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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키친 캐비닛"…국정농단 합리화 될까

입력 2016-12-19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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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팩트체크팀은 이번 한 주 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보낸 답변서의 사실 관계를 집중 확인하겠습니다. 오늘(19일)은 '키친 캐비닛'입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씨가 키친 캐비닛이었고 그래서 자문을 받는 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키친 캐비닛이 도대체 뭔지, 또 이걸로 국정농단을 합리화할 수 있는지 살펴보죠.

오대영 기자, 우선 답변서부터 살펴볼까요.

[기자]

박근혜 대통령측이 헌재에 보낸 답변서에는 이렇게 써 있습니다.

"연설문이 국민 눈높이에 너무 딱딱하게 들리는지, 현실과 맞지 않는 내용이 있는지 자문받는 경우가 왕왕 있다"
"속칭 키친 캐비닛이라고 한다"
"최순실의 의견을 들은 것도 같은 취지였다"

그러니까 '키친 캐비닛'을 연설문에 자문하는 사람,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한 거죠.

[앵커]

사실 '키친 캐비닛'이라는 게 좀 생소한 단어잖아요. 실시간 검색어에도 계속 올라 있던데 자세히 좀 설명을 해 주실까요.

[기자]

이게 발음도 어려워요. 자칫하면 잘못 얘기할 수 있고, 그리고 미국 전문가들 오늘 통화를 해 봤는데 이 미국 전문가들도 이런 용어에 대해서 굉장히 생소해했습니다.

저희가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개념부터 한번 정리를 쭉 해 보겠습니다. 이 말의 고향은 미국입니다. 미국에서 대통령의 식사에 초청을 받아서 담소를 자연스럽게 나누는 그런 정도의 격이 없는 지인을 뜻하는 말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키친캐비닛이라면서 몇몇을 공개한 적이 있는데요. 대표적인 사람이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였습니다.

유명인사뿐만 아니고요. 이 사진을 한번 보시죠. 굉장히 생소한 인물입니다. 뉴욕에 살고 있는 살라미 씨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은퇴한 수학 교사거든요. 백악관은 살라미 씨가 키친 캐비닛이라면서 이렇게 증서까지 수여를 했습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민심을 잘 청취하고 있다는 걸 강조한 건데, 다만 백악관의 공식업무와 이들은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안병진 교수/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 비공식적으로 자문을 받고 이런 거죠. 비유적 표현으로 캐비닛인거죠. 대통령 평화통일 자문위원 같은 건 아니에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이야기죠.]

[앵커]

아까 공식업무와 관련이 없다고 했죠. 그러면 청와대가 지금 주장하는 것처럼 연설문을 고친다거나 하는 일은 할 수가 없는 거 아닙니까?

[기자]

네, 그래서 이 용어를 잘못 썼다는 거죠. 그런데 더 잘못 쓴 거는 이 용어의 어원을 보면 아주 자명하게 드러납니다.

1832년 3월 27일에 언론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US텔레그래프가 첫 보도를 했는데 저희가 일리노이대학의 사학과 교수가 쓴 책을 통해서 확인을 해 봤습니다.

이에 따르면 제7대 대통령인 앤드류 잭슨은 취임과 동시에 동양 출신의 비공식 라인을 운용을 했습니다. 이른바 비선에 의존을 많이 한 겁니다. 그래서 잭슨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키친 캐비닛'이라는 은어를 만들어서 비판을 했죠.

오바마 이전까지 미국 정가에서 이 은어는 '비선'을 뜻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이 됐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키친 캐비닛의 원래 뜻은 '비선실세'인 거고, 이 해석대로라면 청와대가 이 답변서를 통해서 최순실 씨가 비선실세 의혹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자]

오히려 그렇게 되는 거죠. 또 하나의 근거가 있는데요. 1982년의 한 논문입니다. 앤드류 잭슨의 전문가가 쓴 논문인데 아예 제목 자체가 '키친 캐비닛'입니다.

잭슨의 대통령 비선에 대해서 쭉 적고 있는데 비선입니다. 백악관 가구 수리 관리인, 대통령 조카 등을 비선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구 수리 관리인이 비선이 아니라, 자신의 비선을 저 자리에 꽂아 넣은 겁니다.

당시에는 내각 외에는 백악관의 참모 조직이 제대로 없을 때였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대통령의 가족이나 측근을 키친 캐비닛의 형식으로 이렇게 곁에 둔 겁니다.

반대파에서는 비선에 휘둘리는 대통령에 대해서 속기 쉬운 희생양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허수아비라고 비판을 했습니다.

[앵커]

허수아비라고 비판을 한 건데, 결국 청와대가 이런 본래의 의미를 모르고 잘못 썼다고 볼 수가 있겠죠.

[기자]

그렇습니다. 본래 의미만 모른 게 아니고요. 또 하나 놓친 게 있는가 키친 캐비닛이 담고 있는 대통령제 역사도 청와대가 잘 모르는 게 아닌가, 저희는 그렇게 파악을 했습니다.

19세기 초 키친 캐비닛은 거의 지금 백악관의 참모 조직과 유사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잭슨 대통령은 대통령제 시행 초기에 활동을 했습니다. 비서실 기능이 약했죠. 그때 썼던 방식이 키친 캐비닛입니다.

20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 청와대는 대통령 자신이 구성한 비서실이 있습니다. 헌법이 보장한 3개의 자문기구도 있습니다. 16개의 대통령의 직속 위원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걸 다 건너뛰었다는 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죠.

[앵커]

결국에 보안손님인 최순실 씨를 키친 캐비닛으로 바꾸려다 보니까 의미도 안 맞고 여러 군데서 지금 꼬이는 걸로 보이는데요.

[기자]

상당히 꼬였죠. 대통령은 누구에게든 자문은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을 어겨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금 연설문 외에도 외교안보, 대북정보, 해외 순방, 국무회의, 인사 자료까지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정보들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엉뚱한 키친 캐비닛으로, 그것도 정확히 잘 모르는 개념으로 본질을 흐리는 게 아닌지. 그래서 '제 발등 찍기다' 이런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앵커]

의미도 맞지도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다 썼다는 게 또렷해졌는데 내일도 이제 답변서 분석이 이어지죠?

[기자]

네.

[앵커]

팩트체크 오대영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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