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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태지 "소격동, 예쁜 동네의 무서웠던 시절 표현"

입력 2014-10-20 22:10 수정 2016-03-04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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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20일) 이분과의 인터뷰를 굉장히 많은 분들이 기대하시고, 또 기다리셨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어떤 화려한 수식어보다, 그냥 이름 석 자, <서.태.지>로 소개해 드리는 게 이분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 싶은데요. 5년 만에 9집으로 돌아온 서태지 씨. 생방송으로 스튜디오에 나와 주셨습니다. 뉴스에서 생방송으로 인터뷰하는 건 처음이실 것 같은데, 모시게 됐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서태지 : 안녕하세요. 영광입니다.]

[앵커]

저도 영광입니다.

[서태지 : 감사합니다.]

[앵커]

20대 때 은퇴하셨잖아요.

[서태지 : 그렇죠.]

[앵커]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안 변하신 것 같습니다.

[서태지 : 그건 제가 여쭤보고 싶었던 말인데요.]

[앵커]

그런가요?

[서태지 : 동안을 어떻게 그렇게 유지하시는지 비법을 좀 알 수 있을까요.]

[앵커]

인터뷰는 오늘 제가 하기로 돼 있습니다.

[서태지 : 한 번만 제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저희 팬들이 너무 궁금해했었어요. 오늘 만남 중에 제일 궁금했던 부분이었어요.]

[앵커]

별로 그런 건 없습니다. 특별한 방법은 없습니다. 아마 서태지 씨께서도 마찬가지이실 것 같습니다.

[서태지 : 맞습니다.]

[앵커]

제가 어떠한 수식어도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아까 임진모 씨가 잠깐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혁명적 존재였다. 혹시 동의하십니까?

[서태지 : 모르겠어요. 저한테는 과찬의 말씀이신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음악 하는 사람이고 음악을 통해서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이야깃거리들을 많이 만드는 게 제 일인데 혁명까지는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앵커]

그런가요. 생방송으로 인터뷰하시는 게 처음이라고 제가 들었는데 맞습니까? 그것도 뉴스에서는 처음이신 것 같고.

[서태지 : 뉴스는 처음이고요. 서태지와 아이들 때 이후로는 생방송을 많이 안 했던 것 같기는 해요.]

[앵커]

스태프진들이 조금 걱정을 하더군요. 혹시 말이 짧으시면 어떨까 하는 걱정들을 하던데 지금 첫 질문과 답변을 해 봤더니 전혀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서태지 : 아니에요. 저 인터뷰하면 '마가 뜬다'고 하잖아요. 그런 게 많을 수도 있으니까 이해해 주세요.]

[앵커]

사이가 좀 벌어진다. 하여간 텀이 좀 생긴다는 그런 말씀이죠?

[서태지 : 그렇죠. 안 해 봐서, 잘.]

[앵커]

그렇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오늘 9집 앨범이 발매됐는데요. 개인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으신 끝에 9집 앨범이 나와서, 5년 만에. 느낌이 굉장히 좀 다르실 것 같기는 합니다. 그리고 앨범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평가 분석들이 많이 이미 따르고 있고. 본인은 본인의 앨범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서태지 : 저는 일단 제가 마음에 드는 음악이 나왔기 때문에 음반을 발표한 거죠. 그런데 그 뒤의 평가는 각자 여러분들이 개개인들이 해 주시는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당장 어떤 결과를 바라지는 않고요. 앞으로 정말 10년 뒤까지도 좋은 음악으로 남았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에요.]

[앵커]

이 앨범은 지난 5년 동안 준비하지는 않으셨을 테고.

[서태지 : 사실상 거의 5년 동안 준비했다고 봐도 될 것 같아요. 물론 중간에 휴식기도 있고 구상하는 시기도 있고 녹음도 있고 했지만 그 전체가 다 9집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죠.]

[앵커]

제일 먼저 완성된 곡은 뭔가요?

