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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황장엽, 미국으로 가 북한 망명정부 세우려고 했다"

입력 2015-10-20 03:01 수정 2015-10-20 14:15

김덕홍에게 보낸 친필서한 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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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홍에게 보낸 친필서한 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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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2010년 사망·사진)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한국 망명 4년여 만인 2001년 7월 서울 세종로 미 대사관을 통해 미국으로 재망명하려 한 것으로 확인됐다.

 19일 중앙일보가 단독 입수한 그의 친필 서한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자신과 함께 한국에 온 김덕홍(76) 전 노동당 자료실 부실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황 전 비서는 “지금 당장 미국 대사관에 망명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며 “이 문제를 미측과 협의하고 방도를 확정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서한에서 황 전 비서는 “망명 문제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 반드시 서면으로만 협의하도록 할 것, 전화 사용은 위험함”이라며 보안도 강조했다. 또 “망명의 암호는 ‘돈 문제’라고 함이 좋을 듯하다”며 “‘돈 문제’ 가능성 여부를 확정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준비 사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황 전 비서가 서한을 작성한 시기는 김대중(DJ)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첫 남북 정상회담(2000년 6월)이 열려 대북 유화분위기가 한창이었을 때다. 김덕홍씨는 19일 발간된 자서전 『나는 자유주의자이다』에서 “2001년 7월 2일 당시 신건 국가정보원장이 면담을 구실로 밤 11시쯤 나를 국정원 구내의 자택으로 불러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신 원장은 당시 추진되던 황 전 비서의 방미 초청에 반대하며 ‘암살당할 수 있다’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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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망명의 뜻을 밝힌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2001년 7월 3일자 서한. “미 대사관에 망명하는 게 좋은 방법”이란 글이 눈에 띈다. 글귀에 동그라미를 쳐 강조하는 건 황 전 비서의 습관. [사진 김덕홍씨]

 서울 미 대사관으로의 망명 의사를 피력한 황 전 비서의 서한은 하루 뒤인 7월 3일 작성됐다. 여기에서 황 전 비서는 국가정보원을 ‘적(敵)’으로 지칭하며 “적들이 우리를 살해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가장 중요한 건 적이 우리의 진(진짜)의도를 모르게 하고 시간을 끌다 단호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황 전 비서는 미국행이 성사될 경우 워싱턴에 반(反)김정일 성향의 북한 망명정부를 세우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망명정부의 수반은 직접 맡을 생각이었다고 복수의 관계자들이 전했다.

 탈북 1호 박사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황장엽 선생은 세계에 뿔뿔이 흩어진 반김정일 세력을 규합한 망명정부를 구체적으로 계획했다”고 말했다. 망명 내각의 장관급을 제의받은 안 소장은 조직구성과 해외연락 등 핵심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하지만 황 전 비서의 미국 망명이 국정원에 사전 포착되고, 김덕홍씨와의 접촉이 강제 차단되면서 성사되지 못했다고 한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당시 정부가 황 선생을 어떻게 탄압했는지 명백히 규명하기 위해 국정조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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