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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욕하지 않고선 살 수 없다면…'호모욕쿠스'

입력 2015-03-30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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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2부의 문을 엽니다.

'호모욕쿠스' 오늘(30일) 저희들이 주목한 단어입니다.

지난 주말 최대 이슈는 무엇이었을까요? 사드배치 논란? 아니면 방위사업비리? 글쎄요. 그렇다면 신청자가 폭주했던 안심전환대출? 모두 아니었습니다. 다름 아닌 두 여성 연예인의 욕 대거리 한판 아니었을지요?

실시간 검색어에서 내려올 줄 몰랐던 두 사람의 소동은 먼저 욕을 했다는 여배우의 사과로 한동안 잠잠해졌다가, 당시 상황을 담은 동영상이 유출되면서 2라운드에 돌입했습니다. 누가 먼저 도발했나. 또 누가 더 잘못했나를 두고 수도 없는 기사와 댓글이 이어졌지요.

이 대거리 한 판을 보면서 얼마 전 한 시청자가 보내주신 문자를 떠올렸습니다.

3학년 딸아이의 반장선거 출마에 대해 보내주신 문자였습니다. 이 꼬마 어린이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저희 앵커브리핑을 자주 봐서인지 반장 선거 출마연설을 '오늘 제가 주목한 단어는…' 이렇게 시작했다고 그 어머니께선 대견해하셨습니다. 자, 내용을 볼까요?

"반장 선거에 나온 이라희입니다. 제가 오늘 주목한 단어는 '욕'입니다. 5, 6학년 언니 오빠들을 보면 욕을 정말 많이 합니다. 아마도 3, 4학년 때가 욕을 배우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욕을 쓰지 않도록 노력합시다"

이 이라희 어린이는 결국 당선됐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강해 보이려고' 욕을 쓴다고 말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무한 경쟁에 내몰리는 세상에서의 언어는 더욱 살벌해지고 척박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욕으로 푸는 것에 익숙해졌고, 자신의 지각으로 언어를 통제해야 하는 나이가 되어서도 그 익숙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화제가 된 욕 대거리가 비단 두 여성의 대거리 정도로 끝나 보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두 여성의 욕 대거리에서 우리사회 커뮤니케이션의 축소판을 발견했다면 지나친 걸까요?

'저 맘에 안 드시죠?'와 '너 어디서 반말이니?'라는 말이 주말 사이 유행어처럼 번졌지요. 며칠 사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온 패러디물을 보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머리가 좋다라는 반응도 한 켠에 있었지만, 그래도 뭔가 씁쓸하다는 느낌이 다른 켠에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역지사지가 없는 자기중심적 사고, 권위주의, 비아냥. 이런 것들이 우리가 갖고 있는 부정적 커뮤니케이션의 대표적인 속성들이 아니었던가요? 물론 욕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는 세상입니다. 욕이 애칭이나 농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나 그것이 곡해와 불통의 산물일 때 욕이 갖는 사회학적 의미는 전혀 달라집니다.

호모욕쿠스. 이른바 '욕 학서' 쯤 되는 이런 제목의 책을 발견했습니다. 욕에 대해 고민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욕해야 사는 인간'이라면 제때 제대로 합시다.

호모욕쿠스. 욕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세상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욕하지 않고선 살 수 없는 세상이라면 제때 제대로…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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