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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표 없다 … 학대·폭행 감시 눈감는 정치권

입력 2015-03-05 01:35 수정 2015-03-05 06:34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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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어린이는 표 없다 … 학대·폭행 감시 눈감는 정치권지난 1월 인천에서 연이어 발생한 어린이집 아동 학대는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다. 송도 K 어린이집(사진)에선 아이 머리에 손찌검을 했고 부평에선 주먹으로 때렸다. [중앙포토]

어린이는 표 없다 … 학대·폭행 감시 눈감는 정치권
지난 1월 16일, 정치권은 참 바빴다. 인천 송도의 어린이집에서 한 보육 교사가 김치를 먹지 않았다며 네 살 난 여자아이의 뺨을 휘갈기는 폐쇄회로TV(CCTV) 화면이 공개된 직후여서다. 이날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앞다퉈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회의를 열었다. 당시 여야 할 것 없이 "국민이 충격과 분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새누리당 주호영 정책위의장)거나 "CCTV가 설치돼 있는 곳이 20% 정도인데 법을 바꿔 모든 어린이집에 설치해야 한다"(새정치연합 백재현 정책위의장)고 했다. 각 당 회의의 참석자들은 힘없는 아이들이 겪었을 공포를 내 것으로 느끼며 안타까워했다. 그간 정치권이 되풀이했던 '사건 발생→TF 발족→대책 발표→유야무야'의 도식이 이번에는 달라질 것 같았다.

 그로부터 40여 일 뒤인 지난 3일. 국회는 본회의에서 모든 어린이집에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토록 하는 내용의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폐기 처분했다. 재석 171명 중 찬성은 84표에 불과했다. 반대(42표)와 기권(45표)을 합친 숫자보다 적었다. 야당에서 반대·기권(61명)이 많았지만 새누리당에서도 27명이 법안 폐기에 동조했다. 사실상 여야의 합작품이었던 셈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40여 일 만에 어린이집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고 의원들이 판단해서일까.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의 새누리당 의원은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얼마 전 지역의 어린이집 원장 몇몇을 만났다. 이들은 노골적으로 'CCTV 설치를 의무화하면 반(反)정부 세력이 될 수밖에 없다. 내년이 선거죠?'라고 하더라. 부모들의 왕래가 잦은 어린이집은 각종 입소문의 진원지다. 그러잖아도 내년 선거가 쉽지 않을 텐데 밉보이면 여러모로 골치 아프다."

 어린이집 원장들의 행동력은 정평이 나 있다. 2013년 4월엔 새누리당 이운룡(비례대표) 의원이 보조금 유용 등 어린이집 불법행위에 대한 단속의 실효성을 높이려 감독공무원에게 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개정안을 제출했다가 철회한 일이 있다. 개정안에 서명한 지역구 의원들의 사무실에 항의 전화가 빗발쳤고 해당 의원들이 자기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 의원 사무실의 여직원은 "밤 길 조심하라"는 협박까지 당했다고 한다.

 전국의 어린이집 원장 수는 4만2000여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에겐 표가 있고 조직이 있다. 전국의 0~4세 아이는 220만 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 어린아이들에겐 표가 없다. 분노하는 부모들은 조직화돼 있지 않다. 국회의원들에겐 조직화된 4만2000명의 표가 더 무서웠던 셈이다.

 새누리당 어린이안전 TF 간사였던 신의진 의원은 4일 "CCTV 설치는 최선은 아닐지언정 최소한의 물리적 안전장치다. 법안 통과가 무산된 것에 책임을 지겠다"며 간사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전날 본회의에서 CCTV 의무화 찬성 토론에 나서려 했지만 당 지도부가 "그럴 필요까지 있겠느냐"며 만류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4일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영유아보육법 통과를 기대하던 많은 학부모를 실망시켜 죄송스럽다"며 "4월 임시국회에서 의견 등을 잘 수렴해 재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어린이는 표 없다 … 학대·폭행 감시 눈감는 정치권권호
정치국제부문 기자
 정치권이 표 때문에 갈팡질팡하는 사이 어린이집 아동 학대는 나날이 늘고 있다. 당국에 적발된 경우만 2009년 69건에서 2013년엔 232건으로 3.5배 늘었다.

권호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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