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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전설의 고향이냐"…아파트 단지 '묘지 갈등'

입력 2017-03-20 21:46 수정 2017-03-20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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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새로 입주한 아파트 거실에서 커다란 분묘가 보인다면 어떨까요. 후손에겐 애틋한 장소지만 주민들에겐 기피 시설인, '공동 묘지'를 둘러싼 갈등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관리되지 않고 버려지는 분묘도 늘고 있다는데, 밀착카메라가 취재했습니다.

박소연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달 말부터 입주가 시작된 500여 세대 규모의 한 아파트 단지입니다.

그런데 일부 세대 거실에선 기대하지 않았던 전망이 펼쳐집니다.

문을 열고 테라스 밖으로 나가면 분묘가 보입니다. 이곳에서 분묘까지 약 3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지난 2007년 신도시가 건설되며 이 일대에 있던 분묘 130여기 대부분이 이장됐습니다.

그런데 종중 측의 반대로 분묘 7기는 이전하지 않아 아파트 단지 속 '공동묘지'가 된 겁니다.

[이병규/경기 광교 신도시 10개 단지 주민대표 : 전설의 고향 보는 기분으로 살아야 할 것 같다… 심지어 운동 기구도 분묘 사이에 있고요.]

묘지 이장이 활발하게 논의될 당시 수원시가 해당 분묘를 '향토유적'으로 지정했는데, 이것 때문에 문제가 더 꼬였습니다.

현재 경기도시공사가 종중 측에 지급한 분묘 이전 보상금은 법원에 공탁한 상태입니다.

[김덕휘/안동 김씨 참의공파 총무이사 : 오백 년 동안의 고향을 내주고 나온 사람들인데 (일부만) 향토유적이 돼 그것만 보전시킨 건데 그것까지 파내라면…(안 되죠.)]

도심 속 공동묘지와의 불편한 동거는 이곳 뿐만이 아닙니다.

[주민 : 저녁에 가끔 강아지 데리고 산책 나올 때도 거기는 안 가지.]

[박시은/경기 파주시 아동동 : 혼자 간 적은 없어요. 무서워서요.]

날이 밝고 다시 이곳을 찾았습니다.

초등학교 입구에서 찻길 하나만 건너면 사설 법인묘지 입구와 이어집니다. 1만여 기 묘가 있는 곳인데 바로 앞 학교에서 훤히 내려다 보입니다.

묘지가 들어선지 30년이 지난 후인 2001년, 주변에 학교와 아파트 단지가 생겨났습니다.

묘지 외관을 바꿔보려 해도 10년 이상 관리비를 체납한 분묘가 전체의 30%에 달해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이종석/00사설 법인묘지 대표이사 : 주소랑 연락처가 옛날 주소로 다 돼 있어서 (체납자를) 찾으려고 해도 10%, 5%도 못 찾습니다.]

지자체나 사설 기관 등 묘지를 관리하는 주체가 없는 공동묘지의 경우 상황은 더 열악합니다.

왕복 5차로 바로 옆에 묘지 100여기가 있습니다.

일부는 후손이 관리하고 있지만, 주인을 알 수 없는 버려진 묘가 대부분입니다.

비석 주변에는 메마른 나뭇가지가 어수선하게 엉클어져 수풀을 이루고 있습니다. 봉분마저 내려앉아 어디까지가 묘지인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바로 옆에는 상당기간 관리하지 않은 걸로 추정되는 분묘도 방치돼 있습니다.

아무리 '주인 없는' 분묘라고 해도 현행법상 묘를 함부로 이장하거나 정비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수십 년간 묘지 관리비를 체납하거나 주인을 알 수 없는 분묘가 늘고 있지만 손도 못 대고 그대로 두고 있는 실정입니다.

[김태복/사단법인 한국토지행정학회 회장 : 10년 이상 관리 안 된 것은 무연분묘로 처리할 수 있도록 법적 규제를 만들고 토지를 최대한 활용해서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이런 차원이에요.]

우리나라의 분묘는 2100만여 기, 전국 주거 면적의 3분의 1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 '주인 없이' 방치된 집단 묘지를 정비해 도시 숲 등으로 개발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입니다.

장례 문화가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뀌어가며 묘지에 대한 인식도 점차 변하는 추세이다 보니, 갈등 또한 자꾸 생겨나고 있습니다. 묘지 이전을 둘러싼 갈등을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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