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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⑪]메이저리그의 2012년 승부조작 수사

입력 2016-09-23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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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프로야구의 기원은 미국의 메이저리그다.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 역시 미국에서 최초로 발생했다. 1919년 월드시리즈에선 시카고 화이트삭스 선수들이 도박사와 짜고 고의로 경기에 지려고 했던 사건이 일어났다. 유명한 ‘블랙삭스 스캔들’이다.

블랙삭스 스캔들은 당대의 강타자 조 잭슨을 포함한 8명이 야구계에서 영구추방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 뒤로 메이저리그가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린 적은 없다. 1989년 통산 최다안타 기록의 주인공 피트 로즈가 신시내티 레즈 감독으로 팀의 52경기 결과에 돈을 걸고 내기를 했다는 사실이 적발돼 영구제명됐다. 로즈도 승부조작을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2012년 메이저리그에선 100여년 만에 승부조작 스캔들이 발생할 뻔 했다.

2012년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사무국에는 승부조작에 대한 제보가 접수됐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투수 제프 로크가 도박 업체와 짜고 승패를 조작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럴싸했다. 미국의 여러 주는 스포츠에 대한 베팅을 합법으로 하고 있다. 한 제보자는 2012년 가을부터 한 팁스터(베팅 대상이 되는 경기에 대한 예상을 서비스하는 직종)로부터 여러 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메시지에서 자신을 “로크의 지인”으로 소개하며 “피츠버그의 경기에서 조작이 이뤄졌다. 베팅을 하라”고 권유했다.

로크는 2006년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지명됐고, 2009년 피츠버그로 트레이드된 투수다. 마이너리그에서 6시즌을 보낸 뒤 2011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2012년 시즌도 대부분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냈지만, 2012년 8월 메이저리그로 승격됐다.

2012년 로크가 등판한 첫 7경기에서 피츠버그는 모두 패했다. 문제의 팁스터는 이 경기 결과를 거의 정확하게 예측했다. “나는 로크와 잘 안다. 그는 승부조작에 가담했다. 고의로 경기를 지려 한다”는 메시지는 여러 스포츠 베터에게 발송됐다.

결론은 해프닝이었다. 이 팁스터의 이름은 제이슨 바. 그는 미국 뉴햄프셔주 콘웨이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야구부에서는 투수로 뛰었다. 이 시절 그의 친구가 로크였다.

스포츠 베팅을 업으로 삼게 된 바는 어린 시절 친구 로크가 메이저리거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반가운 마음에 SNS 메시지를 통해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옛 기억이 가물가물했던 로크는 바의 메시지에 반갑게 응대하지 않았다. 배신감을 느낀 바는 ‘장난’을 치기로 마음먹었다. ‘팁스터’라는 업을 활용해 배신감을 안겨준 옛 친구가 승부조작범이라는 소문을 내기로 했다.

처음엔 장난이었다. 마이너리그에서 콜업된 투수가 등판하는 경기라면 패배 확률이 높기도 하다. 그런데 바가 허위로 발송한 문자 메시지 내용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이내 로크에 대한 소문이 돌았고, 커미셔너 사무국에도 제보가 접수됐다.

2013년 2월 21일. 바는 거주지인 뉴멕시코주 프레스콧밸리에서 운전을 하다 수상한 차량이 자신을 뒤를 쫓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겁에 질렸다. 스포츠 도박 정보 제공이라는 직업은 원한을 살 가능성이 높다. 틀린 예상에 돈을 건 사람은 화를 내기 마련이다. 그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여자 친구와 누나가 차를 몰고 왔다. 그리고 도로변에서 차량 여덟 대가 바 가족을 에워쌌다. 차량에서 내린 보안관은 바에게 수갑을 채웠다.

바를 체포한 수사관들은 진지했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되면서 블랙삭스 스캔들 이후 100년 만의 메이저리그 승부조작 사건이 실은 질투심에서 비롯된 장난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어이없는 해프닝이었다. 이 사건은 2014년 미국 탐사보도센터(CIR) 랭스 윌리엄스 기자의 취재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윌리엄스는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 기자로 2003년 배리 본즈가 연루된 발코(BALCO) 스캔들 특종을 한 기자다.

이 사건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이 있다. 프레스콧밸리 수사관들은 어떻게 바를 체포할 수 있었을까.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2008년부터 조사부(Department of Investigations)를 운영하고 있다. 메이저리그가 스테로이드 복용 등 부정행위 대응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뒤 신설한 조직이다. 금지약물 복용, 승부조작 등 공정한 경쟁을 해치는 행위를 조사할 권한을 갖고 있다.

2012년 로크에 대한 소문을 접수한 조사부는 커미셔너사무국이 소재한 뉴욕 시경에 협조를 요청했다. 뉴욕시경은 프레스콧밸리 수사당국에 다시 협조를 요청했고, 차량 여덟 대가 동원된 체포 작전이 벌어진 것이다.

KBO규약 1장은 KBO의 존재 이유와 규약의 적용을 받는 구단, 감독, 코치, 선수 등을 포괄해서, 즉 프로야구의 모든 종사자들에게 “KBO규약에 따른 총재의 결정을 성실히 준수할 의무를 갖는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규약 2장은 KBO 총재의 역할에 대해 할애된다. 그만큼 총재라는 직위가 중시된다.

프로야구에서 ‘총재’, 또는 커미셔너라는 직업이 탄생한 계기도 승부조작이었다. 블랙삭스 스캔들 이전 메이저리그 최고 기관은 양대리그 회장과 구단주 한 명으로 구성된 3인 커미션(Commission)이었다. 합의제 성격인 이 기관은 승부조작과 같은 프로스포츠 근간을 뒤흔드는 범죄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절대적인 권한을 갖는 커미셔너가 탄생했다.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야구 최선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KBO 야구규약도 비슷하다. 프로야구에서 승부조작은 ‘야구 최선의 이익’을 위해 근절돼야 할 일이다. KBO 총재는 이를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할 책무가 있다.

최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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