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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황석영 "요즘 작품은 기억과 상처, 회한을 더듬는 것"

입력 2016-03-03 21:47 수정 2016-03-04 13:48

"어려운 시절에는 음식 이야기가 성행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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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절에는 음식 이야기가 성행하는 듯"

[앵커]

목요일 문화초대석. 오늘(3일) 매우 특별한 한 분을 모셨습니다. 한국 문단의 거장, 이란 표현과 함께 국보급 입담. 혹은 또 듣기에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황구라 라는 친근한 별명도 갖고 계신 분입니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분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번엔 음식과 관련된 한 권의 산문집을 들고 오셨는데요.

작가 황석영 선생을 뉴스룸에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황석영/작가 : 안녕하세요.]

[앵커]

오랜만입니다.

[황석영/작가 : 오랜만입니다.]

[앵커]

한국의 3대 구라. 전부터 많이 문회가 됐기 때문에 듣기 불편하시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황석영의 밥도둑, 책을 제가 받았습니다. 뭐 이렇게 부담 없이 느껴집니다. 일단 책 크기가 작다 보니까요. 그래서 다는 못 읽었고 절반 정도까지는 읽어봤습니다.

[황석영/작가 : 아이고, 벌써요?]

[앵커]

저 이거 그저께 받았거든요.

[황석영/작가 : 그렇습니까?]

[앵커]

음식과 관련된 개인적인 얘기들 이렇게 엮으셨는데 얼핏 생각하기에는 요즘 텔레비전 얼마나 많이 보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흔히들 쿡방, 먹방 이런 시대라고 해서 혹시 편승하시려고 하신 것은 아닌가.

[황석영/작가 : 글쎄요, 이게 사실은 1998년에 IMF 직후에 썼던 에세이입니다. 아마 어려운 시절이 되면 음식 얘기가 성행하는 모양인데.]

[앵커]

그런 것 같습니다.

[황석영/작가 : 일본도 먼저 겪고 나서 이런 음식 얘기가 막 성행하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이게 그때 당시에 손님이란 장편소설하고 이걸 동시에 연재를 각 일간지에서 하다가 나중에 책이 두 권이 한꺼번에 나오니까 소설, 장편소설 손님쪽으로 모든 사회적 초점이 거기로 모이고 이건 묻혀버렸어요. 그래서 그냥 지나가버렸는데 출판사에서 요새 이게 굉장히 아까운데 이거 요새 다시 내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자꾸 내자고 졸라서 그냥 내기는 어색하고 해서 뒤에다 두 꼭지를 하나 붙여서 개정판이다 냈습니다.]

[앵커]

뭐 그러니까 제가 편승이라고 얘기해서 특별히 억울하실 건 없죠.

[황석영/작가 : 그렇죠.]

[앵커]

그런데 사실은 이게 뭐 음식의 레시피가 들어가 있는 건 아니고 음식과 얽힌 사람의 얘기, 삶의 얘기로 이렇게 저는 이해를 있습니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얘기는 역시 남자들이 모이면 빼놓을 수 없는 얘기가 군대 얘기인데 군대에서의 얘기가 여기 첫 장에 들어가 있더군요. 그러니까 철모에다가 닭서리해서 먹던.

[황석영/작가 : 그때 아마 손 선생님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세대, 윗세대들의 군대생활이란 건 나라가 가난한 때니까 음식이 형편없었죠.]

[앵커]

좋지는 않았죠, 요즘에 비하면.

[황석영/작가 : 그러니까 아마 군대생활의 절반이 먹는 얘기가 나올 텐데 특히 면회, 신병훈련소 때 면회 오면 엄청 먹여서 보내면 배탈도 나고 죽기도 하고 그러니까.]

[앵커]

맞습니다. 죽는 것까지는 모르겠고 책에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황석영/작가 : 하사관이 기합 줘서 침상 배치부터 시켜서 거꾸로 세워놓으면 다 토해내고 이런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앵커]

저만 해도 그런 군대는 아니었는데.

