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야구와 야큐]NPB 58번째 노히트노런 투수, "무볼넷 경기가 더 가치있다"

입력 2017-05-30 06:01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야구와 야큐]NPB 58번째 노히트노런 투수, "무볼넷 경기가 더 가치있다"

유후네 도시로(41).

한국 야구팬들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투수다. 일본 야구팬 사이에서도 1990년대 한신의 '암흑기'에 활약했던 투수 정도의 인지도다. 1991년 프로에 데뷔해 통산 60승 79패 평균자책점 3.99에 그쳤다. 하지만 이런 투수라면 오히려 ‘일본 야구’를 편견 없이 들려 줄 수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난 26일 일본 오사카 고시엔 구장에서 그를 만났다.

꼭 묻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기도 했다. 노히트노런이다. 유후네는 한신 입단 2년째던 1992년 6월 14일 히로시마전에서 삼진 11개와 볼넷 2개를 기록하며 일본 프로야구 사상 58번째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장소는 인터뷰를 진행한 고시엔 구장이었다. 고시엔구장 10번째이자 마지막 프로야구 노히트 노런이기도 했다. 노히트노런의 기분은 어땠을까.

[야구와 야큐]NPB 58번째 노히트노런 투수, "무볼넷 경기가 더 가치있다"



- 막무가내지만, 노히트노런 이야기부터 듣고 싶다.

“노히트노런을 한 투수가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언제부터 기록을 의식했냐'이다. 그 경기 5회인가 6회인가가 지났을 때였다. 코치가 불러서 ‘너 오늘 피안타 없어’라고 했다. ‘아 그런가요?’라고 무심한 척을 했지만 던지는 사람이 더 잘 아는 법이다.(웃음) 이후 그 코치는 매 이닝 벤치에 올 때마다 내게 다가와 ‘아직도 맞지 않았어’라고 계속 말했다. 당시 포수는 팀 선배였던 기도 가쓰히코. 평소 후배 투수들을 굉장히 예민하게 다루는 포수였다. 늘 ‘차라리 맞아라. 볼넷은 죽어도 싫다’고 했다. 그런 선배가 ‘2-0 상황에 '볼넷을 줘도 좋으니까 편하게 던지라’고 했다. '노히트노런이란 이런 건가' 싶었다."
[야구와 야큐]NPB 58번째 노히트노런 투수, "무볼넷 경기가 더 가치있다"

- 그 코치는 누구였나. 보통 투수가 기록을 앞두고 있으면 말도 잘 안 건다고 하던데.

“오카다 아키노부(웃음). 오카다 코치는 한신 스타 출신으로 2004~2008년엔 감독을 지냈다. 코치 이전에 대선배 아닌가. 우승 멤버이기도 했고, 그런 대단한 사람이 격려해주는 것에 나도 마음을 편하게 가졌다. 운도 따랐다”

- 노히트노런에는 '기운'이 따라야 한다고 들었다. 등판을 앞두고 평소 루틴과 다른 점이 있었나.

“보통 연습 투구 20개 정도를 하고 등판한다. 그 날은 이상하게 공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41구까지 던졌다. 원래는 20구를 던진 뒤 20구만 더 던지려 했다. 그런데 불펜 포수가 1구만 더 가자고 했고, 그렇게 41구가 완성됐다. 노히트노런 경기 뒤 은퇴할 때까지 내 경기 전 연습투구 횟수는 41개로 정해졌다. 그런데 내게는 노히트노런보다 더 중요한 피칭이 있었다.”

- 뭔가.

“무볼넷 완봉승이다. 1992년 9월 15일 히로시마전이었다. 투수는 안타를 맞으면 '어쩔 수 없지'라고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볼넷을 많이 내준다는 건 자멸이다. 무안타 경기는 야수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무볼넷 경기는 내 어깨와 팔, 손가락의 감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팀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뿌듯함이 있다. 물론 동료들도 도왔다. 지금도 노히트노런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경기가 무볼넷 완봉이다. 그 경기도 물론 연습 투구는 41개였다.”

- 기록을 찾아보니 그 경기 마지막 타자가 지금 KBO 리그 KIA의 쇼다 고조 코치다.

“2001년 긴테쓰로 이적했을 때, 그 분이 코치로 오셨다. 따로 불러서 긴테쓰 팀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날 경기를 쇼다 코치도 기억하더라. ‘나에게 감사해라’라고 말했다. 쇼다 코치는 새 선수가 오면 긴장을 풀어주려 미리 신상정보를 파악했다. 일본 프로야구 12개 구단에 얼마나 많은 선수가 있겠나. 기억해주고 농을 던져줘서 긴장감이 풀렸다. 한국에서도 좋은 코치로 인정받길 바란다.”

