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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경의 Shall We Drink] <49>믿을 수 있는 친구, 바칼랴우를 위해 건배!

입력 2017-01-05 00:03 수정 2017-01-05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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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속에 빛나는 포르투 헤베이라강 풍경.

햇살 속에 빛나는 포르투 헤베이라강 풍경.


몇 해 전 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Porto)를 떠나던 날, 하늘은 더없이 푸르렀다. 화창한 날씨에 떠나는 게 아쉬웠지만 다음 목적지, 아베이루(Aveiro)를 떠올리며 마음을 달랬다. 아베이루는 ‘포르투갈의 베네치아’라 불리는 운하의 도시 아니던가. 얼른 그 운하를 누비고 싶었다. 기대 반, 긴장 반으로 가이드 카롤리나(Carolina)와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랐다. 카롤리나와 함께 아베이루에서 코스타 노바(Costa Nova)를 둘러볼 참이었다.

“일랴브(Íhavo)에 가자고요?”

일랴브 해양 박물관에 전시된 15세기 바칼랴우 원양어선 모형.

일랴브 해양 박물관에 전시된 15세기 바칼랴우 원양어선 모형.


처음 듣는 지명이 의아해 되물었다. 포르투갈어 특유의 ‘랴’ 발음에 심혈을 기울이며.
“네! 일랴브 해양 박물관을 꼭 보여주고 싶어요. 아베이루 가는 길이니까 시간도 얼마 안 걸려요. 해양 박물관을 보고, 그 근처 바칼랴우 전문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아베이루로 갑시다. 괜찮죠? 참, 바칼랴우(Bacalhau) 좋아해요?”

그녀의 ‘답정너’식 질문에 그저 미소로 답했다. 바칼랴우를 좋아하냐고요? 바칼랴우는 이제 그만 먹어도 될 것 같은데요. 라는 말이 턱 밑까지 차올랐지만 하지 못했다. 카롤리나는 이미 일랴브 해양 박물관에 대한 설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숨 안 쉬고 말하기 대회에 나가면 우승 할 만큼 말이 빨랐다.

포르투갈의 소울푸드, 바칼랴우 요리.

포르투갈의 소울푸드, 바칼랴우 요리.


바칼랴우는 우리말로 대구다. 북대서양에서 잡은 대구에 소금을 잔뜩 뿌려 꾸덕꾸덕하게 말린 후 물에 부려 조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감자와 함께 요리한 ‘바칼랴우 콘 나타’, 짭짭한 대구 살에 보드라운 달걀을 버무린 ‘바칼랴우 아 브라스’ 등 조리법이 365가지가 넘는다. 한마디로 바칼랴우는 포르투갈 국민 소울푸드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바칼랴우를 ‘믿을 수 있는 친구(Fuel Amigo)’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그렇다 보니 레스토랑에서도 바칼랴우 메뉴가 빠지지 않는다. 솔직히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처음엔 바칼랴우가 이런 맛이군, 다음엔 또 어떤 바칼랴우 요리를 먹어볼까 하다가 점점 맛볼수록 ‘그래봤자 바칼랴우가 바칼랴우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래,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라는 마음을 먹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해양 박물관 마지막 전시관은 대구가 노니는 수조가 장식한다.

해양 박물관 마지막 전시관은 대구가 노니는 수조가 장식한다.


일랴브 해양 박물관에 도착하자 직원 한 명이 안내를 자처하고 나섰다. 박물관 설립 이후 한국인 관람객은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녀를 따라 들어간 첫 전시실 한가운데는 15세기 말 어부들이 노르웨이 앞 바다까지 타고 나갔던 원양어선 모형이 놓여있었다.
해양 박물관에 전시된 어부들의 사진과 어업 도구들.

해양 박물관에 전시된 어부들의 사진과 어업 도구들.


“어부들은 한 번 나가면 최소 6개월 이상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간씩 ‘도리(dori)’라는 1인용 보트를 타고 낚싯줄로 바칼라우를 낚았어요. 상상해 보세요. 레이더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 도리가 모선과 멀어지면 망망대해에서 홀로 남겨질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었어요. 그렇게 잡은 바칼랴우는 부패하지 않도록 소금에 절여 배의 맨 아래 칸에 차곡차곡 쌓았어요. 그 일을 맡은 장인은 6개월 동안 사명감을 갖고 오직 염장에만 매진했답니다. 어부들의 노력으로 바칼랴우가 포르투갈 사람들의 식탁 위에 오를 수 있었지요.”

그런데 전시실이 왜 이렇게 어두침침하냐고 묻자, 칠흑처럼 어두운 새벽 바다에서 일하던 어부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순간, 가슴 한구석이 먹먹하며 눈가가 뜨거워졌다. 이어서 전시실 곳곳에 재현해놓은 당시 어부들의 생활상을 둘러봤다. 박물관을 나설 땐 왜 포르투갈 사람들이 바칼랴우를 ‘믿을 수 있는 친구(Fuel Amigo)’라고 부르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게 와인 한 주전자를 선물해준 앞 테이블의 커플.

내게 와인 한 주전자를 선물해준 앞 테이블의 커플.


이윽고 바칼랴우 전문점에 자리를 잡았다. 바캴라우 잡이 어부 출신 주인장은 바칼랴우 크로켓, 볼 구이, 내장과 콩 볶음 요리 등을 차례로 내왔다. 입맛을 돋아줄 화이트 와인 한 주전자도 잊지 않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포르투갈산 하우스 와인이었지만 음식과 무척 잘 어울렸다. 와인을 국처럼 마시며 하나하나 찬찬히 맛보는데 주위의 시선이 느껴졌다. 지켜보던 앞 테이블의 한 아저씨가 잔을 들며 나를 향해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먼 나라에서 온 이방인이 대구 살과 내장에 콩을 넣어 볶은 요리를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이 좋아 보인 모양이었다.

잠시 후 시키지도 않은 와인 한 주전자가 더 나왔다. 카롤리나가 주인장에게 영문을 물으니 옆 테이블에서 내게 보내는 선물이라고 했다. 바칼랴우로 통했달까. 푸근한 시골 인심이랄까. 어쨌든 낮술을 더 마실 명분이 생겨 기분이 좋아진 나는 옆 테이블의 아저씨를 향해 잔을 들었다. 속으로는 믿을 수 있는 친구, 바칼랴우를 위하여! 라는 건배사를 외쳤다. 문득, 남은 여행 동안 5년치 대구를 몰아서 먹게된다고 해도 마다하지 않을 용기가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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