[황석영/작가 : 그래요? 요새 젊은 사람들 군대는 굉장히 부식이 좋아졌다고 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군대에 있던 젊은이들이 나와서 군대 음식, 군대식 햄버거가 먹고 싶다든가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 거 보면 아마 어려운 시절에 영내에서 먹던 음식이 기억이 남는 모양이에요.]

[앵커]

그래서 첫 장으로 쓰셨던 것 같습니다.

[황석영/작가 : 어려운 시절이었어요.]

[앵커]

어려운 시절 하면 우리 황석영 선생께서는 워낙 많은 걸 겪으셨기 때문에 아시는 분들은 다 아셨기 때문에 교도소에 계셨고요. 교도소 내에서 음식 먹는 얘기가 나와 있는데요. 제가 그걸 보고 조금 이건 희한하다라고 싶었던 게 뭐냐하면 교도소 내에서 밥을 지어먹을 수가 있습니까?

[황석영/작가 : 밥은 아니지만 음식 같은 걸 살짝살짝 해 먹을 수가 있죠. 왜냐하면 일반수들이 취업하러 다 공장에 일하러 나가니까 소 내가 텅 비어요. 그러면 소지라고 일하는 젊은이하고 저하고 교도관하고 3명만 남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비교적 자유롭죠. 그리고 이제 옥살이하면서 3년 지나면 고참 대우도 해 주면서 교도소 당국이 풀어줄 건 풀어주고 적당히 모른 척합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가끔 시인께서 나오시면 제가 시낭송을 잠깐 부탁드리고는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시청자 입장에서 그런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런데 이제 산문집을 내신 대소설가께 제가 쓰신 에세이의 일부를 읽어주십사 하면 결례 아니죠?

[황석영/작가 : 아니죠, 전혀 아니죠. 우리나라는 읽는 문화가 별로 퍼지지 않았는데 해외에서는 대가들 노인들의 경우에도 독자들 7, 8명 앉혀놓고 작은 카페에서 읽기도 하고 그럽니다.]

[앵커]

우리도 요즘 그런 곳이 있기는 있습니다. 일부분만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황석영/작가 : 잘될까 모르겠는데.]

[앵커]

잘 되실 것 같습니다.

[황석영/작가 : 이른바 핵가족이라는 말이 나온 지도 수십 년이 지났다. 마을 공동체 따위는 시골에서도 사라지고 있다. 빈집이 많아진 동네에 혼자 남은 노인들은 제각기 띄엄띄엄 흩어져서 살아가고 있다. 역시 혼자 사는 가구는 도시로 갈수록 점점 더 많아지고 고독사는 특이한 사건이 아니게 되었다. 누가 이웃에서 굶어죽는지 마는지 알 바 없어진 것이다. 옹색한 거처에 혼자 사는 젊은이들은 대충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거나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며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배고픔은 어떤 먹을거리로든지 달랠 수가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먹었던 음식의 맛에 대한 그리움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맛있었던 음식도 함께하는 이가 없으면 그 맛을 느낄 수가 없으며 넘쳐나는 풍성한 먹을거리도 고독한 식사의 허기를 달래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즈음 음식 프로가 부쩍 성행하는 것을 보며 음식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공동체성의 뿌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앵커]

인터뷰를 그냥 폐하고 남은 시간을 계속 낭독으로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거 진심입니다.

[황석영/작가 : 감사합니다.]

[앵커]

요즘 왜 책도 이렇게 음성으로 내는 그런 경우도 있잖아요. 물론 양이 많기는 합니다마는.

[황석영/작가 : 우리가 그런 낭독문화가 잘 안 돼 있어서 사실은 근대소설이 위기에 빠진 게 이야기의 연희성을 상실하고 고독한 집필자와 고독한 독자가 이렇게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만나는 이런 것 때문에 소설이란 매체 자체가 위기에 그런 산물이다, 이런 얘기가 있거든요.]

