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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90세 배첩장' 울린 문화재 입찰제도

입력 2014-10-21 21:48 수정 2014-10-21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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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JTBC는 그동안 부실한 문화재 관리와 복원 실태를 집중적으로 보도해 드렸습니다. 그때마다 문화재청에선 수정을 하겠다, 공사를 하겠다, 이런 입장도 밝혀오고는 했죠. 그런데 취재를 하면서 문화재 복원은 누가 하는 것이며, 왜 잡음이 끊이지 않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엔 이유가 있었습니다. 문화재 복원에 정작 해당 기술을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인간문화재가 아닌 다른 기술자들이 투입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정아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글씨나 그림에 종이, 비단 등을 붙여 족자와 액자·병풍 등을 만드는 전통 기법을 배첩이라고 합니다.

90살 김표영 장인은 이 기술을 인정받아 중요무형문화재 102호로 지정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배첩장이었습니다.

지난달 24일 노환으로 숨진 김 배첩장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 JTBC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고 김표영/중요무형문화재 102호 : 엄청나게 많잖아, 이렇게. 여기 (경복궁) 근정전에 있는 일월오악도 내가 수리해준 거야. 공민왕 노국공주 초상화도.]

그런데 10년 전쯤, 갑자기 일거리가 뚝 끊겼다고 합니다.

[고 김표영/중요무형문화재 102호 : 내가 근 10여 년을 아무것도 못 하고 문화재 하나도 접하지 못하고 말이야, 수리도 안 하고.]

그 사이 무형 문화재가 아닌 다른 기술자들이 문화재 보수를 맡았다는 겁니다.

4대째 '전통 가마솥'을 만들어 온 안성 주물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지금은 아버지 김종훈 주물장과 아들 김성태씨가 가업을 잇고 있습니다.

전통 주물 기법을 인정받아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기술이 있는데도 문화재 수리나 복원에 참여하지 못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김성태/주물장 전수자 : 문화재 복원하는 데 견적서 제출해달라 그러면 견적서 내는 것 자체도 싫어할 정도예요. 견적서 내면 뭐 하냐.]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전문가들은 1996년부터 시작된 '입찰 제도'가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장인들이 문화재를 보수하려면 조달청 홈페이지에 등록한 뒤 '경쟁 입찰'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가격이 평가 항목의 80%를 차지합니다.

결국 가격을 낮게 써내면 입찰받을 가능성이 커지는 겁니다.

예산을 줄일 수 있을진 몰라도, 문화재 수리를 값으로만 따져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김성태/주물장 전수자 : 만드는 과정이나 수명, 정통성을 무시한 채 제품의 가격만 추구하기 때문에 저희는 입찰제에 응하지 않고 있어요.]

일감을 따기 위해 가격을 무리하게 낮추다 보면 부실 복원이 뒤따를 가능성도 그만큼 커집니다.

[김종훈/경기도무형문화재 45호 : 중국산을 싼 맛에 사서 쓰고들 그러는데, 공사하는 사람들이 그런 상식 가지고 하겠어. 그저 값싼 것 가져다 해놓고 복원했다고 하지.]

전문가들은 입찰제를 원점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황평우 관장/은평역사한옥박물관 : 장인·예술가 정신에 맞게 대우해야 하지만 영리목적의 건축공사 입찰로 들어가기 때문에 숭례문 같은 비리가 계속 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열흘 전까지도 문화재 작업을 하고 싶어 했던 김표영 배첩장은 끝까지 쓴소리를 남겼습니다.

[고 김표영/중요무형문화재 102호 : 어느 나라에서 제 나라 귀중한 문화재를 입찰을 해서 수리하느냔 말이야, 그거는 잘못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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