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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음력설의 역사…설날이라 부르지도 못해

입력 2015-02-1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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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설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지금은 음력설 하면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최대 명절이죠. 그런데 이런 설날이 과거에는 공휴일도 아니었고 심지어 설날이라고 불리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파란만장했던 설날 변천사, 윤정식 기자가 정리해드립니다.


[기자]

한국 전쟁 휴전 3년만인 1956년 2월.

서울 세종로 한가운데서 펼쳐진 설맞이 제1회 전국 연날리기 대회입니다.

한복에 중절모를 쓴 남자가 능숙하게 연을 날리는 모습에 잠시나마 전쟁의 상흔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설 아침.

조국을 향해 거수경례로 세배를 대신한 파병 장병들에게도 설은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1968년 대한뉴스 : 세배를 마친 장병들은 고향의 맛이 담긴 떡국을 먹으면서 보람찬 새해를 다짐했습니다.]

1976년에는 설맞이 조총련계 재일동포 귀성단이 고국땅을 밟았고 78년에는 강원도 철원 망향대에서 통일기원대제가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역사의 한 페이지였던 음력설이지만 공휴일 지정은 물론 당시에는 제대로 된 이름도 없었습니다.

1896년 을미개혁을 기점으로 공식 설날은 양력 1월 1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일제도 한민족의 얼을 끊겠다며 음력설을 막았고, 해방 이후 정부도 이중과세를 이유로 양력설만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음력설을 지켜오던 터.

결국 정부는 1985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설 당일을 휴일로 지정했고 4년 뒤에는 이름도 설날로 되돌렸습니다

[1989년 대한뉴스 : 양력 설에 밀려 구정, 또는 민속의날로 불려오던 설날이 92년만에 그 이름을 되찾았습니다.]

격동의 역사 속에 때론 탄압받고, 심지어 이름마저 빼앗겼던 설.

설날의 변천사 속엔 민족 수난의 역사와 설에 대한 국민의 애정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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