[앵커]

그 말씀을 그냥 하셨으면 제가 해석하느라고 머릿속이 복잡했을 텐데 낭독하시는 걸 듣고 나서 그 말씀을 들었더니 굉장히 이해가 빨리 오는 것 같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네요.

[황석영/작가 : 그런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앵커]

알겠습니다. 이게 조금 뭐랄까요. 요즘 얘기이기는 한데요. 오늘도 북한은 발사체를 쐈다고 뉴스가 나왔습니다. 우리 황석영 선생을 얘기하다 보면 북한에 가셨다가 옥살이하셨던 얘기를 또 빼놓을 수는 없는데 그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요. 책 속에 보면 김일성 주석하고 언감자국수를 드셨다고 그렇게 나와 있어서 그때 얘기 잠깐 들을 수 있습니까?

[황석영/작가 : 불에 데인 듯이 놀란다,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게 오래됐는데 거의 본능적으로 김일성 그러면 정말 그렇게 불에 데인 듯이 깜짝 놀란 경우 또는 일파만파로 그 얘기가 막 번져나가서 난리가 나는 이런 식인데 사실은 이제 먼저 전제해야 할 것은 김일성이란 사람은 물론 독재자고 그리고 전쟁과 분단에 절반의 책임이 있는 역사적 인물이죠. 그래서 그 사람을 무슨 추종한다든가 또는 그 사람의 생각에 동조한다든가 이런 건 아니고 역사적 인물이 저하고 밥을 몇 번 같이 먹었는데 그 사람이 먹는 음식에 대한 얘기를 거기다 썼어요. 그러니까 이건 아마 기자나 작가가 동시에 가질 수 있는 호기심의 그런 범위이겠죠. 그런 얘기입니다.]

[앵커]

어떻게 해서 같이 그걸 드시게 됐습니까?

[황석영/작가 : 제가 여러 차례를 만났는데 점심도 때로는 먹었고 저녁도 먹었는데 점심때 언감자국수라는 걸 내놨어요. 저는 그게 그 국수가닥이 아주 새카맣고 검은 데다가 위에다 짧은 갓, 여린 갓인데 그걸 들갓이라 그러더라고요. 갓김치를 이렇게 올려놓고 콩물국수죠. 그걸 먹었는데 아주 쫄깃하고 맛있었어요. 그런데 일화를 얘기할 때 자기가 항일 빨치산 그런 걸 할 때 주변에 사는 산간지방의 화전민들이 빨치산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파먹으라고 자기네 농사한 감자를 파묻어놓고 표시를 해 둔대요. 그럼 그게 추운 지방이니까 금세 어는데. 그걸 갖다버릴 수도 없고 언 감자여서 못 먹거든요. 그런데 그걸 화전민 출신의 유격대원이 아, 이거 이렇게 녹말을 내려서 먹으면 이게 국수가 아주 맛있는 음식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해서 그렇게 해 먹었더니 굉장히 식량에 보탬이 됐다, 뭐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그래서 루이제 린저가 왔을 때 그걸 내놓으면서. (독일의 작가죠) 독일에서는 감자가 거의 주식인데 당신네 감자를 얼려서 이렇게 국수를 만든 경우를 봤냐 그랬더니 난생처음 봤다 뭐 이랬다고 그런 일화입니다.]

[앵커]

루이제 린저도 북한을 많이 방문했었으니까요.

[황석영/작가 : 그랬었죠. 그 사람이 아마 독일 녹색당 대통령 후보도 하고 그래서 비교적.]

[앵커]

물론 우리나라에도 왔었고요. 알겠습니다. 사실 황석영 선생 하면 단지 문화계 얘기뿐만이 아니라 지내오신 역경이 있기 때문에 정치, 사회적인 문제도 많이 질문을 드릴 수가 있는데 오늘은 문화초대석이니까.

[황석영/작가 : 오늘은 좀 봐주십시오.]

