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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전 그날…불멸의 파이터 된 '비운의 복서' 김득구

입력 2014-11-18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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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32년 전, 그러니까 1982년은 우리 스포츠사에 여러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신군부의 우민화 전략이란 평가도 있지만, 프로야구가 출범했고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와 한대화의 끝내기 홈런,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도 있었죠. 그 해 한 남자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을 울렸습니다.

비운의 복서, 김득구 선수를 오광춘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기자]

[김윤구/당시 트레이너 : 작아요. 키는 작으면서 야무지지. 독해. 아주 깡이 있어.]

[당시 중계캐스터 : 김득구의 펀치는 매우 빠릅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솔직히 매우 인상적입니다.]

[맨시니 : 김득구는 혼을 다해 싸웠습니다. 내 생애 가장 힘든 경기였습니다.]

맨시니의 사나운 펀치를 피하지 않습니다.

뒤로 물러서지도 않고 잔뜩 웅크린 채 머리부터 들이밀며 다가선 김득구. 10라운드 이후엔 한계와 맞섭니다.

주저없이 달려드는 기세는 그대로였지만 마음과 달리 때론 스텝이 엉켰고,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13라운드까지 버텼습니다.

[김윤구/당시 김득구 트레이너 : 마지막 14라운드, 이제 2라운드밖에 안 남았으니까 여기서 최선, 힘을 다써라. "알았습니다. 네" 머리만 끄덕하고 나간 거야.]

그리고 14라운드 19초.

[김윤구/당시 김득구 트레이너 : (14라운드 시작과 함께) 물 바스켓 가지고 내려와 돌아서는데, 내려오는 순간에 '와' 소리가 나더라고.]

김득구의 인생은 거기서 거기서 멈춰 섰습니다.

링에 초라하게 드러눕진 않았습니다.

로프를 붙잡고 힘겹게 일어섰지만 그게 끝이었습니다.

[김윤구/당시 김득구 트레이너 : 정신이 안 돌아오는 거예요. 눈을 지그시 감고 있고, 그 고통, 순간적인 고통을 못 참아서 악을 쓰더라고요. 정신 차리라고, 득구야 득구야. 막 등을 치면서…. 그것이 전부였어요.]

승자의 환호, 패자의 침묵. 희비는 잠깐이었고, 두 사람은 비운과 불운의 아이콘으로 남았습니다.

[레이 맨시니/당시 라이트급 세계챔피언(전화 인터뷰) : 파이터들 사이에선 때론 말이 필요 없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이해합니다. 다음 생에서 김득구를 본다면 말없이 서로 포옹할 겁니다. 말이 필요 없어요. 마음이 통하니까.]

이후 복싱은 사람을 죽이는 스포츠라는 오명 속에 15라운드 경기가 12라운드로 축소됐고 뇌 손상에 치명적이라는 이유로 아마추어 복싱에선 헤드기어가 도입됐습니다.

맨주먹으로 챔피언이란 꿈을 좇은 헝그리복서의 죽음. 복싱의 역사만 바꾼 건 아닙니다.

[김정효 박사/체육철학 전공 : 김득구의 싸우는 모습을 통해 우리 삶을 거기에 투영한다는 말이죠. 우리가 오로지 성장 위주로 달려왔던 삶에 하나의 성찰의 계기를 줬다고 봅니다.]

꿈과 희망을 위해 두 주먹을 내뻗었던 김득구가 떠난 지 어느덧 32년. 지금 우리 마음속에 그가 좇았던 꿈과 희망, 아니면 비슷한 그 무엇이라도 남아있기는 한 걸까요.

김득구는 아직도 우리들 뇌리에 생생한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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