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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공유하고 싶지 않았던…'건넌방의 공포'

입력 2016-09-13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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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오늘(13일)은 저의 얘기로 시작하겠습니다.

1968년의 이맘때, 저의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제가 살던 조그마한 한옥은 전날부터 내린 폭우를 견디지 못하고 한밤 중에 안방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미리 낌새를 알아차린 어머니의 예지력 덕분에 모두들 목숨은 건졌지만… 공포는 그 다음부터 시작됐습니다.

지금 우리가 피신해 있는 이 건넌방도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공포는 밤새 이어졌고 또한 남은 삶의 트라우마가 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젯밤. 사람들은 두려웠습니다. 땅 밑 깊은 곳에서 전해진 공포… 누구도 피하라고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있으라'… 몇몇 학교의 학생들은 가장 두려운 그 말. 그 순간마저 떠올려야 했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기다렸습니다. 긴급한 재난 상황에 발송된다는 긴급재난문자를 기다렸고. 긴급한 재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그러나 내내 불통이기만 했던 국민안전처 홈페이지에 접속했습니다.

누구도 어떻게 하라는 말은 없었지요. 각자도생.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 단어만 다시금 머리에서 맴돌 뿐…

"일본의 절반만 따라가도…" 어제 생방송 중 연결된 경주의 제보자가 그 다급한 상황에서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정부도 우리도 정말 아무런 훈련도 대비도 돼있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첫 지진이 난지 무려 한 시간 반이 더 지나서야 그것도 정부의 어느 책임자도 아닌 기상청 관계자의 브리핑을 들으면서 느낀 것은 또 다시 공포였습니다.

어제 우리가 겪은 지진 자체에 대한 공포는 따지고 보면 우리가 갖고 있는 공포의 본질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갖게 된 공포는 미래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실체로 다가와 버린 지진에 우리는 맞설 수 있는가… 국가는 우리가 맞설 수 있게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어제는 아무도 답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48년 전 어느 자그마한 한옥의 건넌방에서 또 다른 무너져 내림의 공포에 시달렸던 13살 소년의 그 기억이 무겁게 되살아나 다가온 밤…

그러나 그 기억을 이즈음의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지는 않았던 9월의 밤이었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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