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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왜 선동열 감독 재계약에 분노하나

입력 2014-10-20 19:41 수정 2014-10-2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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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왜 선동열 감독 재계약에 분노하나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재계약한 감독이 이렇게 뭇매를 맞는 경우는 처음 봅니다. 2년 재계약한 선동열 KIA 감독 얘기입니다. 보통 재계약하면 축하 메시지가 쏟아지는데, 야구 '민심'은 되레 매섭습니다. 여기서 민심이라고 할 때의 '민'은 열성적인 KIA 팬들과 함께 프로야구를 유심히 지켜봤던 일반 야구팬들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야구 민심은 왜 '레전드' 선감독에게 등을 돌렸을까요.

KIA의 '표면적인' 재계약 취지는 좋습니다. 구단은 '장기적인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당장의 성적으로 사령탑의 운명을 결정하던 기존의 프로스포츠 감독 계약 논리를 뒤집은 것입니다. 이것만 놓고 보면 박수치며 환영해야 됩니다.(KIA가 이같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로는 여러가지 해석이 뒤따릅니다. 선감독의 대안이 마땅치 않고, 새로운 감독을 수혈했을 때 감수해야 할 시행착오 등 기회비용을 피하기 위한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접근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선감독을 대체할 감독 후보자군이 많지 않은 현실도 작용했지요. 무엇보다 구단주의 재신임이 재계약의 가장 현실적인 이유로 꼽힙니다.)

그렇다해도 팬들이 분노하는 이유를 KIA는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국민영웅 선 감독에게 쏟아지는 비난이, 단순히 성적에 일희일비하는 팬들의 '감정 과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팬들은 선감독에게 주어진 '레전드 프리미엄'을 이해하지만, 재계약 과정에서 적용된 관대한 잣대는 불편하게 느낍니다. 프로야구 역사에서 3년간 하위권을 맴돌고도 재계약된 사례는 선 감독이 유일합니다. 전임 조범현 감독을 볼까요.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궜지만 2년 뒤 4강에 들고도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고 감독직을 그만뒀습니다.

물론 감독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잣대가 오로지 성적인 것 만은 아닙니다. KIA는 2012년 5위, 2013년 8위, 2014년 8위로 저조한 성적을 냈습니다. 꾸준히 팀의 미래가치가 높아졌다면, 그래도 팬들이 선감독에게 이렇게까지 가혹했을까요.

선 감독은 지난 3년간 KIA를 가능성 있는 팀으로 발전시키는데 미흡했습니다. KIA에선 '선동열 야구'를 찾을 수 없었고 선감독은 장기적인 비전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선감독 취임과 함께 또 한 명의 '레전드' 이종범이 은퇴한 뒤 대대적인 팀 개편이 있을 거라고 예상됐지만,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전력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리빌딩은 없었습니다. 선 감독처럼 훌륭한 투수가 나올 수 있는 선수 육성 정책도 없었고, 오히려 기존 선수들은 크고 작은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하며 팀 전력엔 언제나 누수가 발생했습니다.

선동열을 향한 쓴소리 속엔, KIA를 향해 뱉고 싶은 분노와 실망도 포함돼 있습니다. 해태 시절을 기억하는 팬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선동열이 KIA 지휘봉을 잡으면 해태 시절의 향수를 되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결과는 이전보다 더 참담했으니 실망을 표출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던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와 전국대회를 호령하던 '유망주 산실' 광주일고의 명맥을 이어갈 줄 알았는데, '맹물야구'가 되어버린 호랑이 군단에 팬들은 분노하는 것입니다.

선동열 감독에겐 늘 성공이 뒤따랐습니다. 선수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삼성에서 감독이 된 뒤 한국시리즈를 두 번이나 제패했습니다. 그렇게 탄탄대로만 달려왔던 레전드에게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팬들이 분노한다고 해서 KIA가 감독 재계약을 번복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2년, 선동열 감독은 가시밭길을 걸어야 합니다. 도전의 기회지만, 부담의 멍에가 같이 할 겁니다.

지금의 일회성 굴욕이 영원한 굴욕이 되지 않으려면, 선동열 감독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더 이상 '최고''1등' 프레임에 갇혀 있지 말고, 앞으로 KIA 야구의 분명한 방향을 정하고 이를 위해 매진해야 합니다.

KIA도 감독에게 구단이 원하는 목표를 분명하게 얘기해야 합니다. 선감독 혼자 성적과 팀 리빌딩 사이에서 갈짓자를 그린다면 또다시 2년이 지나면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포츠문화부 오광춘 기자 gyeol@joongang.co.kr
사진 = 일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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