[앵커]

그 질문은 드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황석영/작가 : 감사합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작년 가을에 장편소설 해질무렵을 발표하셨고 최근에 단편소설을 내셨습니다. 그런데 단편소설은 그동안에 한 28년 만에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단편을 안 쓰셨습니까?

[황석영/작가 : 그게 이제 제가 한 15년 이상을 작품을 못 쓰고 망명하고 징역 갔다 오고 그리고 나오니까 아무것도 없이 다 사라졌더라고요. 먹고는 살아야 되는데 그래서 사방에서 계약하면 계약하는 대로 다 돈 주섬주섬 받아서 외상값이 이렇게 쌓였으니까 그 빚을 갚으려니까 장편 쓰고 또 그다음 책 끝나면 또 그다음 책 쓰고 그러다 보니까 단편을 쓸 시간이 없는 거예요. 그러다가 근래에 와서 겨우 글 빚이 다 지나가서.]

[앵커]

이제서야 그렇습니까?

[황석영/작가 : 그렇습니다. 그래서 계약한 게 지금 두어 가지가 남아 있는 상황인데 좀 느슨해요. 중단편을 그사이에 쓰려고 작정을 했습니다.]

[앵커]

그러셨군요. 아시는 분 다 아시겠습니다마는 고등학교 재학 중에 사상계 신인상을 받으면서 등단을 하셨습니다. 그게 1962년입니다.

[황석영/작가 : 그렇습니다.]

[앵커]

입석부근이란 작품이었는데 그 이후에 그러니까 햇수로 따지면 54년째 지내고 계십니다, 작가로서. 너무나 유명한 삼포 가는 길, 장길산. 그 문학들이 어떻게 보면 황석영 문화계 전반기. 그렇게 표현해도 되겠습니까?

[황석영/작가 : 그렇습니다.]

[앵커]

조금 아까 말씀드렸던 방북, 수감생활 그 이후는 후반기라고 얘기해도 될까요.

[황석영/작가 : 그렇게들 얘기합니다, 평론가들이.]

[앵커]

그러면 요즘 특별 관심을 두는 분야는 어느 분야십니까?

[황석영/작가 : 지금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전반기의 저의 문화는 서울식 리얼리즘의 구성과 문체 이런 식으로 썼다면 후반기에는 이제 내 목소리와 내 방식대로 세계의 현실을 담는다 뭐 이런 식으로 써왔는데요. 최근에 이제 해질 무렵이라든가 망각스님 이런 등등 쭉 일련의 작품들을 아마 이게 나이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그런 분위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 왜냐하면 기억과 상처를 가지고 그에 따르는 회한이 있지 않습니까? 그 회한의 자취의 흔적들을 더듬어가는 그런 주제가 일련의 작품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지난번에 말씀하신 내용 중에 대학의 문예창작과나. 왜 웃으십니까?

[황석영/작가 : 왜냐하면 시끄럽거든요, 그때.]

[앵커]

시끄러웠죠. 그런데 혹시 모르시는 분이 계실 것 같아서 마지막 제가 질문을 완성해 보겠습니다. 대학의 문예창작과나 우리 문학교육 풍토에 대해서 강력한 비판을 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아까 말씀드린 삼포 가는 길, 황 선생님 작품입니다마는 여기에 대한 문학문제를 풀어보니까 나 거의 다 틀리더라, 그건 어떤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황석영/작가 : 어디 강연회를 가서 질문을 받아서 물론 대답한 것이기는 합니다마는 이게 글쓰는 기술만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이 인생에 대해서 인생에 대한 태도와 관점을 자기 안에 기르고 형성하는 게 작가로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글쓰기 기술보다 먼저 그게 선행돼야 한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 어디 보도 매체에서 그걸 이제 좀 논란을 불러일으켜야 하니까 제목을 한국의 문예창작과가 한국문학 망쳐, 이렇게 달고.]

[앵커]

너무 극단적으로 했군요.

[황석영/작가 : 하여튼 그렇게 해서.]

