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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함바왕과 검찰, 그 불편한 진실을 찾아서

입력 2015-11-24 14:41 수정 2015-11-24 15:40

- 검찰은 왜 거악을 단죄하지 못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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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은 왜 거악을 단죄하지 못했는가.

지난 5년 동안 구속과 출소를 반복해 온 함바비리 사건 브로커 유상봉. 그는 단순한 사기꾼 혹은 뇌물 공여자가 아닙니다. 기자는 17년 동안 수많은 뇌물사건 비리 혐의자들을 취재해 왔지만 유상봉씨와 같은 이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난주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도 자세히 그려졌지만 뇌물을 준 사람이 공직자를 협박해 뇌물을 토해내도록 한 사례는 일반적으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보통은 검찰에 불려가 자신의 개인비리로 시달리다 수사에 협조하게 됩니다. 그리고 검찰이 원하는 선에서 돈을 준 공직자 몇 명을 실토하는 수순으로 수사가 진행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유상봉씨의 여러 측근 인사들 증언을 종합해 보면 유씨는 검찰과 상당히 능수능란하게 협상을 진행하는 듯합니다. 유씨는 함바 운영권 수주를 위해 수억, 수십 억 원의 투자자금을 받아놓고서 이를 빼돌리는 식으로 수많은 사기 피해자들을 양산해 왔습니다. 하지만 유씨는 사기사건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처벌받기 위해 검찰 쪽에 마치 제안이라도 하듯이 편지를 씁니다.

사실 지난해 6월 부산지검에서 유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한 뒤 유씨가 서울로 올라와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는 데는 바로 위에 설명한대로 유씨가 검찰에 '특별한 제안'을 한 덕분입니다. '특별한 제안'은 다름아닌 뇌물사건을 터트리겠다는 것입니다. 검찰로서도 전혀 나쁠게 없는 제안인거죠. 유상봉씨는 이 과정에서 자신이 뇌물 수수자로 검찰에 실토할 공직자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공직자들 입장에선 유씨로부터 날아드는 편지가 바로 '공포의 편지'가 되는 셈입니다.

돈을 내놓거나 다른 방식으로 협조를 한 경우에는 절대 검찰에 불지 않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는 공직자는 검찰에 뇌물을 준 사실을 터뜨리는 것입니다.

물론 이중에는 수십, 수백 배 사실을 부풀려 사건을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유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공직자들을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고 마땅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검찰은 유씨의 입만 바라보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악의 근원을 뿌리 뽑는 수사가 되려면 유씨의 입에만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유씨와 검찰사이에서 벌어지는 모종의 타협과 협조라는 부분이 작용해 사건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유씨가 이런 방식으로 대담한 일을 벌일 수 있는 데는 그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캐릭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결국 검찰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 함바왕의 특별한 제안

지난 1차 함바사건(2010년 유씨가 구속돼 2011년부터 강희락 전 경찰청장 등 본격적으로 고위 공위자들이 구속된 시기) 때 검찰은 유씨의 '도움'(?)으로 상당한 수사성과를 거둡니다. 특히 수사권 조정(독립) 문제로 검경 갈등을 겪어오던 시기에 터진 유상봉 사건은 경찰이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로 조직이 초토화되는 수모를 당하게 됩니다. 검찰로서는 유상봉의 '입'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는 존재였습니다.

얼마나 고마웠으면 유씨에 대한 선고공판을 앞두고 검찰 측에서 "유상봉씨가 거악을 뿌리뽑는데 공을 세웠고, 충분히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재판부에 선처를 탄원했겠습니까.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의 주범인데도 유씨는 고작 1년6월형을 선고받는데 그쳤습니다. 과연 그가 정말 거악을 뿌리 뽑는데 공을 세웠다는 게 맞는 이야기일까요. 그리고 그가 충분히 뉘우쳤다는 것도 근거가 있는 말일까요? 이번 취재에서 검찰이 유씨 선처를 주장하며 내세웠던 이 같은 내용은 사실과 전혀 달랐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우선 유씨가 충분히 반성하고 있다는 대목부터 얘기해 보겠습니다. 유씨는 2010년 11월 구속 기소돼 2013년 3월 1년 6월 형을 마치고 만기 출소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2010년 11월부터 1년 6월을 계산해보면 2012년 5월쯤에 풀려났어야 하는데 그로부터 약 열 달이나 늦게 출소를 했기 때문입니다. 유씨의 출소가 이렇게 늦어진 데는 세 번에 걸친 구속집행정지 때문이었습니다.

