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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서 "발포 명령 없었다"는 전두환…문제점은?

입력 2017-05-18 21:32 수정 2017-05-18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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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책임 소재를 가리는 핵심은 바로 첫 발포 명령자를 찾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전두환 씨는 회고록 등을 통해 발포 명령자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런 것인가…정치부 서복현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우선 여기에서 발포 명령은 5월 21일 발포를 말하는 것이지요?

[기자]

네, 5월 21일 전남도청 앞 발포입니다. 군의 첫 집단 발포였고 조준사격이 있었습니다. 이때문에 수 백명의 사상자가 나왔고요. 또 이 발포 후에 시민들도 본격적으로 총기를 확보했습니다.

그러니까 첫 발포 명령자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누군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앵커]

네, 전두환 씨는 시민이 먼저 쐈다…이렇게 주장을 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리고 저희가 이따가 2부에서 전남대 병원 원장을 지낸 김영진 교수를 연결 할 예정인데, 당시에 물론 전남대 병원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근데 첫 총상 환자가 19일에 병원에 들어왔다는 증언이 이 분으로 부터 있는데, 지금 이분의 증언 내용은 저희 취재진이 미리 잠깐 들어본 바로는 굉장히 적나라한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따 2부에 직접 연결해서 들을 텐데요… 해당 기사 보기 ☞ [인터뷰] 전남대병원 레지던트 1년차로 겪은 5·18은…

[기자]

방금 말씀하신 19일에요. 발포가 있었습니다. 사상자가 있다…2007년도에도 이미 규명이 된 바가 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5월 21일은 집단 발포, 그러니까 집단 발포를 말씀 드리는 겁니다.

[앵커]

물론 그전에 있었다는 것은 알려지기는 했었는데, 이분이 바로 그당시에 병원에 있었던 분이어서 보다 정확한 얘기를 더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97년 전두환 씨에 대해 대법원이 내란목적살인죄에 대해 유죄를 확정했잖아요? 발포 명령을 인정했기 때문이 아닌가요?

[기자]

일단 대법의 판단은 5월 27일 광주재진입 작전 이른바 '상무충정작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무장 시민들이 있는데 진입 명령을 한 건 발포 명령이 포함된 것이 분명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 부분은 5월 27일 발포기 때문에 5월 21일 발포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5월21일 발포부터 시민 사살이 본격화됐기 때문에 첫 발포 명령을 누가 했느냐를 밝히는 건 큰 의미가있습니다.

[앵커]

전두환 씨는 지금 발포 명령이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는 거잖아요?

[기자]

회고록에서요. "5·18 사태는 '폭동'이란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민간인 학살 없었다. 발포 명령자 없었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앵커]

2007년에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관련 조사 결과 발표가 있었잖아요? 물론 발표도 나왔고, 발포 명령이 없다는 결론이었나요?

[기자]

정확히 말씀드리면 발포 명령 문서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발포로 인명살상이 행해졌는데 제지하는 지휘관이 없었고 문책도 없었다. 또 최소한 계엄사 당국의 암묵적 지원 아래 행해졌다고 추정하기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명령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해당 문건이 확인이 안 됐고 정황은 있다는 취지입니다.

[앵커]

따라서 좀더 조사가 이뤄져야 될 부분, 문장 상으로만 놓고 보더라도, 그런 상황이 이제서야 다시 시작되는 그런 상황인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발포는 있었는데 발포 명령은 없었다. 그렇다면 왜 발포가 된 겁니까?

[기자]

1989년 국회 청문회에 나온 전 씨의 발언 직접 들어보시지요.

[전두환/전 대통령 (1989년 12월) : 자위권 발동도 가능하다는 계엄사령부의 작전지침이…지휘 계통… 자위권의 발동은 최악 상황에서만 현지 지휘관의 사태판단에 따라…당시 위급한 상황에…]

잘 안들리는 부분도 있죠, 항의가 거셌기 때문에. 요약하면 계엄사령부의 자위권 발동 지침이 있었다, 현지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발포했다는 겁니다.

[앵커]

지휘관 발동은, 자신이 아니라…그러니까 자위권이죠, 자위권 발동은 자신이 아니라 계엄사가 했다는 거군요?

[기자]

그런데 사실과 다르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5월 21일 새벽 4시 30분에 계엄사 대책회의에서 자위권이 논의되기는 했습니다. 이 때 전 씨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회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2007년도 국방부 과거 진상규명위가 당시 진종채 2군사령관의 메모를 확보한 것인데요. 그 메모를 보면요, 장관실에서 장관, 총장, 군사령관, 합수본부장, 수경사령관, 육사 교장 등이 있었고, 또 "초병에 대해 난동시 군인복무규율에 의거 자위권 발동 강조"라고 돼 있습니다. 여기서 합수본부장, 합수본부장이 바로 전두환 씨입니다.

[앵커]

다 아는 사실이죠. 그러니까 자위권에 의해서 전 씨는 말하고 있는 것인데, 바로 그 자위권 발동 회의에 합수본부장인 전씨가 참석을 했다는 것이고…(그렇죠.) 사실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 당시에 그야말로 실권자가 합수본부장이 었던 전두환씨 였다는 것. (보안사령관도 겸하고 있었죠.) 그게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기자]

그렇기 때문에 이 자위권 발동 회의에…일단 이 자위권 발동 회의는요. 당시 진 사령관은 5월 21일에 광주에서 올라와서요,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방문해 자위권 발동을 건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이 자리에 전 씨가 있었던 건데, 사실상 가장 실권자이기 때문에 전씨의 입에서 나간것 아니냐…이런 의혹들이 나오고 있는 거죠.

[앵커]

적어도 그것을 몰랐을 리는 없는 것이고, 당시 논의 구조로 놓고 볼때는, 전씨가 지휘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합리적인 의심.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자위권이라는 주장 자체도 문제인데요, 지금 헬기 사격까지 확인된 상황인데, 그게 과연 자위권이냐… 그런 얘기 아니겠어요?

[기자]

그러니까 자위권이란게, 지킨다는 개념이지 않습니까? 공세적인게 아니라 수세적이라는 개념인데…그런데 2007년 진상규명의 자료를 보면, 시민들이 본격적으로 총기를 확보한건 군의 발포 이후부터 있었다…이런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러니까 자위권과 거리가 있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도청 앞 전일빌딩에 헬기에서 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탄흔들이 발견됐습니다. 헬기 작전 계획 실시라는 문건도 확인됐습니다. 헬기 사격은 자위권 행사와 거리가 너무나 멀죠.

결론적으로 발포 명령은 없었고 계엄사의 자위권 발동에 따라 현장 판단이었다는 전 씨 주장은 신뢰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습니다. 정부가 첫 발포 명령자, 헬기 사격 명령자를 찾는 조사를 해야 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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