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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문학 교과서가 '헬조선' 열풍 부추기나?

입력 2015-10-29 22:22 수정 2015-10-29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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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역사교과서 논란이 또 다른 쪽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교과서가 좌편향이라고 주장해 온 단체에서 역사 과목뿐 아니라 경제, 문학 등 다른 교과서에서의 편향성도 심각하다고 제기하고 나섰는데요. 정말로 그런 문제가 있는 건지, 오늘(29일) 팩트체크에서 짚어보겠습니다.

김필규 기자, 어떤 주장인지 간단하게 설명을 들어볼까요?

[기자]

어제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있었던 새누리당의 '역사 바로 세우기' 포럼에서 나온 이야기부터 들어보시죠.

[전희경 사무총장/자유경제원 : 우리가 올바른 역사 세우기를 위한 역사교과서 이야기를 하지만 저는 이것이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교과서, 문학교과서, 윤리교과서, 사회교과서 모두에서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운 기적의 힘은 사라지고 불평과 남 탓과 패배감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교과서를 언급했는데요. 특히 문학교과서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건지, 이보다 한 달 전 있었던 자유경제원 토론회를 보면 자세한 내용 알 수 있습니다.

한 발제자의 발표내용을 보면 "청소년들이 우리나라를 희망이 안 보이는 '헬조선'으로 생각하는데, 특히 문학 교과서에 왜곡의 여지가 있어서 그렇다. 왜 그런 작품들을 골라서 넣었는지 의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앵커]

어떤 작품들이 거론됐습니까?

[기자]

9개 작품을 예로 들었는데 몇 개만 소개하면 먼저 최인훈의 '광장'입니다. 18종 교과서 중 대부분에 수록돼 있는데 마지막에 거제 포로수용소에 있던 주인공 이명준이 남한도 북한도 아닌 중립국 행을 택하는 장면이 나오죠?

자유경제원에선 이 과정에서 '남한이 게으름과 방탕한 자유가 있는 곳으로 묘사된다. 고귀한 자유에 대한 왜곡 우려가 있으며, 남한이나 북한이나 다를 바 없이 살만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다음은 신경림의 '농무'인데요. 역시 교과서 단골 작품이죠. 농촌에서 잔치를 하고 난 뒤의 모습을 그린 시인데, 거의 모든 참고서를 보면 '고도성장 이면에 황폐해진 70년대 농촌의 현실을 그렸다'는 설명이 달려 있습니다.

자유경제원에선 이 부분을 문제 삼아 '유신 시대 새마을 운동을 통해 농촌이 오히려 잘 살 수 있게 됐는데 그런 내용은 언급하지 않고 무조건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과정을 비판 왜곡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앵커]

왜 자꾸 자학하느냐, 그런 얘기죠?

[기자]

그렇습니다. 최근 작품 중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지적했는데, 프로야구 창단 첫해부터 최악의 성적을 거두던 삼미 팀을 끝까지 응원하던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죠?

토론회에선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 덕분에 오늘의 풍요가 있다는 사실은 도외시하고 무조건 경쟁은 나쁜 것이라고 치부한다. 일제고사 등을 거부하는 전교조 교사들의 견해와 맥을 같이한다'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교과서에 이런 작품이 들어가면 곤란하다, 그런 얘기잖아요?

[기자]

그렇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지 좀 살펴보면, 먼저 '광장'의 경우 과거 국정교과서에도 실린 바가 있고 2004년엔 소설가와 평론가들이 뽑은 '한국문학 100년 최고의 소설'로 선정됐습니다. 최인훈 작가는 노벨문학상 후보이기도 했고요.

'농무' 역시 만해문학상 초대 수상작인 데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역시 서울대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려 본 책으로 꼽혔습니다.

그러니 교과서에 실릴 만한 자격은 갖췄다고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렇다면 문학계 인사들의 생각은 어떤지도 들어봤습니다.

[정홍수/평론가 : 문학이 갖고 있는 정치성이라고 하는 게 있다고 할 때 이 세 작품은, 그런 정치성의 측면에서도 굉장히 세련되고, 복합적인 시각을 제공하는 그런 작품들이기 때문에. 그런 협소하고 편협한 정치성으로 비판한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이 작품들이 한국 문학사의 명편들입니다. 100년 뒤에도 살아남을 작품들이에요. 이런 작품들을 당연히 문학교과서에서 가르쳐야 하는 거고. ]

[앵커]

다른 문학계 인사들은 뭐라고 얘기합니까?

[기자]

여러 의견이 있을 것 같아 많은 분들께 들어봤는데요.

먼저, 학계 원로인 유종호 예술원 회장은 "특정 관점 때문에 문학작품이 실려선 안 된다는 법이 어디 있느냐. 60, 70년대 작품이 지금 관점과 안 맞는다고 빼면 고전 문학작품도 다 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고, 그래서 평론가 신형철씨는 "문학작품의 본질이 열린 해석과 토론이라는 것을 이해 못 한 발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보수논객인 소설가 복거일씨의 경우 "문학작품이 역사를 바라보는 데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광장이나 농무처럼 고전의 반열에 오르고 평가가 끝난 작품을 자유경제원이 거론한 것은 의아하다"고 말했습니다.

[앵커]

물론, 전수적으로 얘기를 들어볼 순 없는 것이지만, 좌우에 속한다는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얘기하는 것 같기는 합니다. 일단 여기 나온 분들은. 그런데 이게 시작이다 끝이 아니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데요, 아까 자유경제원의 그분은. 소위 '올바른 문학 교과서' 만들기 운동에도 들어갈 수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확대해서 국면 전환을 더 할 수 있다… 이런 얘기로 들어도 되는 겁니까?

[기자]

그런 관측도 나오고 있고요.

사실 자유경제원에선 올 초부터 꾸준히 주장해 왔던 내용이기 때문에 그런 움직임 이미 시작됐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자유경제원의 설립목적을 보면 '지식인들의 잘못된 이념이나 철학으로 자유주의가 전복될 수 있다"면서 "자유주의 시장경제 시각으로 우리 사회의 바른 여론형성에 기여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 문학작품에 대한 이런 해석과 주장을 나름대로는 할 수 있는데, 문제는 그 주장이 얼마나 동력을 얻느냐 하는 거겠죠? 어제 포럼 장면 잠깐 더 보겠습니다.

[김무성 대표/새누리당 : 오늘 사실 내가 발견한 우리 이 시대의 영웅 전희경 사무총장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되는데. 사무총장은 내가 국민의 이름으로 요구하는데 밤잠 자지 말고 전국 돌아다니면서 이 강의를 좀 하고 다니시길 제가 부탁합니다.]

앞서 전희경 사무총장 이야기대로 이번 국정화 논란에서 역사교과서는 완성이 아니라 본격적인 시작일 수 있겠다는 점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앵커]

아무튼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촉발된 이 문제가 어디까지 갈지 우려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김필규 기자였습니다.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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