유씨 측은 갑상선 암을 비롯해 뇌졸중 등 각종 병에 시달리면서 수술과 치료를 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유씨의 건강이 일부 안 좋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세 차례의 구속집행정지 기간 중 자유롭게 병원을 빠져나와 로비와 협박, 함바 사업 수주 작업을 해나간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에 순천대 임상규 총장에게 찾아가 그를 압박했고, 결국 임 총장은 '악마의 덧에 빠졌다'는 글귀를 남기고 자살하게 됩니다. 임 총장의 자살이 모두 유상봉 탓이라고만 할 수는 없지만 그의 압박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게 유가족들의 입장입니다.

◇ 구속 중에도 자유롭게 로비와 협박, 사기 행각

그런데도 검찰과 법원은 유씨의 자유로운 활동에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검찰은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에 유씨가 이런 행위를 해왔다는 점을 모르지 않았을텐데 '선처해달라'고 재판부에 간곡히 호소하게 됩니다. 유씨는 측근들에게 "검찰이 잘 도와주고 있어서 큰 걱정이 없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고 합니다. 유씨 측근 중 한 사람은 "유씨는 검찰청사 내에서도 '회장님'이나 다름없었다"며 "뒷배가 튼튼하니까 구속집행정지 기간에도 그렇게 대담하게 외출하면서 일을 보지 않았겠느냐"고 말합니다.

검찰은 단지 유씨에 대해 특혜를 준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측근들 증언에 따르면 당시 함바 비리 사건 수사가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거악을 뿌리 뽑았다'는 검찰의 말은 허언이라는 것입니다. 유씨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인 A씨는 취재진을 만나 수차례 반복한 얘기가 있습니다. 검찰이 정권 핵심 혹은 실세 인물들에 대해서는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핵심 인사 중 하나였던 정치인 B씨, 또 자치단체장을 역임한 C씨. 유씨 최측근인 A씨는 이 두 사람에 대해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나는 유상봉씨와 함께 함바 사업을 10년 이상 하면서 B씨와 C씨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들 덕분에 엄청난 함바 운영권 수주를 할 수 있었다. B씨, C씨를 유상봉에게 소개한 사람은 다름아닌 D씨와 E씨였다. 내가 눈으로 목격했거나 유씨에게서 직접 들은 얘기다. 이 사실은 절대 틀리지도 않고 바뀔 수도 없는 부분이다. 검찰에서도 B씨와 C씨에 대한 구체적 진술이 나왔다. 그런데 검찰은 수사하지 않더라. 자신들의 이름이 나오자 B씨와 C씨는 기자인터뷰를 이용해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서는 걸 보고 기가 다 찰 정도였다."

정치인 B씨와 전 자치단체장 C씨는 언론에 이렇게 해명을 했습니다.

"거절할 수 없는 분으로부터 유상봉씨를 소개받아 몇 차례 만났을 뿐이다. 하지만 도움을 주거나 그 대가로 돈을 받은 적은 결코 없다."(B씨 해명 중)

"중앙(정계)에 계신 분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2-3차례 만났을 뿐 특별히 도움을 준 적이 없다"(C씨 해명 중)

거절할 수 없는 분, 중앙(정계)에 계신 분은 과연 누구일까요. 이번 취재 과정에서 이 두 분의 정체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정부 최고위 핵심인사들이었습니다.

◇ 정권 실세들 진술 나왔는데도 수사 착수 안한 검찰

그리고 그들과 유씨와의 만남과 특별한 관계에 대해서는 숱한 증언들과 목격담이 존재합니다. 당시 B와 C씨의 언론 인터뷰의 성격에 대해 유상봉 씨 최측근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더 이상 검찰 수사가 확대되면 우리까지 다치고 그렇게 되면 당신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니 늦기 전에 조치를 하라"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전달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실제로 B와 C씨의 이름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나왔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주로 경찰 고위급 인사들을 타킷으로 한 수사가 진행됩니다.