[서태지 : 성탄절의 기적이라는 노래가 있는데요.]

[앵커]

마지막에 들어가 있는 거요?

[서태지 : 들어보셨나요?]

[앵커]

네.

[서태지 : 그 노래는 사실은 음반 수록하려고 만든 노래는 아니고요. 배 속에 있던 저희 아가를 위해서 약간 명상, 태교음악 같은 식으로 만들어놓은 음악이라서요. 제일 먼저 노래까지 완성해서 많이 들려줬어요.]

[앵커]

노래까지 들어봤더니 잔잔한 음악이더군요.

[서태지 : 그렇죠. 졸린 음악이에요. 꿈꾸게 할 수 있는 그런 음악 같은 거예요.]

[앵커]

그리고 지난주 토요일에 공연을 했습니다. 한 2만 5000명의 팬들이 모였다고 들었습니다. 본인이 생각하시는 거보다 적게 왔습니까, 많이 왔습니까?

[서태지 : 많이 오셨어요.]

[앵커]

그런가요?

[서태지 : 그럼요. 실제로 저희가…]

[앵커]

겸손의 말씀을 하시는 건 아닌가요?

[서태지 : 아니죠. 실제로 8집 할 때만 해도 한 1만 5000, 2만 정도가 맥시멈이기는 했었는데 저희는 이번에 더 조금 봤어요. 그 이하가 되지 않을까 했는데 그래서 처음에 팬들 보고 너무 뭉클했었어요. 그 자리에 계속 지켜봐주고 있는 팬들이 있구나라는 안도의 한숨도 쉬고 그랬었죠.]

[앵커]

글쎄요. 그럼 지난번보다 더 많이 오셨다는 얘기인데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서태지 : 제 생각에는 아이유 씨 덕이 아니었나. 아이유 씨가 또 10대 팬들한테 어필을 많이 해 줘서, 음악을. 그런 신생팬들, 젊은 팬들도 많이 보였다고 하고요. 그 외에는 또 남자팬들도 많이 기다려줬다고 하고 특히 여자팬들은 제가 결혼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의리를 지켰다는 부분이 저는 너무 그냥 벅차네요.]

[앵커]

제가 여기 방송 들어오기 전에 우리 복도에 굉장히 많은 팬들이 와계셨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는지 모르겠는데…만나보셨나요?

[서태지 : 네. 잠깐 인사했었어요.]

[앵커]

아주 그냥 열정적인 팬들이시더군요.

[서태지 : 그렇죠. 떡도 이렇게 만들어주시고.]

[앵커]

여기 받았습니다. 아이유 씨가 와서, 겸손의 말씀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아무튼 또 1위도 아이유 씨가 해서, 아이유 씨 버전으로. 좀 서운한 측면은 없었습니까?

[서태지 : 서운할 리가요. 어쨌든 제가 만든 노래고, 아이유 씨가 노래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저는 사실 이번에 아이유 씨를 이 소격동이라는 노래랑 콜라보레이션 하는 걸 예전부터 기획을 오랫동안 했었어요. 녹음도 사실 몇 달 전부터 했었고.]

[앵커]

그러니까 애초부터 아이유 씨하고 하겠다고 생각을 하시고 만든 곡인가요?

[서태지 : 아니요. 곡은 그냥 제 노래로 만들었는데요. 제 노래 자체가 약간 남자가 부르는 것보다는 여자가 불렀을 때 더 어울리는 그런 성향이 있었지만.]

[앵커]

좀 그렇죠.

[서태지 : 이 노래는 특히 그랬던 것 같아요. 되게 예쁘고 아름다운 추억을 여자 소녀의 입장에서 불렀을 때 어떤 느낌이 날까라는 생각을 했을 때 아이유 씨가 떠올랐고 아이유 씨가 아니었으면 아마 이 프로젝트는 누구도 못 했을 것 같아요. 실제로 그게 사실이에요.]

