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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환 "박종철 사건, 위험 무릅쓰고 투쟁? 안상수 발언 과장"

입력 2015-04-08 22:05 수정 2015-04-0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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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28년 전 있었던 박종철 씨 고문치사 사건의 실체와 함께 당시 수사를 맡은 검사들의 역할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선임검사였던 안상수 창원시장을 비롯해 고문경관 폭로에 앞장선 이부영 전 의원까지 많은 사람들이 어제(7일) 청문회에 참석해서 당시 상황을 증언했는데요. 오늘 그 중 한 분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공안부장으로 재직하면서 박종철 씨의 시신을 화장하고 서둘러 사건을 덮으려는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그의 죽임이 물고문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내는 데 큰 역할을 한 분입니다.

최환 전 부산고검장이 지금 제 옆에 나와 계십니다.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건강은 좋으신지요.

[최환 변호사/전 서울지검 공안부장 : 예, 덕분에요.]

[앵커]

박종철 씨 사망사건, 지금 다시 재조명되고 있는 그런 상황에 있습니다. 당시 수사를 했던 당사자 중 한 분으로서 굉장히 하실 말씀도 많으실 것 같고요. 그런데 처음부터 이게 물고문이라고 알려지지 않았다면 덮어질 수 있는 그런 사건이었죠, 당초에는.

[최환 변호사/전 서울지검 공안부장 : 물고문이 아니었으면 문제가 될 사안들이 아니죠. 고문이 없었다는 얘기니까요.]

[앵커]

그러면 처음부터 의혹을 좀 가지고 계셨습니까?

[최환 변호사/전 서울지검 공안부장 : 저는 수사팀에 같이 들어가서 수사를 한 건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 있을 때 바로 그날 1월 14일날 사망을 했거든요. 변사사건으로 저한테 처리 지휘를 받으려고 밤늦게 전한테 왔었어요. 그러니까 1월 14일날 저녁 7시 40분경에.]

[앵커]

용산경찰서에서?

[최환 변호사/전 서울지검 공안부장 : 아니죠, 대공수사팀에서.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흔히들 밤낮없이 일을 하지만 우리 검찰 또한 저녁 무렵이 되면 다 퇴근하거든요.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게 공안부장입니다. 저도 상황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저한테 찾아와서 내놓은 보고서가 A4용지 두 쪽짜리. 그런데 거기에 변사했다는 거하고.]

[앵커]

고문 얘기는 전혀 없었고요?

[최환 변호사/전 서울지검 공안부장 : 물론이죠. 거기에서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는 그 내용이 나옵니다.]

[앵커]

그 유명한 얘기가 거기에 바로 들어있었군요.

[최환 변호사/전 서울지검 공안부장 : 공식적인 발표는 그 뒤에 이틀 후에 치안본부장이 그렇게 또 발표했고요. 저한테 하는데 제가 봤는데 탁 치니까 억 하고 죽는다는 자체가 우선 말이 되지도 않아요. 그래서 이건 직감적으로 고문으로 죽었구나 하는 것을 느껴서 그래서 오늘 나한테 온 건 뭐냐 그랬더니 오늘 밤 안으로 화장 준비가 다 되어 있으니 승낙한다는 도장을 찍어주면 그렇게 하면 가서 바로 화장을 해서 오늘 그냥 묻어버리겠다. 아니, 부모들이 원하고 하니까 뼛가루를 부모한테 인계하겠다, 이런 얘기였습니다.]

[앵커]

어떻게 보면 속전속결하겠다라는 것이 분명히 읽히는 상황이었는데 그거를 막으신 상황이었잖아요.

[최환 변호사/전 서울지검 공안부장 : 네.]

[앵커]

그리고 나서 1차 수사가 들어갔습니다.

[최환 변호사/전 서울지검 공안부장 : 아니, 그러고 나서 이 사람들이 제가 이제 끝까지 그걸 응하지 않고 결국은 이것은 내일 아침에 정식 변사 사건으로 처리하겠다 이렇게 하니까 거기서부터 그 사람들은 차질을 빚고. 저를 아무리 설득한다고 될 일도 없고. 사방에서 전화는 오고 말이죠. 전화가 온다는 게 우리 앵커님께서 생각하실 때 압력이죠, 그게. 그렇게 했는데 끝까지 굽히지 않고 다음 날 아침에 일찍이 정식 사건으로 보고서를 갖춰서 오면 내가 해 주겠다, 이렇게 돌려 말했습니다.]

[앵커]

제가 얘기를 빨리 진행해야하다 보니까 수사 얘기까지 들어갔었는데 그전의 상황까지 말씀해 주신 건데요. 그게 정확하게는 87년 1월 14일 밤이었고 그러면 거기에서 바로 처리하지 않으시고 그거를 일단 묶어두셨잖아요.

[최환 변호사/전 서울지검 공안부장 : 그렇죠.]

[앵커]

그때 아까 전화가 많이 왔다고 했는데 주로 어디서 전화가 많이 오던가요?

[최환 변호사/전 서울지검 공안부장 : 그거는 이제 저희들 유관부서입니다. 중요한 사건, 중요한 인물도 아닌데 어떻게 하다 실수로 죽었는데 그냥 오늘 밤에 화장하도록 해달라, 요지가 그겁니다.]

[앵커]

일종의 그게 압력 전화라고 볼 수가 있었다, 그런 말씀이시군요.

[최환 변호사/전 서울지검 공안부장 : 제가 압력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앵커]

알겠습니다. 구체적으로 누구라고 말씀하시기는 어려우신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무튼 1차 수사가 끝나고 나서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아서 2차 수사까지 넘어갔는데.