자, 어떻습니까. 과연 5년 전 함바비리 사건은 검찰의 말대로 거악의 뿌리가 뽑힌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실체적 진실의 절반도 채 밝히지 못 했다는 것이 이번 사건 취재를 통해 확인한 부분입니다. 유상봉씨에게 피해를 본 한 투자자는 취재진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당시 검찰이 유씨를 철저히 수사해 제대로 단죄를 했더라면, 구속집행정지기간에만 수십억 원에 달하는 큰돈을 사기 치지 않았을 겁니다. 유씨는 구속돼 있으면서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함바사업을 재개한다는 명분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돈을 끌어들이고 이를 빼돌렸습니다. 과연 대한민국 검찰은 무엇을 단죄했다는 말입니까? 대신 유씨 수사에 관여한 검사들은 모두 좋은 곳으로 영전해갔습니다."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대한민국 검찰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지난해 6개월 동안 진행됐던 '철피아 사건' 수사를 떠올려봅니다. 당시 기자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한 검사를 사석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 검사는 "6개월이든 1년이든 철피아 사건을 끝까지 파헤쳐 거악을 뿌리뽑겠다. 언론이 많이 도와달라"는 얘기를 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현직 여당 국회의원 2명을 포함해 공기업 관계자, 감사원 인사 등 많은 사람들이 사법처리 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말 수사해야 할 사람들은 다 피해갔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입니다. 어떤 근거에서 이런 얘기를 하느냐고요? 지금은 속 시원히 밝힐 수 없습니다만 언젠가 관련된 기사를 세상 밖으로 내보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당시 철피아 수사는 진짜 핵심인사들에 대해서는 수사 시도 자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뇌물을 전달한 핵심피의자의 일부 진술과, 각종 장부 등 수사해 볼만한 단서들이 있었는데도 검찰은 철저하게 사건을 파헤치지 않았습니다. 마치 함바비리 사건 때처럼 적당히 국민들로부터 박수받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는 얘기입니다.

철피아 사건의 핵심피의자이자 정치권, 공기업 등 인사들에게 돈을 뿌린 철도부품업체 사장 E씨는 현재 어떻게 됐을까요. 구속돼 재판을 받았을까요? 아닙니다. 지금도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답니다. 검찰은 다른 뇌물사건 피의자와의 형평성 운운하면서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사건을 종결한 지 1년하고도 1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E씨에 대해서는 기소조차하지 않고 있습니다.

◇ 수사 끝난 지 1년 지났는데도 뇌물 공여자는 기소도 안해

물론 아예 기소를 하지 않고 넘길 수는 없겠지요. 올해 안에 기소한다는 소문은 있습니다. 과연 철피아 사건의 핵심 피의자에 대해 검찰이 어떤 단죄를 하게 될까요.

탈세, 횡령 등 개인 비리는 다 봐주고 뇌물 사건에서도 일부 사실에 대해서만 기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검찰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검찰이 아예 집행유예를 구형한다는 얘기까지 들립니다.

뇌물 사건에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사실을 취재해 본 기자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 것입니다. 그래서 뇌물 공여자를 잘 설득해야 하고 그의 입을 통해 진실의 실체에 조금씩 다가갈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사에 협조했다고 많은 부분이 당연히 면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당한 성과에 매몰되고, 할 수 있는 선에서만 수사한다는 가이드라인이 정해진 지금의 검찰 수사 관행에서 과연 정의라는 게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지 회의적입니다.

유상봉 핵심 측근 중 한 사람은 취재진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유상봉을 악마로 키운 건 바로 검찰이다"라고요. 다소 과도한 비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왜 이렇게까지 얘기했는지, 검찰은 과연 거악을 뿌리 뽑았는지 검찰 스스로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JTBC 탐사제국 고성표 기자 < muzes@jtbc.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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