[앵커]

일부에서는 그렇게도 얘기하더군요. 그러니까 좀 얹혀갔다, 이런 표현도 하던데. 아이유 씨한테 얹혀갔다.

[서태지 : 네, 업혀갔죠. 맞는 표현인 것 같아요.]

[앵커]

그렇습니까?

[서태지 : 네. 큰 도움 받고 지금도 받고 있어요.]

[앵커]

기자회견에서, 오늘 하셨잖아요.

[서태지 : 네, 조금 전에 하고 왔습니다.]

[앵커]

거기에 서태지의 시대는 90년대에 끝났다. 명백한 사실이다. 2000년대 들어서 컴백했지만 그때부터 대중적인 음악은 분명히 아니었고 매니악한 음악이었다. 이거는 솔직한 심정이신 것 같습니다.

[서태지 : 그렇죠.]

[앵커]

이런 얘기를 할 때는 뭔가 좀 씁쓸하지 않으신가요?

[서태지 : 씁쓸한 시간은 오히려 되게 오래전에 지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렸어요. 90년대부터 벌써 20여 년이 흘렀어요.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편안한 마음으로 편하게 음악하고 싶고 저보다 또 특히 저를 지지해 주는 팬들도 그런 기분들을 많이 느꼈던 것 같은데요, 아주 천천히. 그 말씀을 드리면 아까 90's 아이콘이라는 노래를 제가 만들어서 공연장에서 불렀었는데 거기에도 고스란히 그런 얘기들이 담겨 있어요. 그러니까 저희가 3, 40대가 되면서 어떤 주류에서 자연스럽게 밀려나고 비주류가 돼가고 이런 부분들을, 이 과정들을 스스로 이해하고 인정하고 한다면 좋지 않을까. 저도 그런 과정을 통해서 또 9집을 완성시켰고요. 그래서 자신 있게 이제 갖고 나온 거죠.]

[앵커]

그렇군요.

[서태지 :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모두.]

[앵커]

그 공연을 1시간 반 정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대개 한 2시간 이상, 3시간까지도 가지 않나요? 그런데 좀 짧게 한 건가요?

[서태지 : 보통 전국투어 같은 거 할 때는 2시간을 넘겨하는 게 보통인데요. 컴백쇼는 약간 쇼케이스 느낌으로 해서 그렇게 길게 하지는 않아요.]

[앵커]

그래도 곡은 18곡이 들어갔다고 하던데.

[서태지 : 곡은 정말 많이 했는데 제가 처음, 5년 만에 처음 하는 공연이라서. 제가 약간 쑥스러움을 타요. 팬들한테 쑥스러웠나 봐요. 멘트를 많이 준비했는데 멘트를 많이 못 하고 그냥 곡을 막 내리 달렸어요.]

[앵커]

계속 그냥 노래만 나간거군요?

[서태지 : 원래는 밴드 소개도 하고 2층에 있는 팬들한테 말도 걸고.]

[앵커]

밴드 소개도 안 하셨나요?

[서태지 : 못 했어요.]

[앵커]

서운했겠네요.

[서태지 : 특히 새로 들어온 키보드는 처음 인사하는 건데, 그것도 놓치고 그랬던 것 같아요. 노래만 열심히 달렸어요. 그래도 신나게 해서 마지막까지는 즐겁게 놀았어요.]

[앵커]

그런데 뭐 사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이렇게 여러 가지 얘기도 좀 해 주고 그런 게 좋은 경우도 있는데 너무 중간에 사설이 길어지면 더 좀 그렇거든요.

[서태지 : 예리하신데요? 맞습니다.]

[앵커]

저는 그런 관객이거든요.

[서태지 : 그러세요?]

[앵커]

중간에 사설이 길어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관객이고 또 가수의 입장에서 왜 재미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관객들을 좀 못살게 구는 경우도 있잖아요. 이렇게 일어나라 그러고 노래 부르라고 그러고 따라서 하라고 그러고 저는 그런 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서태지 : 그러셨어요?]

