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승리 압박, 불안감, 초조… 재조명받는 축구선수의 우울증

입력 2017-05-12 06:01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승리 압박, 불안감, 초조… 재조명받는 축구선수의 우울증

"저는 현역시절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왜 프로선수들이 이 병에 걸린 사실을 숨기려고 하는지 이해합니다."

잉글랜드 축구계가 한 축구팀 감독의 용기있는 우울증 투병 사실 고백에 주목하고 있다. 축구는 '마초(Macho·거친 남성)'의 향이 짙게 베어 있는 스포츠 종목이다. 그 때문인지 축구와 우울증의 상관관계를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그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용기 있는 고백이 이어지고 있다.

주인공은 이청용(28·크리스탈 팰리스)의 스승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SPL)의 닐 레논(46) 하이버니안 FC 감독이다.

◇ 레논 감독의 용기있는 우울증 '커밍아웃'

승리 압박, 불안감, 초조… 재조명받는 축구선수의 우울증

영국 스카이스포츠와 텔레그라프 등 현지 매체는 지난 9일(한국시간) 레논 감독의 우울증 '커밍아웃'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나는 선수시절부터 우울증으로 치료를 해왔다. 감독으로 활동 중인 올 시즌에도 4~5주간 치료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레논 감독이 갑작스럽게 우울증 투병 사실을 꺼낸 이유는 에버튼의 측면 공격수 아론 레논(30) 때문이었다. 아론은 지난 3일 극심한 스트레스성 장애를 겪으면서 정신건강법에 따라 치료시설에 구금됐다. 그의 대리인은 "아론 레논이 현재 스트레스성 질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고, 구단이 회복을 위해 도와주고 있다"고 밝혔다.

에버튼 미드필더 아론 레논.

잉글랜드 축구선수협회(PFA)는 아론 레논 사태 뒤 "지난해에만 현역 선수 중 62명, 전직 선수 중 98명이 우울증으로 인한 상담을 요청했다"며 "그런데도 선수들이 감정적인 문제를 털어놓는 걸 꺼리고 있다"고 사안의 심각성을 알렸다.

레논 감독은 선수들이 먼저 자신의 우울증 투병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는 이유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2005년 셀틱 FC의 '캡틴'을 맡기도 했던 그는 "우리는 대중 앞에 용감한척 하며 나서야 한다. 건강한 멘탈을 유지하는 데 상당히 어려운 직업"이라면서 "나 역시 왜 선수들이 우울증 투병 사실을 꺼리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당당하게 전문가들과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레논 감독은 적극적인 상담 치료와 구단과 스태프들에게 자신의 투병 사실을 알려왔고 도움을 받아왔다. 스코틀랜드 리그 감독 협회(LMA·League Managers Association)에도 우울증을 앓고있다는 점을 밝히고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다. 올 시즌에도 4~5주 가량 우울증 치료를 받았던 레논 감독은 고비를 잘 이겨내고 자신이 이끄는 하이버니안 FC를 정상급으로 이끄는 데 성공했다.

스카이스포츠는 "레논 감독이 현역시절부터 정신 건강 문제를 어떻게 대처해 왔으며, 감독이 된 지금도 계속해서 싸우고 있는 우울증 이슈를 세상에 공개했다"고 평했다.

승리 압박, 불안감, 초조… 재조명받는 축구선수의 우울증

◇ 전문가 "운동선수 우울증, 일반인보다 더 많은 관심 필요"

전문가들은 프로선수들의 우울증이 일반인과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띈다고 분석했다.

스포츠심리학 박사인 김병준 인하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일반인은 운동을 꾸준히 하면 우울 증세가 개선된다. 멘탈이 긍정적으로 변화면서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는다. 운동은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 특효약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운동을 '업'으로 삼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고된 훈련 속에서 날마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면서 오히려 우울감이 심해질 수 있다. 김 교수는 "일반인과 달리 운동선수들은 운동을 할수록 우울해 진다. 강도 높은 훈련이 끝없이 이어지고 결과에 대한 부담도 끝없이 지속된다. 우울증이 깊어지면서 심각한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운동선수의 우울증이 종종 극단적 선택의 결과를 낳는 이유다.

2008년 독일 분데스리가의 TSV 1860 뮌헨에서 프로에 데뷔한 안드레아스 비에르만은 우울증 증세를 이기지 못하고 33세이던 2014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9년 11월10일 우울증을 앓던 중 딸의 사망으로 딸의 무덤 근처 기차역에서 자살을 선택한 독일 대표팀 골키퍼 로베르트 엔케 이후 5년 만에 반복된 비극이었다.

독일 축구계에 큰 충격을 주었던 골키퍼 로베르트 엔케의 자살.

이들은 강인해 보여야 한다는 직업적 특성상 우울한 기분이나 상태를 주변에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

프로선수일수록 우울증 초기 증세인 '번아웃(Burn out) '을 빨리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 번아웃이란 신체 에너지가 갑작스럽게 소진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평소와 달리 갑자기 운동에 흥미를 잃거나 훈련이 싫어질 때, 자고 일어나도 피곤이 가시지 않는 경우에는 번아웃을 의심해 봐야 한다. 자신의 종목에 관심이 줄어들거나 주변 사람들과 관계의 폭이 줄어들 때도 우울증 초기 상태일 수 있다.

김 교수는 "우울증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승부의 결과를 떠나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적극적으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 심리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 주변에서도 항상 강인한 척 보여야만 하는 운동선수들의 내면을 두루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서지영 기자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