 의미인지 자세한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Q. 창경궁-종묘 길, 어떻게 만들어지나?

[한정무/서울시 간선도로계획과 팀장 : 서울시에서는 지금 율곡로에 그 돈화문에서 원남 사거리까지 구간에 대해서 도로를 4차로에서 6차로로 확장하면서 일제강점기 때 단절된 창경궁과 종묘 구간에 대해서는 그 구간은 지하화 하면서 지상분은 복원하고 복원된 담장을 따라서 보행로를 개설해서 시민들에게 제공할 계획입니다. 2019년 말 하반기에는 시민들에게 개방할 계획입니다. ]

이곳은 창경궁 통명전인데요. 왕비의 침전으로 쓰였던 곳입니다. 창경궁은 경복궁 덕수궁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궁궐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일제시제때 일본이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는데요. 왜 그랬을까요? 최아현 박사에게 자세한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Q. 창경궁을 왜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나?

[최아현/박사 : 명목상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이뤄지고 순종을 위로한다는 의미에서 여기에 동물도 들여다놓고 (식물원도 만들고) 그렇게 운영을 했지만…실체적 의미로 궁을 하나의 원으로 위락공간으로 전락시켰다는 그런 의도도 숨어있겠죠.]

Q. 일제, 창경궁과 종묘 단절시킨 이유는?

[최아현/박사 : 1919년에 수정이 되어가지고 현재 율곡로라고 불리는 종묘와 창경궁 사이를 가르고 있는 길처럼 그런 모습이 그때 그려지게 됩니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가장 먼저 세운 건물이 경복궁과 종묘입니다. 그만큼 중요시했던 것이죠. 끝까지 반대하다가 순종이 돌아가시게 됩니다. 1926년 그래서 다시 도시계획 사업이 활성화됐고 결국 1931년에 공사가 이뤄지게 됩니다.]

Q. 창경궁과 종묘 잇는 보행길, 의미는?

[최아현/박사 : 왕조시대 때 사용됐던 공간을 시민에게 돌려준다…그런 의미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창경궁은 비운의 궁이기도 합니다. 문정전 앞뜰에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결국 죽음에 이르렀는데요. 심지어 일본에 의해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와 단절시키기 까지 합니다. 말하자면 부모로부터 아이를 떼놓은 아픔을 겪은 셈이죠. 추석 연휴 때 창경궁을 찾으시면 창경궁의 아픈 역사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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