[앵커]

이번 공연은 그런 게 전혀 없었던 모양이네요?

[서태지 : 조금씩은 있었죠. 계속 있었는데 조금 더 공감하고 교류할 수 있었던 부분들을 조금 놓친 부분이 있어요.]

[앵커]

제가 관객으로서는 별로 그렇게 좋은 관객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서태지 : 첫번째는 좋았는데 두번째에 일어서라는 걸 싫어하신다면 좋은 관객은 아니죠. 그러면 제가 꼭 일으킬 수 있어요.

[앵커]

하긴, 가수 입장에서는 굉장히 좀 열정적으로 호응하는 게 좋을 테니까요.

[서태지 : 그럼요. 특히 뒤에 좌석에 앉아 계신 분들은 약간 연로하시거나 그런 분들도 있는데 그런 분들이 일어날수록…]

[앵커]

저를 얘기하시는 건가요?

[서태지 : 아니요, 꼭 그런 건 아니고요. 아마 좌석에서 앉아서 보실 것 같기도 한데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꼭 일어나셔서 같이 즐기시면서 보면은 2배 정도 느낌이 달라요.]

[앵커]

우리 관객들이 굉장히 열정적이어서 외국의 그룹이나 이런 사람들이 오면 굉장히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서태지 : 맞아요.]

[앵커]

아무튼 그거는 제 취향이었으니까 제 얘기를 길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소격동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가요 프로그램에서.

[서태지 : 어저께.]

[앵커]

기분이 굉장히 좋으실 것 같아요.

[서태지 : 네, 아이유 씨가 했지만 제가 한 것처럼 기분이 되게 좋아요.]

[앵커]

그러면 아예 이참에 아이유 씨가 아니라 하더라도. 오늘 팬클럽 중에서도 저희한테 질문을 보내주셨는데 다른 가수한테 앞으로도 곡을 주실 생각이 있느냐 하는 질문도 있더군요.

[서태지 :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사실 아이유 씨한테도 곡을 줬다는 표현은 좀 다른 표현인 것 같고 제 노래를 대신 불러주게 된 거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혹은 또 정말 이 가수가 내 노래를 불렀으면 하는 가수가 분명히 나타날 것 같기는 한데요. 그렇게 되면 다 열려 있는 것 같아요.]

[앵커]

알겠습니다. 소격동의 주제를 가지고 여러 가지 얘기가 있습니다. 물론 이제 각각 다른 버전의 뮤직비디오도 물론 화제가 됐지만. 소격동이라는 곳 자체가 옛날에 기무사가 있던 자리기도 하고 또 가사 내용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일정부분 살짝살짝 비춰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거기에 어떤 정치사회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냐. 예를 들면 녹화사업이라는 것도 나온다는 말이죠.

[서태지 : 뮤직비디오에.]

[앵커]

녹화사업이라는 건 젊은 세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옛날에 문제가 있다고 정부에서 생각하는 젊은이들을 일찌감치 군대로 보내버리는 그게 녹화사업이었단 말이죠. 혹시 그런 것들을 다 이렇게 염두에 두고 정치사회적인 의미를 띄워서 하신 건가요?

[서태지 : 아니에요. 실제로 노래를 만들 때는 정치쪽은 전혀 아니었고요, 사회적인. 예를 들면 실제로 이 노래는 제 어렸을 때 예쁜 한옥마을에 대한 추억 그리고 그것들이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상실감 같은 정도만을 표현했어요. 그런데 뮤직비디오를 찍으면서는 저는 정말 그 예쁜 마을에 살았지만 실제로 제 마을에서 이렇게 쳐다보면 보안사가 있었고 민방위 할 때만 해도 정말 탱크가 지나가는 그런 동네였어요. 검문검색도 많이 했고. 80년대의 서슬퍼런 시대를 설명하지 않고는 이 소격동이라는 노래를 표현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그런 약간 이야기들이 계속 들어갔죠, 뮤직비디오에. 그 정도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노래는 정말 예쁜 마을에 대한 추억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소격동은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도 그래서 아까 들어오기 전에 어디인지 대충 알기는 아는데 인터넷으로 이렇게 주소를 쳐서 검색을 해 봤더니 지금 예를 들면 아트선재센터라든지 이런 옛날 마을. 가보셨나요, 최근에?

