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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지게차에 치여 직원 죽어가는데…119 돌려보내

입력 2015-08-18 21:07 수정 2015-08-18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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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노동자의 작업 환경 수준을 말해주는 산업재해 통계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보여드리는 이유가 다 있는데요. 매년 산업재해로 다치는 노동자는 9만명이 넘고, 목숨을 잃는 사람도 2000여명에 이릅니다. 산업재해로 숨지는 사람이 인구 10만명당 8명으로, 영국의 8배에 이르고 OECD 국가 가운데서도 최악에 속합니다. 하지만 이런 부끄러운 수치조차 그나마 공개된 것들만 모은 겁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고는 훨씬 더 많다는 게 노동 현장의 얘기입니다.

오늘(18일) 뉴스룸은 바로 그 알려지지 않은, 그래서 하마터면 억울하게 원인조차 모를 뻔했던 한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얘기하려고 합니다. 얼마 전 충북 청주의 한 공장에서 노동자 이모 씨가 지게차에 치여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JTBC는 사고 이후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는 살 수도 있었습니다.

먼저 정제윤 기자의 단독 보도부터 보시겠습니다.

[기자]

충북 청주의 한 화장품 공장.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1시 57분.

화물을 가득 실은 지게차가 직원 이모 씨를 덮칩니다.

지게차는 쓰러진 이씨의 몸 위를 지나쳐간 뒤에도 5m 가량 지나서야 멈춥니다.

이씨는 쓰러져서 움직이지 못합니다.

놀란 직원들은 전화기를 꺼냅니다.

119 안전센터에 사고가 접수된 건 1분 뒤인 1시 58분.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CCTV에 119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당시 출동한 119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한 결과, 구조대는 사고 7분 만에 회사 입구 도로까지 진입했습니다.

하지만 돌아갑니다. 회사 측이 별일이 아니라고 했던 겁니다.

[사고 당시 출동 대원 : 찰과상을 입었는데 본인들이 알아서 할 거 같다. 저희가 정말 돌아가도 되냐 한 번 더 여쭤봤거든요. 안 오셔도 될 거 같다 해서…]

하지만 CCTV 속 상황은 분명 찰과상 수준이 아닙니다.

땅바닥에 쓰러진 이씨에 놀라 직원들이 우왕좌왕하고, 한 직원은 다른 직원들에게 지게차가 이씨 배를 쳤다며 몸짓으로 설명합니다.

회사 측은 유족들에게 119를 돌려보낸 건 회사 지정병원 구급차를 따로 불렀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회사 관계자 (유족과 대화내용) : (119 부른 거예요? 아니면 그냥 옮긴 거예요?) 저희하고 맺은 병원 차가 있어서 그쪽에 불러 가지고 간 거예요.]

회사에서 3분 거리에 있던 119 구조대를 돌려보낸 뒤 30분 거리에 있는 지정병원 구급차를 다시 부른 겁니다.

지정병원은 회사 근처 대형 종합 병원보다 2배나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씨는 맨바닥에서 20분 넘게 고통을 호소합니다.

그러나 직원들이 취한 조치는 이씨를 우산으로 가리고, 담요를 덮어준 게 전부였습니다.

2시 20분 현장에 등장한 건 구급차가 아닌 회사 승합차.

직원들은 다리가 부러진 이씨를 승합차에 옮기면서 들것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당시 이씨는 갈비뼈 골절과 장기 손상으로 내부 출혈이 심해 온몸을 고정시켜 이송해야 했습니다.

[119 구급대원 : 내부출혈이신 분 같은 경우는 정말 응급이잖아요.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예우가 좋으시죠. 저희는 딱 보면 혈압이 떨어지거나 맥박이 빨라지거나 그런 걸 보고 저희는 판단을 하거든요.]

이씨를 태운 회사 승합차는 곧바로 지정병원으로 가지 않고, 인근 도로에 서서 다시 지정병원 구급차를 기다렸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인근 상인 : (얼마 전에 여기서 구급차 와서 사람 실어간 적 있었나요?) 네. 있었어요. 차가 안 와서 왜 이렇게 안 오나 서 있더라고.]

[지정병원 구급차 운전자 : 저도 움직이지 말라고 했는데 자기들이 차로 싣고 벌써 나오고 있대요. 그랬으면 자기들이 태우고 오지 뭐 중간에 (바꾸냐고)…]

사고 발생 1시간이 지나서야 지정병원에 도착했지만, 해당 병원은 정형외과 전문이었습니다.

치료는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이씨는 다시 근처 종합병원으로 옮겨졌고, 과다출혈로 인한 저혈성 쇼크로 숨졌습니다.

[종합병원 의사 : CT 찍어본 결과, 간도 이미 다 손상됐고, 폐도 피가 찼고, 응급차가 갔으면 싣는 허들이 있기 때문에 들쳐업고 망가지거나 하진 않았을 거예요.]

공장 바닥과 도로에서 이씨의 골든타임이 사라지던 사이, 공장 안은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게차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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