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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신중하지 못한 KBL, 멍든 박승일의 가슴

입력 2014-11-26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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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신중하지 못한 KBL, 멍든 박승일의 가슴


지난해 8월, 한국농구연맹(KBL)은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박승일 전 농구 코치를 '명예 직원'으로 위촉했습니다.

KBL은 프로-아마 농구최강전 개막에 앞서 박 코치를 농구장에 불러 성대한 위촉식을 열었고, 한선교 전 총재는 박 코치의 목에 KBL 사원증도 걸어줬습니다.

박 코치는 병 때문에 거동이 쉽지 않습니다. 침대를 차에 실어 이동해야하는데, 202cm의 큰 키 때문에 박 코치의 침대를 실을 수 있는 차량은 국내에 1대 뿐입니다. 더군다나 이 날은 그마저 다른 사람이 이용해, 박 코치는 구급차에 앉아 경기장에 갔습니다. 박 코치가 이렇게 어려운 이동을 마다하지 않은 건 다시 농구계에 복귀한다는, '농구계가 나를 버리지 않았다'는 커다란 설렘과 벅찬 감동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지난 7월, 박 코치에게 지급되던 월급 50만원이 돌연 끊겼습니다. 아무 설명도 없이. 건강 검진 등 KBL 직원이 받는 복지 혜택도 함께 중단됐습니다.

그 무렵, 전세계적으로 루게릭병 환우를 돕는 '아이스버킷 챌린지’ 열풍이 거셌는데요. 박 코치도 기꺼이 얼음 대신 눈을 뒤집어쓰며 루게릭병 알리기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KBL은 이 때부터 루게릭병과 싸우던 박 코치를 외면하며 찬물을 끼얹은 겁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지만 KBL에서는 박 코치에게 월급 지급 중단에 대한 어떤 통보도 하지 않았습니다.

참고 참던 박 코치는, 최근 지인에게 참담한 심경을 담은 문자를 보냈습니다. 어렵게, 눈꺼풀의 움직임으로 적은 글은 이렇습니다.

"루게릭병 환자 중 나와 같은 중환자들은 살아 있는 시체라고 말하고 싶다. 말도 하지 못하고 움직일 수도 없으며 숨도 기계로 쉰다. 이러니 반시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중병에 걸린 환자를 두고 장난을 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에게 그 돈은 돈 이상의 가치가 있다. 난 아직도 내가 왜 해고를 당한지 모른다. 이해를 할 수 없다. 아무 소리도 못하고 따라야 하는 건지 장애인도 사람이라고 외쳐야 하는 건지 혼란스럽다."

배신감이 들었을 겁니다. KBL에 이용만 당했다는 생각도 했을 겁니다. 정말 기쁘게 받아들었던 사원증이기에, 상실감이 컸고 박 코치는 1시간 동안이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월급이 끊기기 시작한 건, 공교롭게도 한선교 전임 총재가 물러나고 김영기 현 총재가 취임한 즈음입니다. 수뇌부가 바뀌면서 월급을 끊었다고 오해받기 충분하죠. KBL은 "연맹의 회계연도가 7월에 시작되는데, 내부적으로 사업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지급이 멈춘 것 같다”면서도 "단건으로만 처리할 수 없는 사안이라 사업 조정이 끝나야 일이 해결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단순 실수도 아니었던 겁니다.

글쎄요. 사업 조정 중이지만, 재직중인 KBL 사원들은 그 몇개월간 당연히 월급을 받았겠죠. 연간 약 200억원의 예산을 주무르는 KBL이 ‘명예’직원인 박 코치의 월급 50만원만 끊었다는 부분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해고’가 아니었다면 월급 지급이 중단된 이유를 박 코치측에 당연히 설명해야 했고요.

박 코치는 환자입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아무 이유도 통보도 없이 해고당한 기분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요. 투병중인 선수이기에 KBL은 명예직원 위촉도, 철회도 아주 신중하게 결정했어야 합니다.

박 코치의 누나인 박성자 승일상임재단 이사는 조심스러워했습니다. "KBL 전체의 잘못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 말 없이 월급이 끊긴 건 서운한 부분이지만, 월급이라서가 아니라 그 의미 때문이다. 직원의 실수일 수도 있고, 며칠 내로 KBL에서 전화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일 뿐 아니라 루게릭 병 환자라서, 살아있는 사람 취급을 못 받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다른 것보다 그 부분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위촉할 때는 좋은 일로 시작했을텐데, 결국 신중하지 못한 일처리는 박 코치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KBL이 박 코치를 마케팅에 이용한 것이 정말 아니었다면, 하루 속히 해명을 하고, 박 코치의 마음을 어루만져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진=중앙일보 포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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