[서태지 : 최근이 아니라 자주 가요, 한 10년 전에도 갔고 최근에도 몇 번씩 갔고 그랬어요.]

[앵커]

노래 때문에?

[서태지 : 노래랑 관계 없이도 많이 갔었어요.]

[앵커]

그냥요?

[서태지 : 제가 원래부터 살던 마을이라서. 아무튼 이렇게 많은 얘기가 되고 그래서 옛날의 역사적 배경이나 이런 것들도 회자되고 그런 부분은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앵커]

가시면 차로 그냥 지나갑니까? 아니면 걸어다니십니까?

[서태지 : 소격동이요?]

[앵커]

네.

[서태지 : 제가 요즘 와이프 얘기를 많이 하는데 이번에도 와이프랑도 한번 갔었어요. 얘기 길어지는데 몇 초 주실 수 있어요?]

[앵커]

그냥 일단 해 보시죠.

[서태지 : 갔었는데 제 골목이 있어요. 제 골목에 한옥집이 쭉 이렇게 있고 T자로 이렇게 있었어요. 그런데 제 집은 다 주차장이랑 아트센터가 돼버리고 나머지 세 집이 남았더라고요.]

[앵커]

아직도요?

[서태지 : 거기 가서 기웃기웃하는데 아줌마가 '여기 막다른 길이에요'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옛날에 저기 살았거든요'라고 하니까 어, 서태지? 딱 그러는 거예요.]

[앵커]

아는군요?

[서태지 : '저를 어떻게 아시죠' 그러니까 '말썽 많이 피웠잖아.' 그래서 아, 죄송합니다, 이러고 들어가서 차 마시면서 옛날 얘기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있어요. 유년시절을 거기서 다 지냈어요.]

[앵커]

그렇게 마음대로 다니셔도 불편하지 않으시던가요?

[서태지 : 조심조심 다니죠.]

[앵커]

조심조심 안 하고 그냥 다닐 수는 없는 상황이겠죠?

[서태지 : 그거는 장소마다 달라요. 사람이 너무 많거나 그런 장소면 좀 조심하고 지방 같은 데는 그냥 가서 밥 먹고.]

[앵커]

이 질문을 왜 드리느냐 하면 일종의 신비주의의 대명사로 되어 계시기 때문에. 기왕이면 탈피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본인 생각은 어떤지요?

[서태지 : 저는 신비주의라고 계속 말씀을 하셔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제가 신비주의라는 것의 아직도 정의를 저조차도 이해를 못하고 있어요. 저는 음악하는 사람이니까 음악 만들고 음반 내고 공연하고 방송하고 홍보하고. 그냥 음악인으로서 할 것을 다 한다고 생각하는데 신비주의자라고 하기는 하세요.]

[앵커]

잘 안 나타나시니까.

[서태지 :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하면 제가 신비주의를 벗을 수 있을까요?]

[앵커]

아무데나 그냥 걸어다니시면 되지 않을까요? 소격동이든 어디든.

[서태지 : 그런 건가요, 단지? 그런 거라면 금방 신비주의가 없어질 것 같네요.]

[앵커]

언론 접촉도 가끔 하시고 그러면 되는 거겠죠, 뭐. 사람들이 일단 잘 안 보이면 신비주의라고 얘기를 하곤 하니까요.

[서태지 : 네, 맞아요.]

