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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강제노역 인정 안 했다는 일본, 정말일까?

입력 2015-07-06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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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갑자기 영어 문장 하나가 한일 양국 외교의 논란거리가 됐습니다. 일본 근대 산업시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때만 해도 조선인의 강제노역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작 결정이 난 직후 일본 정부에서 인정한 적 없다, 이렇게 얘기를 내놓는 바람에 논란이 되고 있는 거죠. 영어 해석을 놓고 입장차가 나온 건데, 오늘(6일) 팩트체크에서는 이 문제 짚어보겠습니다.

김필규 기자, 어떤 부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겁니까?

[기자]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일본대사가 독일 본에서 열린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연설을 한 게 지난 5일인데요.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에 대해 지금 보시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대로 번역해 보니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 하에서 강제로 노역했다" 이렇게 되고, 당연히 우리 정부에선 강제노역을 일본 정부가 인정한 것으로 봤는데, 일본 정부가 언론에 배포한 번역본에는 "의사에 반하여 끌려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게 된' 많은 한반도 출신 등이 있었다"고 해서 '강제노역'이란 말을 쏙 뺐습니다.

[앵커]

의사에 반하여 끌려온 것도 강제성이 있고, 'forced to work'도 강제성이 있는데, 여기서 그냥 '일하게 된' 하고… 그러니까 forced to를 뺀 거네요?

[기자]

그러자 대부분 일본 매체들도 정부발표 내용대로 보도를 했던 거죠.

말씀하신 대로 'forced to work'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런 차이가 발생했던 건데요.

일본인들은 'be forced to'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찾아봤더니 대부분 사전에서 '어쩔 수 없이 ~하다'라고 풀었습니다.

동의어로는 be compelled to, be obliged to 등이 있는데 '할 수 없이 ~하다' '부득이하게 ~하다'라고 해석이 달립니다.

그래서인지 일본 정부에선 '강제'라는 의미는 희석시키고 '어쩔 수 없이, 일하게 됐다' 정도로 풀이를 한 건데요, 실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도 오늘 기자들이 이에 대해 캐묻자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앵커]

force라는 단어 자체가 강제라는 의미가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 상식적으로 보자면. 모호하게 넘어가려는 의도, 실제로 저 표현에 강제성이 있다는 걸 증명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자]

그래서 일단 통번역전문가에게 이야기 들어봤습니다.

[곽중철/한국통번역사협회장 : forced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이미 강제성이 들어갔고, 그 다음에 (연설문에) 보면 requisition이라고 또 '징용'이라는 말을 분명히 썼기 때문에 일본 대사가 한 연설에서는 전혀 뜻의 애매함이 없어요. 분명한 그런 (강제성의) 뜻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실제로 국제노동기구(ILO) 홈페이지에 가 보면 강제노역에 대해 설명하면서 'Forced Labour'라는 공식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를 풀어가는 과정에 일본 대사가 언급했던 'forced to work'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보면 강제 노동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앵커]

자, 'forced to work'에 일반적으로 강제성이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사실 훨씬 더 많습니다. 그건 피할 수 없는 것인데. 그런데 ILO상에 공식용어로 있었던 'Forced Labour', 말 그대로 강제 노역이라는 단어도 함께 사용했다면 이런 논란이 원천차단되는 것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기자]

실제 그런 논의가 있었습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당초 한국에서는 'Forced labour' 강제노동이라는 단어를 넣으려고 했는데, 이를 감지한 일본이 수정을 요구해 막판에 'forced to work' 즉 '일하게 됐다'라는 미묘한 표현을 쓰게 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전문가에게 들어봤습니다.

[하종문 교수/한신대 일본학과 : '강제노동(forced labour)'이라고 얘기하면 일본 정부가 책임을 져야 되는 부분이 생기는 거고, 그 다음에 노동조건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는 그건 사례별로 달라질 수밖에 없거든요. 'be forced to work'라고 하는 것은 (forced labour와) 현실적인 무게라는 게 전혀 달라지는 거죠.]

그러니까 일상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이 두 표현에 별 차이가 없이 둘 다 강제성이 있는 것이지만, 외교적으로 볼 때는 표현의 무게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앵커]

그러니 일본이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바라지만 강제징용에 대한 국가적 책임은 피해가고 싶다, 이런 걸 이번에 대표적으로 나타낸 것 같고요. 그런데 양국이 서로 다른 언어를 쓰면서 또 영어로 소통을 하다 보니까 생긴 일. 이번이 처음은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기자]

최근 아베 총리가 과거사 유감 표현을 하면서 나라마다 미묘하게 다른 단어를 써서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이보다 훨씬 앞서 1965년 한일협정 때도 비슷한 논란 있었습니다.

'대한제국과 일본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은 무효다'라는 내용을 넣기로 했는데, 일본에서 갑자기, 예전에 무효가 된 것이니 영문 조약에 '이미, already'라는 단어를 넣자고 해서 이렇게 들어간 겁니다.

그런데 '이미'라는 시점이 참 애매합니다.

우리 측에선 강제병합 자체가 불법적이니까 애초부터 모든 조약이 '이미' 무효라는 생각으로 받아들였고, 일본에선 그게 아니라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부터 '이미' 무효가 됐다고 해석을 하게 된 거죠.

[앵커]

그러니까 일본 입장에서는 최소한 강제병합 자체에 문제가 없었고 이후 맺은 조약도 유효했다고 해석할 여지를 남겨두려고 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2005년 한일협정 문서가 공개됐을 때 이 작업에 참여한 한 교수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는데요.

마침 올해가 한일협정 50주년입니다. 모국어가 아닌 이상 영어 참 어렵죠. 또 이런 게 외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끝나고 나서 우리만 당한 것 같은 느낌 주는 외교는 앞으로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앵커]

일본 사람들이 좀 자기 편한 대로 하는 게 있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어느 일본 특파원이 저한테 '당신들은 독도로 불러라, 우리들은 그냥 다케시마로 부를게' 이런 얘기를 해서 좀 실소를 금치 못했던 적도 있었는데요. 그나저나 김필규 기자는 번역가이지 않습니까? '전쟁의 역설'? (네.) 이번에 번역책을 내놓은 바 있죠. 제가 오늘 선전해드리고 있는 겁니다. 번역가 입장에서 be forced to는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기자]

be forced to, 강제성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겠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김필규 기자였습니다.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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