- 한신 시절 여러 감독들을 만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 감독은.

“역시나 노무라 가쓰야 감독(1999~2001년). 어느 원정 경기에서 늦잠 때문에 지각을 했다. 노무라 감독은 구장에 늦게 나오는 편인데 그날 따라 일찍 나왔다. 더그아웃에 들어가니 남은 자리라곤 감독 옆밖에 없었다. 다음날 선발 등판이라 쫓겨나지는 않겠다 싶었다. 감독이 갑자기 '내일 이기면 벌금은 반이다. 하지만 원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 일이 가장 기억이 남는다. 경기를 잘했다는 이유로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선수가 성장할 수 없다는 걸 배웠다. 물론 벌금은 반값이 됐다."

- 센트럴리그에선 투수도 타석에 선다. 투수 입장에서 프로 첫 타석은 어떤 기억일까.

“'이것이 프로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보통 투수들은 ‘나도 고등학교때 타격 좀 했지’라는 자세로 첫 타석을 맞이한다. 내가 첫 타석에서 만난 상대 투수는 요미우리의 고다 이사오였다. 공의 궤적이 정말 처음 보는 것이었다. 타이밍만 맞춰서 휘둘렀는데, 파울이 된지도 모르고 1루로 전력질주 했다. 만원 관중이 보는 앞에서 창피했다. 그 시절에 가장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공을 던졌던 투수는 구와타 마스미였다.”



▲유후네 도시로 '노히트노런' 경기영상

- 한신에서 10년을 뛰었다. 한신에선 OB들이 적극적으로 의사 표시를 한다. 한신 OB회는 어떤 곳인가.

“한신에서 어느 정도 활약한 선수 출신들의 모임?(웃음) 대부분 은퇴 이후에도 구단에서 일한 사람들이 많다. 동창회 같은 느낌으로 모인다. OB회의 영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신이라는 팀 자체가 영웅들이 만들어지는 곳 아닌가. 그들이 곧 OB회를 구성하는 인물들이다. 과거 대선배들부터 지켜본 바론, 누가 언젠가는 감독이 될 것이라는 예상 정도는 된다. OB회는 구단이 감독 및 코치 인선, 스카우트 등 부문에서 자문을 구하는 조직이라고 볼 수 있다. 오랜기간 동안 협조적인 관계였다.”

- 센트럴리그는 퍼시픽리그보다 팬은 많지만 홍보나 운영에서 뒤진다는 평가도 있다.

“확실히 그런 이미지는 있다. 센트럴이 전통을 중시한다면, 퍼시픽에는 젊은 감각이 있다. 변화가 두렵다기 보다는, 센트럴리그 구단은 요코하마 정도를 제외하면 옛날 방식을 고수할만한 기업들이 운영한다. 의사 결정 방식도 내 현역 때에 비해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실질적인 운영과 관리는 구단 고위층이 지시하고, 감독은 스타플레이어들이 집중할 수 있는 야구를 펼치는 그림이다. 퍼시픽리그에서 구단, 감독, 선수들가 함께 그림을 그린다면, 센트럴리그는 감독에게 붓과 물감을 마련해주고 ‘당신이 현역 때 잘 했으니까 한번 해보시오’라는 느낌이다. 그래서 잘못하면 냉정해지는 분위기는 센트럴리그 쪽이 더 강하다”

- 국적을 떠나 야구가 재밌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야구는 '납득이 돼야 하는 경기'가 아닌가 싶다. 화려한 장면도 있지만, 후회가 가장 많이 되는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후회되지 않기 위해서는 팬, 구단, 선수 모두 납득할 수 있게 이기고, 져야 한다. 한 시즌에 100경기가 넘는다. '오늘 이겼지만 내일은 질 거야', '오늘 졌는데 내일은 이길 수 있을까' 같은 부정적인 마음가짐이 생기게 된다. 부정적인 마음을 없애긴 위해선 납득이 가는 경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 '납득'이 어렵다. 내가 생각하는 '재미있는 야구'는 '납득이 되는 내용과 결과'다”

[야구와 야큐]NPB 58번째 노히트노런 투수, "무볼넷 경기가 더 가치있다"



서영원(프리랜서 라이터)

[야구와 야큐]일본 야구계와 선거 출마
[야구와 야큐]일본야구계가 기억하는 이승엽 “‘야큐’에 한국 야구 무서움 전해”
[야구와 야큐]일본 정치인들은 언제 야구 유니폼을 입을까
[야구와 야큐]2016년 세이부 감독 다나베, 올해 한화를 말하다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