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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실적 경쟁 때문에"…119 '부정출발' 꼼수까지

입력 2015-01-08 21:58 수정 2015-01-08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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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골든타임을 조작하는 건 어찌 됐든 소방 공무원들의 일탈인 셈인데요. 이유는 실적 경쟁 때문이었습니다. 정확하게는 실적 경쟁을 시키기 때문이었죠. 시간을 조작하기 위해 이중출동이라는 꼼수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골든타임을 지키기위한 경쟁은 긍정적으로 볼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만, 이런 식이라면 얘기는 다른 것 같습니다. 더욱이 무작정 시간만 줄이자는 식으로 흐르다 보니 시민들에게도 도리어 불편이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박소연 기자입니다.

[기자]

서울의 한 소방서에 화재 신고가 접수됩니다.

문이 열리고 소방차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달려가지 않고 수m 앞에서 멈춥니다.

대원들은 뒤늦게 나와 차량에 탑승합니다.

또 다른 소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차량만 먼저 문을 빠져나와 멈추고 대원들이 그제야 나와 차에 탑니다.

2중 출동입니다.

차고 탈출 시간에 대한 평가가 이뤄진 뒤 생긴 진풍경입니다.

평가는 골든타임 실현을 위해 차고를 벗어나는 시간을 줄이자는 취지로 도입됐습니다.

차량에 설치된 GPS가 차고를 나오는 것만 감지해 출동 시간을 재다 보니 이 같은 편법이 횡행하는 겁니다.

[119대원 : 원칙은 골든타임, 현장 5분 도착하려고 하는 건데 이건 누가 먼저 차를 빼느냐, 그러니까 이건 속된 말로 출동이 먼저인지 평가 때문에 먼저인지.]

일부 소방서에서는 매연이 가득한 차고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대기하라고 하기까지 했습니다.

원래 막히는 곳과 동선 등을 예상하고 움직여야 하는데 서두르다 보니 오히려 길을 잘못 들어 늦기도 합니다.

[119대원 : 운전원이 지도를 보고 소방불통지역이라든가 좁은 지역이나, 주차지역이면 그걸 피해서 생각을 해보고 가야 하는데 이거는 무조건.]

[119대원 : 자칫 잘못해서 방향을 잘못 트는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5분도 더 지체될 수 있는 상황이고.]

골든타임 실현을 위한 정책이 현장에서 혼란을 부추겨 시민 피해로까지 이어지는 겁니다.

골든타임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공약사항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지난해 5월 영등포소방서 앞 : 이 시기만큼 우리가 안전에 대한 경각심과 또 안전에 대한 좋은 정책을 마련해야 할 시기는 또 일찍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서울소방재난본부는 이에 따라 모든 소방활동에 골든타임을 연계시키고 별도의 태스크포스팀까지 꾸려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차고 탈출 시간 줄이기는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사업입니다.

매달 소방서 순위를 매기고 결과를 공개하는데 이 결과는 서장 인사평가에 반영됩니다.

JTBC가 입수한 지난달 서울 시내 119안전센터 차고 탈출시간 측정표입니다.

서울 시내 23개 소방서와 138개 센터를 탈출 시간에 따라 줄 세웠습니다.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고 불과 몇 초 차이로 수십 등이 왔다갔다 합니다.

[119대원 : 이게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건데, 끝까지 올라왔거든요. 1, 2초 차이 나는데. 더 줄일 수는 없는 거고요. 이걸 서 순위를 매겨서 직원들 압박 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119대원 : 지금 순위를 매겨. 공교롭게 우리가 1등을 했어요. 취지가 그런 취지로 해서 순위를 매길 건 아닌데 관공서다 보니까.]

하지만 순위가 하위권이면 바로 호출당합니다.

서울 시내 한 소방서가 관내 안전센터에 보낸 공문입니다.

매달 하위권 2개 센터장은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발표하게 돼 있습니다.

[119대원 : 관서장이 거기에 민감하거든요. 자기 근무평가라든가 진급이라든가 본부에서 보는 건 오직 결과만 보니까 무조건 밑에 직원들을 쪼는 거죠.]

실적 압박은 소방관 부상으로도 이어집니다.

2층 대기실서 뛰어내려오다 다치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119대원 : 빨리 계단에서 내려오다가 발목 골절을 당하는데 일명 접질린다고 하죠. 그런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출동을 서두르다 다쳐도 공상 신청은 쉽지 않습니다.

부상자가 많으면 센터, 소방서 평가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119대원 : 모든 직원들이 다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저희들이 어떻게 항의할 수 있는 부분도 없고 항상 하는 말이 안전하게 빨리, 굉장히 말이 무서운 게…]

일선 소방관들은 자괴감을 토로합니다.

[119대원 : 국민의 안전, 생명과 재산도 중요하지만 최일선에 있는 소방관의 안전이 전제돼야지 국민의 안전도 지켜 드리는 거죠.]

[119대원 :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관이기 때문에 늦게 나가라고 하더라도 저희는 늦게 나갈 수 없는 직업인데, 점점 1초, 1초를 단축시키면서…]

미국의 경우 소방관의 안전이 1순위입니다.

혼자서 수천 명의 생명을 담당하고 있는 소방관이 다칠 경우 오히려 더 많은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 뛰는 것을 금지하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은 아무리 선진화된 제도라고 할지라도 소방관의 안전이 배제됐다면 무의미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건/오산 미 공군기지 선임 소방검열관 : 골든타임 목표제 같은 경우는 앞뒤가 뒤바뀌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이 어떤 것을 목표로 한 평가인가, 그런 평가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서울소방재난본부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라는 입장입니다.

[서울소방본부 관계자 : 개선할 사항 개선하고 그러다 보니까 직원들이 힘들고 그러다 보니까 그런 얘기들이 많이 나오는 모양인데 이건 제도적으로 어떤 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요. 해가는 과정에서 아픔이죠.]

계기판 조작까지 이어지고 있는 비정상적인 골든타임 경쟁.

소방대원에게는 자괴심과 부상만 남기고 있지만 그들의 도움을 기다리는 시민들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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