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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경기시간, 타고투저 탓만은 아니다

입력 2016-09-27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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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는 버릇이 없다"는 말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진다. 야구에서라면 "경기 시간이 너무 길다"는 말이 그렇다.

프로야구가 생기기 전에도 그랬다. 1981년 6월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181경기 평균 소요 시간은 2시간40분이었다. 당시 야구계에선 '100분 야구'가 이상적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1982년 프로야구가 탄생한 뒤 KBO는 '2시간30분 야구'를 이상적으로 생각했다. 1999년께엔 '목표 시간'이 2시간40분이 되더니, 2015년 시즌 전엔 "3시간 17분으로 줄이겠다"는 말이 나왔다.

경기 시간이 늘어나는 이유로 여러 가설이 제시된다. 최근엔 타고투저가 자주 거론된다. 직관적으로 그럴 듯 하다. 두 팀이 치고받으며 점수 쟁탈전을 벌이면 경기 시간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가령 올해 최장시간 경기였던 7월 9일 사직 롯데-LG전(5시간33분)에선 두 팀 합쳐 25점이 나왔다.

하지만 타고투저는 '주범'이 아닌 '종범'에 가깝다. 타구투저와 무관하게 경기 시간은 계속 길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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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에서는 1980~1990년대엔 리그 평균자책점과 경기시간이 어느 정도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음이 확인된다. 평균자책점이 높으면 타고투저, 낮으면 투고타저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 평균자책점과 큰 관계 없이 경기 시간은 계속 늘어나는 현상이 발견된다.

물론 타고투저 시즌엔 그 주변의 다른 시즌보다 경기시간이 길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시대적 경향성이다. 1982년과 2007년의 리그 평균자책점은 각각 3.88과 3.91로 거의 같다.
하지만 경기 시간은 3시간 2분과 3시간 19분으로 무려 17분 차이가 난다. ‘역대급’ 타고투저였던 1999년과 2015년, 리그 평균자책점은 각각 4.98과 4.89로 1999년이 조금 더 높다. 하지만 경기 시간은 3시간 7분과 3시간 21분으로 2015년이 14분이나 길다.

타고투저 수준은 비슷해도 경기시간은 시대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시대 뿐 아니라 리그에 따라서도 다르다. 2013년 KBO와 2009년 MLB의 리그 평균자책점은 4.32로 동일하다. 그러나 경기시간은 각각 3시간 20분과 2시간 55분으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1982~2015년 연도별 경기 시간을 리그 평균자책점과 경기당 평균 등판 투수 수에 대해 선형 회귀분석을 시행했다. 평균자책점 1점 증가는 약 3.76분의 경기 시간 증가 효과를 가져왔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니까, 평균자책점만 놓고 보면 역대 최저인 1986년(3.08)에서 역대 최고인 올해(5.21)로 바뀌어도 경기 시간은 약 8분 정도 밖에 증가하지 않는다. 그러니 타고투저는 경기시간 증대의 '주범'이 아니다.

경기 시간을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인은 '투구 수'다. 점수가 많이 나는 경기가 길어지는 이유도 본질적으로는 경기 총 투구수가 많기 때문이다. 타격이나 수비는 애당초 일어나는 빈도도 적고 걸리는 시간도 짧다. 뜬공의 체공 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10초를 넘지 못하고, 안타를 아무리 많이 쳐도 양 팀 합해 30개 넘기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투구수는 한 경기에 평균 300개 이상 기록된다. 투구수에 대한 고민 없이 경기 시간 문제를 논할 수 없는 이유다.

투구수가 문제라면 해결책은 두 가지다. 첫째는 투구수를 줄이는 것이고, 둘째는 투구 사이 인터벌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투구수를 인위적으로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타자에게 빨리 치라고 지시할 수도 없고, 투수에게 스트라이크만 던지라고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인터벌 줄이기’이다. 인터벌이 경기 시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는 한국시리즈와 정규시즌 경기 시간 비교로 파악할 수 있다.

한국시리즈라고 해서 경기 구성이 정규시즌과 다르지 않다. 같은 야구규칙이 적용된다. 하지만 한국시리즈 경기는 비슷한 점수가 나도 정규시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린다. 투수는 타자와 더 신중하게 승부하고, 주자에게 더 많은 견제를 한다. 벤치에서 사인도 많이 나온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투구 인터벌 시간이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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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연도별 한국시리즈와 정규 시즌 경기 소요 시간

<그림2>에서는 일부 예외가 있지만, 명백히 한국시리즈 경기시간이 더 길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1982~2015년 정규시즌 평균 경기시간은 약 3시간 5분. 반면 한국시리즈에선 3시간20분이 걸였다. 평균적으로 15분이 더 걸린 셈이다. 약간 더 긴 인터벌, 약간 더 많은 견제가 경기시간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언제나 '그럴싸한 오답'이 가장 위험한 법이다. '완전한 오답'은 위험하지 않다. 아무도 그 선택지를 고르지 않기 때문이다. KBO은 2015년 시즌을 시작하며 경기 스피드업규정을 새로 손봤다. 타석 이탈 금지, 공수교대시간 엄격 적용, 이닝 중 투수 교체시간 단축(15초), 타석 입장 시간 단축(10초 제한), 볼넷 및 사구 출루 시 뛰어 가기, 감독 어필 시 코치 대동 금지 등이다.

이 중 투구 인터벌과 직접적으로 관련돼 할 만한 규정은 타석 이탈 금지뿐이다. 그나마도 현장에서는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 실제로 벌금을 문 사례는 지난해 5월 1일 김태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나머지 규정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대세에는 거의 영향이 없는 오답임을 알 수 있다. 가령 이닝 중 투수 교체 시간 단축은 한 경기에 이닝 중 투수교체가 8번 있어야 겨우 2분 줄일 수 있는 규정이다. 타석 입장 시간 단축이나 볼넷 이후 뛰어가기는 유명무실해서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 감독 어필 시 코치 대동 금지는 스피드업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모호하다.

합의판정은 어떨까. 올해 9월 22일 현재 KBO리그에서 합의판정은 673경기에서 674회 신청됐다. 경기당 1번 꼴이다. 합의판정 한 번당 평균 1분 55초가 걸렸다. 길다면 길다. 하지만 합의판정이 없으면 어필이 더 자주 나올 것이다. 합의판정은 어필 시간을 줄이는 효과는 있다.

프로야구는 산업이다. 올드 팬들은 긴 경기 시간을 즐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로 야구팬이 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3시간 20분에 이르는 지금 경기 시간은 너무 길다. 투구간 인터벌이 너무 긴 게 KBO리그 경기시간의 가장 큰 문제다. 그런데 과연 짧은 인터벌은 더 좋은 투구 결과를 담보하는 것일까. 벤치의 감독들이 경기에 너무 개입하기 때문에 인터벌이 길어지는 게 아닐까. 어쩌면 경기시간 단축은 프로야구에서 딱 10명, 감독들만 생각을 바꾸면 되는 일이 아닐까.

오연우(야구공작소)

야구 콘텐트, 리서치, 담론을 나누러 모인 사람들. 야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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