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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알맹이 빠진 '화평법', 규제완화에 껍데기만…

입력 2016-05-11 22:37 수정 2016-05-12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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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한 수사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번 사건은 일부 업자들만의 잘못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지금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의 인체 유해성이 확인되자 정부는 뒤늦게 '화학물질의 평가 및 등록에 관한 법률', 이른바 '화평법 제정'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 화평법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요. 바로 오늘(11일) 정부와 재계가 나라 망치는 망국법이다, 이렇게 비난을 퍼부은 끝에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아 있습니다. 결국 또다른 피해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입니다. 정부는 여전히 뒷짐만 지고 있습니다.

탐사플러스 이호진 기자입니다.

[기자]

[가습기 메이트 덕분에 우린 건강하게 살아요. 가습기 친구, 가습기 메이트. 아내가 똑똑하면 편리하다니까, 주식회사 유공.]

세계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한 것은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입니다.

당시 유공은 TV CF까지 제작해 안전성을 알렸습니다.

유공을 인수한 SK케미칼도 "인체에 무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애경을 통한 제품 판매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살균제의 원료인 CMIT와 MIT는 산업용 살충제로, 가습기 사태가 난 이후인 2012년 9월에서야 유독물질로 지정됐습니다.

4시간동안 쥐에게 물 1L당 2.36mg을 희석시켜 흡입시킬 경우 50%가 죽는 흡입독성 물질이었던 겁니다.

[이덕환 교수/서강대 화학과 : CMIT는 폐 섬유화뿐만 아니라 간이나 호흡기나 신장이나 이런데도, 심지어 심혈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SK케미칼이 옥시에 공급해 수백 명의 피해자를 낸 공업용 세척제 PHMG도 가습기살균제로 쓰여서는 안됐던 물질이었습니다.

애초 카펫 세척 등에 사용하기 위해 개발된 공업용 살균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독성이 있는 화학물질을 공산품으로 팔아도 이를 제재할 법규정이 없었습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불거지자 환경부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 화평법 제정에 나섰습니다.

가습기 살균제처럼 공산품에 사용되는 화학물질들의 유해성을 사전에 평가하겠다는 의도였습니다.

하지만 시작부터 재계와 지식경제부의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2012년에는 지경부 요청으로 핵심 조항이 아예 삭제됐습니다.

제품이 사람에게 해를 끼칠 경우 유해금지 물질로 지정하고, 이 물질을 쓰는 제품은 신고해야 한다는 조항이 사라진 겁니다.

[박항주 보좌관/정의당 심상정 의원실 : 화학 제품에 대한 규정이 다 빠져서 원래 없었고 문제 제기되면서 적어도 화평법에 같이 들어가야 되는 것 아니냐.]

유해화학물질로 지정할 수 있는 권한도 환경부 소관에서, 지경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야 한다로 바뀌었고, 보고와 등록 기준도 완화됐습니다.

법안은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에서 더 약화됐습니다.

가습기 살균제처럼 처음 등록된 용도와 다르게 사용할 경우 반드시 등록을 해야한다는 조항이 사라졌고, 관련 과태료도 낮아졌습니다.

당시 화평법 저지 로비에 나섰던 전경련에는 SK케미칼, 애경산업 등이 소속돼 있었습니다.

[김신범 실장/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 화학물질을 어떻게든 쓰게 해주십시오. 정보를 어떻게든 덜 제출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런 태도들이, 국내 굴지 기업들이 와서 이야기하는 걸 보고 좀 당황했었죠.]

2013년 심상정 의원이 기존 환경부 안보다 강화된 법안을 발의했지만, 역시 재계의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옥시와 같은 화학물질 사용자와 SK케미칼과 같은 제조자 사이에 실제 어디에 쓰는지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는 조항이 영업 비밀 침해 우려가 있다며 반대한 겁니다.

옥시 제품처럼 카페트 세척에 쓰이는 PHMG를 몰래 가습기 살균제로 쓰는 사태를 막는 핵심 의무 조항이었는데 당사자가 요청할 경우 제공하는 임의 조항으로 바뀌었습니다.

[박항주 보좌관/정의당 심상정 의원실 : 산업부 차관하고 통화하느라 싸웠어요. 세 시간 동안 통화합니다. 새벽 열두 시 반까지, 그 법안 한 문구 때문에 그래요.]

화평법은 2013년 5월 제정된 후에도 재계와 정부로부터 집중 포화를 받았습니다.

[김신범 실장/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 (대기업들이) 갑자기 법을 지키라는 게 말이 됩니까? 우린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강력한 법을 만들지 마십시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화평법을 두고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고 표현했고, 재계는 '망국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결국 2013년 9월,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정하기 위한 협의체가 꾸려졌습니다.

당시 전경련은 의견서를 통해 '수차례 법을 위반해야 최고 과징금을 부과'하게 하고, '연구개발 목적의 경우 화학물질 등록을 면제'해 달라고 건의했고, 이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통해 대부분 반영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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