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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베트남전 '짜빈동 전투' 영웅 정경진 예비역 중령

입력 2015-10-15 01:07 수정 2015-10-15 09:30

200명이 월맹군 4600명 격퇴 … UPI 통신 “한국 해병대 신화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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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명이 월맹군 4600명 격퇴 … UPI 통신 “한국 해병대 신화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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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별세한 정경진(가운데) 예비역 중령이 1967년 3월 채명신(작고) 당시 파월사령관으로부터 태극무공훈장을 받고 있다. [사진 해병대]

‘짜빈동 전투(Battle of Tra Binh Dong)’의 영웅으로 불린 정경진 예비역 중령이 14일 오전 별세했다. 79세.

 1967년 2월 14일 밤부터 15일 새벽까지 남베트남 쾅나이성 짜빈동에서 벌어진 전투는 베트남전에서 한국 해병대를 ‘신화 속 부대’로 자리매김하게 한 전투다. 고인은 당시 베트남에 파병된 청룡부대(해병대) 11중대장(대위)으로 이 전투를 지휘했다.

 『해병약사』(1992년 발간)에는 짜빈동 전투를 “강철연대라고 일컫는 월맹정규군 제2사단 제1연대, 지원·차단부대로 투입된 제21연대를 합해 4630명을 청룡부대 11중대가 섬멸 격퇴시킨 방어전투”라고 기록하고 있다. 해병대 관계자는 “200여 명의 해병대가 야간에 기습공격을 해온 4600여 명의 월맹군과 1대 23으로 싸워 막아낸 전설의 전투”라고 말했다.

 당시 월맹군은 청룡부대 11중대에 이어 인근의 추라이 미 해병 비행장을 무력화해 해상침투로를 부활시키고, 산악지대를 통한 호찌민 루트를 개척하려던 3단계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특히 월맹군이 D-데이로 정한 2월 14일은 강기천(88) 당시 해병대사령관이 베트남에 도착하는 날이었다. 해병대 관계자는 “월맹군은 이전에 한국 해병대와의 전투에서 패한 적이 있었다”며 “한국 해병대의 수장이 도착하는 날 해병대를 꺾으면 사기도 올라갈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14일 밤 11시 월맹군은 기습공격을 했고 전투 초기 11중대 1개 분대가 돌파돼 분대원 10명 중 5명이 전사하고 4명이 부상당했다. 하지만 정 대위는 특공대를 조직해 적 후방을 공격했고, 포격 지원 요청을 해 15일 새벽까지 4시간이 넘는 전투에서 적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월맹군은 퇴각했으며, 11중대는 243명의 적을 사살하고 포로 2명을 생포했다. 또 대전차 유탄포 6문과 화염방사기 3문, 기관총 2정, 소총실탄 6000발을 노획했다.

 전투가 끝나자 미 해병 3상륙군단장인 월드 중장은 “내가 월남전에서 처음 보는 전과(戰果)”라며 “우방군의 귀감”이라고 극찬했다. UPI통신은 한국 해병대가 ‘신화(Mythological story)’를 만들었다고 전 세계에 타전했다.

 67년 3월 14일 박정희 대통령은 부대 표창을 수여하고 간부를 제외한 191명의 사병 전원을 1계급씩 특진시켰다. 고인은 태극무공훈장과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베트남 전쟁 이후 고인은 81년 중령으로 예편,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애씨와 장녀 성일, 차녀 은미, 장남 해도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보훈병원 장례식장. 해병대는 그의 장례를 해병대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영결식은 16일 오전 10시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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