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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저스는 왜 리치 힐을 선택했나

입력 2016-12-13 06:02 수정 2016-12-1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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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저스는 왜 리치 힐을 선택했나

지난 6일(한국 시간) LA 다저스의 이번 겨울 첫 번째 중요 선수 보강 소식이 전해졌다.

여름 트레이드를 통해 다저스 유니폼을 입었던 선발 투수 리치 힐과 재계약했다. 3년 4800만 달러 규모다. 힐의 계약은 2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힐은 메이저리그에서 10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하면서 등, 어깨에 팔꿈치까지 갖은 부위에 부상을 당했다. 그 여파로 2010년부터 팔을 아래로 내려서 희귀한 '좌완 사이드암 구원 투수'로 뛰었다.

지난해 6월 워싱턴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방출된 힐은 독립리그에서 다시 팔을 올리며 선발 투수 복귀를 시도했다. 그곳에서 2경기에 선발로 나서 강한 인상을 남겼고, 등판을 지켜본 보스턴에 영입돼 9월 메이저리그에서 5차례 선발로 멋진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올해 오클랜드와 다저스에서 수차례 호투를 펼쳤다.

보스턴에서 보낸 시간을 포함, 지난 1년여 동안 힐이 남긴 발자취는 동전의 양면을 보는 듯하다. 등판했을 때 마운드에서 보인 존재감은 강렬했지만, 선수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면면도 적지 않았다.

많은 이가 힐의 내구성에 의구심을 표한다. 2년 동안 힐이 소화한 이닝은 올해 110⅓이닝을 포함, 겨우 139⅓이닝에 그쳤다. 손가락에 물집이 잡혔다는 이유로 올해 다저스에서 많은 등판을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내년 3월이면 힐은 만 37세가 된다. 37세면 야구 선수로서 이미 황혼기에 접어든 셈이다. 이처럼 다양한 불안요소 때문에 힐은 FA 시장에서 '고위험 자원'으로 분류됐다.

그래서 다저스의 영입에 불만을 표하는 팬이 적지 않다. 다저스는 지난 3년간 2차례 메이저리그 연봉총액 1위를 차지한 부자 구단이다. 그렇지만 월드시리즈 우승은 1988년이 마지막이었다. 그동안 지역 라이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2010년, 2012년, 2014년 3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잘 나가는 라이벌을 보며 팬들은 ‘부자답게 비싸고 잘하는 선수를 사달라’고 성화를 냈다. 그렇지만 다저스는 지난겨울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의 단짝 잭 그레인키를 놓쳤다. 이런 상황에 ‘확실한 카드’가 아니라 위험 표시가 붙은 리치 힐 카드를 선택했으니 팬들이 불평한 것이다.

그렇지만 다저스가 힐을 영입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힐은 ‘고위험군’에 속하지만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힐은 2년간 130이닝 이상 던진 투수 중 평균자책점 2.00으로 메이저리그 5위, 출루 허용률(WHIP)은 0.93으로 6위에 올랐다. 양쪽 다 작년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탄 제이크 아리에타, 올해 수상자 맥스 슈어져를 뛰어넘는다.

주무기로 쓰는 커브의 위력도 일품이었다. 힐이 던지는 커브는 분당 평균 2831회 회전한다. 200구 이상 던진 투수 중 8위에 해당하는 수치로 팀 동료 커쇼의 2,321회를 훨씬 웃돌았다. 커브의 회전수가 높으면 떨어지는 움직임은 더욱 날카로워진다. 폭포수 같은 힐의 커브를 상대한 타자들은 0.180의 타율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또한, 투수의 ‘안정성’을 논할 때 참고할 수 있는 탈삼진 비율(K%)과 볼넷 비율(BB%)의 차이(K-BB%)에선 23.3%로 11위에 올랐다. 뉴욕 메츠의 노아 신더가드(23.0%, 12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매디슨 범가너(22.0%, 14위)의 기록을 웃돈다. 즉, 성능만 따지면 힐은 스포츠카에 비유할 수 있는 특급 자원이었다.

고위험·고수익 상품인 힐은 이번 겨울 FA 시장에서 가장 뛰어난 선발 투수 중 하나였다. 그만큼 이번 FA 시장에는 특급 선발 투수가 없었다. 이에 좋은 선발을 구하는 팀들은 FA 계약 대신 트레이드를 통해 욕구를 충족시켰다. 대표적인 구단은 6일 유망주 4명을 넘기며 크리스 세일을 영입한 보스턴이다. 그에 앞서 애리조나 역시 2:3 트레이드로 시애틀의 타이후안 워커를 영입했다.

다저스가 힐보다 안정적인 ‘저위험·고수익’ 선발을 잡으려면 유망주를 소진해야 했다. 그러나 이런 트레이드는 다저스의 방향과 맞지 않았다. 연봉 총액 2억 달러를 넘긴 다저스는 최근 연봉 감축과 젊은 유망주 위주의 로스터 편성에 열을 쏟아왔다. 중견수 작 피더슨, 신인왕 유격수 코리 시거, 선발 훌리오 유리아스, 호세 드 리온 등이 데뷔하며 이 계획이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

다저스 역시 그동안 대형 선발 트레이드 소문에 꾸준히 연루됐지만, 열심히 가꾼 텃밭을 지키는 쪽을 택해왔다. 하지만 부상으로 올해 선발 로테이션 유지에 골치를 앓은 만큼, 중급 이상의 선발 보강에 나설 것이 확실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전문가가 다저스가 위험이 있지만 높은 보상도 기대할 수 있는 힐을 선택할 것으로 전망했고, 그대로 현실이 됐다.

힐의 영입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기대와 우려가 섞여 있지만, 시장 상황상 충동구매나 불합리한 소비로 보기는 어렵다. 힐은 110⅓이닝을 던지면서도 3.8승이나 되는 승리 기여도(WAR, <팬그래프> 기준)를 기록했다. 최근 메이저리그 FA 시장에서 선수의 가치는 WAR 1당 800만 달러로 추산된다. 이를 힐의 계약에 대입하면 1년에 2 WAR을 기록해도 본전이라는 뜻이 된다. 힐이 올해의 절반만큼만 잘해도, 매년 120이닝 수준만 던지면 다저스 입장에서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매년 150이닝 이상을 던진다면 대성공이다.

힐을 영입한 다저스의 다음 과제는 선발진 교통정리가 됐다. 메이저리그에 가용 가능한 선발 자원만 클레이튼 커쇼, 리치 힐, 마에다 겐타, 스캇 카즈미어, 훌리오 유리아스, 호세 드 리온, 브랜든 매카시, 류현진 등 8명이나 된다. 이 중 부상으로 오랫동안 재활에 전념한 매카시와 류현진, 그리고 부상으로 부진한 카즈미어가 정리 대상으로 전망되고 있다.

박기태(야구공작소)

야구 콘텐트, 리서치, 담론을 나누러 모인 사람들. 야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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