[앵커]

본질을 따지다 보면 그런 결론으로 갈 수도 있었던 건 아닐까요.

[황석영/작가 : 꼭 그렇다기보다는 예술교육이나 문학교육 전반에 대한 비판이죠. 그런데 이제 문학교육의 경우에도 대개 외국의 사례나 그 문학교육의 의의를 보면 개인의 창의성이나 그런 감수성을 키워내는 식으로 접근을 해야 되는데 우리나라는 입시 위주의 문학교육이기 때문에 시나 소설을 사지선다형의 그런 해답으로 접근을 하게 된단 얘기예요. 그래서 내가 그걸 통절하게 느낀 것은 여름방학 때면 이제 교사들이 무슨 연수회 같은 걸 많이 하지 않습니까?]

[앵커]

하죠.

[황석영/작가 : 국어교사 모임에 가서 강연을 하는데 끝나고 나니까 선생님들이 나를 골탕먹이려고 했는지 아니면 장난으로 그랬는지 선생님 삼포 가는 길 가지고 시험문제 내니까 한번 써보세요. 그래서 10문제를 냈어요. 뒷풀이 하기 전에 시험을 봤죠. 그런데 제가 깜짝 놀란 건 사지선다형을 제 소설에 대해서 시험을 봤는데 제가 4문제를 겨우 맞혔습니다. 그러니까 점수로 따지면 100점 만점에 40점이죠.]

[앵커]

과락이네요.

[황석영/작가 : 그러니까 낙제점수죠. 그러니까 제가 통탄을 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문학에 대한 질문과 해답이 왜 정답이 꼭 하나만 있냐. 이 사람은 이렇게 느끼고 저 사람은 저렇게 느끼고 해서 통째로 그걸 감수성이라고 받아들이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걸 그런 식으로 교육을 하는 게 이게 문제가 있다고 보고.]

[앵커]

어떤 말씀인지 이해가 갑니다. 시간이 거의 많이 돼서 오늘 말씀 나눠보니까 시간이 굉장히 빨리 갑니다. (그래요?) 한 가지만 질문 드리겠습니다. 한국 현대문학은 곧 김수영과 황석영이다라는 평가를 듣고 싶다라는 말씀을 본인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또…) 너무 와전입니까?

[황석영/작가 : 하여튼 어 다르고 아 다르다고 저는 그래서 말이 많습니다. 제가 한 얘기는 시에서 김수영이 했던 역할을 산문에서는 황석영이 하고 싶다 이런 얘기였죠. 그 얘기가 어디에서 나왔느냐면 저 고희 때. 작가 50주년 겸 고희. 그 자리에서 제가 김수영 선생의 현대식 교량이라는 것을 읽었어요. 현대식 교량이란 걸 읽었는데 그게 아마 제 소회하고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시라고 그래서 읽었겠죠. 내용이 뭐냐하면 식민지의 오욕으로 지어진, 놓여진 다리 위를 건너가는데 젊은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거기를 건너가요. 그러니까 이 시인이 뭐라고 한소리 하니까 이 젊은이들이 무슨 선생님 그렇게 케케묵고 낡은 얘기를 하십니까? 거기에서 세대간의 갈등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이 다리가 우리의 사랑의 다리로 변하는구나 이런 시를 읊었거든요. 저는 그 시를 읽고 굉장히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는 김수영 선생님이 말한 대로 한국 소설의 과거와 미래를 증언하는 그리고 사랑으로 충만한 다리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입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이제 좀 말씀이 굉장히 더 풀리시는 것 같은데.

[황석영/작가 : 이제 앞으로 더 나올 것 같은데 이제 끝나네요.]

[앵커]

그런데 시간이 다 돼서 멈춰야 하기 때문에요. 나중에 기회 되면 한번 더 모시겠습니다. 오늘 짧은 시간이었지만 감사드리겠습니다.

[황석영/작가 : 오늘 오래간만에 반가웠습니다.]

[앵커]

이 책은 나머지 반을 곧 읽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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