[최환 변호사/전 서울지검 공안부장 : 말씀하시는데요. 그 다음 날 1월 15일날 아침부터 서둘러서 부검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사전에 압수수색 영장도 받아야 되고. 시신을 찾아서 부검을 해야 되는데. 거기에 곡절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전에 제가 저희 상사에게 이거 공안부가 나서서 할 일이 아닌 것 같으니까 형사부 검사를 하나 지원해 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드리니까 아무도 원하지 않아요, 형사부에서. 그래서 그날 마침 용산경찰서 당직검사가 안상수 검사입니다.]

[앵커]

그렇군요.

[최환 변호사/전 서울지검 공안부장 : 할 수 없이 거기에 와서 제 지휘받아가면서 했는데 저녁 무렵까지 퇴근 시간이 지나도 시체를 거부해요, 경찰에서. 길게 얘기 드릴 수가 없지만 그걸 설득을 하고 해서 결국 경찰병원에 있는 시신을 한양대학교, 그때 왕십리에 경찰병원이 있었거든요. 한양대학병원으로 옮기고. 또 경찰병원 의사, 그다음에 국립과학연구소의 황적준 박사, 또 한양대학교 부속병원에 있는 집도의 의사 이렇게 세 사람을 붙여서 그래서 부검을 했던 겁니다. 그래서 결과가 물고문 치사로 그렇게 끝난 거죠. 그다음에 수사 문제가 된 것은 16일날이 되죠. 그 다음 날이니까. (1월 16일.) 그날부터 저는 저 혼자 생각에 이거는 철저히 내가 가려냈으니까 검사들하고 해서 해결을 해야겠다. 왜냐하면 그전부터 고문이라는 건 우리가 한시바삐 청산을 해야 될 문제고 고문으로 사람이 죽었다는 건 누가 그걸 용납하겠느냐. 천인공노할 일이거든요. 그래서 이제 했는데 수사 지휘를 하려고 하니까 당신은 (빠져라?) 당신은 공안사건이나 하고 이미 사망원인 다 드러났고 수사 기법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형사부에 맡기겠다, 이래서 저는 손을 떼게 됐죠.]

[앵커]

그렇게 된 거군요. 사실 말씀을 듣다 보면요, 이런 얘기를 하루종일 들어야 하는 문제인데 제가 뉴스시간에 짧은 시간에 얘기를 듣겠다고 모신 것도 결례이기도 하고 그렇기는 합니다. 나중에 또 기회가 되면 또 물론 더 듣겠습니다마는. 그래서 아무튼 어제 안상수 창원시장은, 당시 검사, 뭐라고 얘기를 했냐면 총체적으로 축소, 은폐는 안기부나 경찰쪽에서 하려 했고 수사검사들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피나게 투쟁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동의하십니까, 혹시?

[최환 변호사/전 서울지검 공안부장 : 다소 과장이 있습니다. 피나게 또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우선 그 전 단계에서 제가 화장해 달라고 하는 걸 거부할 때도 저 자신 생명의 위협은 안 느꼈거든요. 그러니까 다소 과장된 것 같고. 다만 수사가 어려웠던 건 사실입니다.]

[앵커]

쉽지 않았겠죠, 당연히.

[최환 변호사/전 서울지검 공안부장 : 우선 수사 상대가 다 대공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고 하니까. 그래서 그렇게 했는데 문제는 이게 여러 가지로 아까 말씀드렸지만 차근차근히 보고 그다음에 설득을 해 가면서 수사를 하면 어려운 게 없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먼저 구속된 두 사람이… (경찰) 두 사람이 교도소에서 양심선언을 하고 다 이미 진상을 밝히기 시작을 했거든요. 그다음 우리가 아무리 조사하는 상대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자기들 스스로도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양심선언도 하고 할 때 같으면 나중에는 얼마든지 수사에 협조도 하고 진상을 더 밝히는 데 수월하게 될 수가 있는 겁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사실 이게 이렇게 문제가 되는 것은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부분에 대해서 제가 최환 변호사께 질문을 좀 자제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청문회가 일단 열렸고 국회 판단이 있어야 되는데 제가 당시에 물론 수사 당사자가 아니었지만 이 사건을 처음에 접했던 분으로서 어찌 보면 크게 역할을 하신 분이기는 하나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판단을 구하는 것은 상황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질문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것으로 요즘 굉장히 논란이 되고 있고 해서. 검사라는 직위가 당시의 사건에서 어땠어야 된다고 보십니까, 그것만 말씀해 주시죠.

[최환 변호사/전 서울지검 공안부장 : 검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수사의 최고 지휘자였고 특정 사건의 수사책임자입니다. 그래서 어떻든 간에 수사라는 건 또 진실을 밝혀내는,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되 그다음에 절차상의 적법절차를 받아가면서, 취하면서. 그 대신에 고문이라는 이런 건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되고 인권을 보호하는 그러한 기본 가치 속에서 거기에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해 내는 그런 일을 하는 게 검사의 본분입니다. 그렇다면 결국은 그렇게 지금 돌아가는 상황에서 얼마나 철저하게 이것을 했느냐. 그건 무얼 보고 아느냐 하면 어쨌든 나온 얘기입니다만 구속 송치되어 와서 4일 만에 구속기소를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건에서 최소한 구속이 되면 1차 구속기간이 10일입니다. 또 한 번 더 하게 되면 20일까지 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을 하면서 뭔가 진실을 더 밝혀내는 작업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대담 프로라도 있으면 한 1시간 동안이라도 들어야 얘기가 좀 더 충분히 나올 것 같은데 오늘 시간이 좀 제한이 돼 있어서 일단 여기까지만 원론적인 입장을 들었습니다.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장으로 계셨던 최환 변호사였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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