[앵커]

크리스말로윈의 가사를 보니까 산타가 등장합니다. 소격동하고는 전혀 다른 분위기인데, 곡이. 굉장히 좀 날카롭기도 하고. 그래서 소격동이 처음 나왔을 때는 서태지가 좀 변화하나 보다라는 얘기를 하다가 크리스말로윈이 나왔더니 또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본인은 안 변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서태지 : 어떤 부분은 안 변했지만 저는 계속 변하고 있고 변하고 싶은 사람인 것 같아요. 예전부터 음악이 계속 변화했고 제 성격이 한자리에 머무르는 거를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이번에도 소격동도 그렇고 크리스말로윈도 그렇고 곡마다도 변화무쌍하고 음반 자체도 저번 음반이랑 너무 다르고. 그게 제 성격의 규정인 것 같아요.]

[앵커]

아직 산타를 믿니. 몸만 커진 채 산타가 되었어. 내 뱃살도 기름지지. 산타는 뭘 상징합니까?

[서태지 : 이 노래의 산타는 권력자를 상징하죠. 그런데 나쁜 권력자나 교활한 권력자. 이것도 몇 초 주실 거예요? 생방송이라 저도…]

[앵커]

아니요. 그냥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서태지 : 일단 캐롤송 울면 안 돼라는 노래 있잖아요. 그 노래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만든 건데 어렸을 때부터 그 노래 듣다 보면 울면 안 돼, 산타는 우는 아이들을 매일 두번씩 리스트업해, 그리고 선물을 안 줘. 그게 너무 무서웠었어요. 아이들이 슬프면 울어야 되는데 우는 걸 어떤 권력이나 공포로서 제압하는 것. 이게 과연 맞는 일인가. 산타는 좋은 사람일까, 이렇게 해서 동화 이야기처럼 은유적으로 많이 푼 노래예요. 그래서 산타는 어쨌든 나쁜 사람으로 나오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거를 어떤 권력자로 생각할 수도 있고 직장상사가 될 수도 있고 교활한. 그런 내용을 동화처럼 예쁘게 풀었어요.]

[앵커]

내용을 보면 밤새 고민한 새롭게 만든 정책 어때. 나는 불순한 스펙이래, 리스트에서 제외.

[서태지 : 랩하시는 것 같았어요. 잘하셨어요.]

[앵커]

그런 얘기는 생전 처음 들어봅니다.

[서태지 : 그런데 방금 발음도 좋으셨고요.]

[앵커]

제가 출신이 이러니 발음이야 그런데. 그랬던가요? 좋습니다. 그러면 제가 앞으로 노래방 가면 랩을 한 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서태지 : 랩이 경건해질 것 같아요]

[앵커]

사회비판, 정부비판, 이런 포괄적인 해석도 있지만 또 복지정책, 세월호 논란, 이런 구체적인 얘기까지 분석이 막 들어가더군요.

[서태지 : 아무래도 요람부터 무덤까지라는 가사 그리고 정책 얘기가 나왔을 때 그렇게 느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앵커]

그럼 그런 분석에 동의를 하신다는 말씀이시죠?

[서태지 :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리스너들의 판단이고 그게 음악의…]

[앵커]

그런데 옛날에는 예를 들면 교실이데아라든가 이런 노래들은 굉장히 직선적이었잖아요.

[서태지 : 그렇죠.]

[앵커]

그러니까 다른 해석을 별로 허용하지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나온 곡들은, 글쎄요. 저만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는데 좀 중의적인, 보다 좀 은유적인. 그래서 모든 것은 사실은 다 대입할 수 있는. 일부러 그런 건가요? 아니면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되셨나요?

[서태지 : 아무래도 동화 콘셉트기 때문에 동화처럼 스토리를 만들고 실제로 비현실적이고 판타지한 내용들이기 때문에 더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앵커]

가사를 쓰실 때 막 치밀하게 계산해서 쓰시나요, 아니면 떠오르는 대로 쓰시는 편인가요?

[서태지 : 양쪽 다인 것 같아요. 어떨 때는 쭉 써나갈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치밀하게 한 자, 한 자, 한 마디, 단어, 발음까지.]

[앵커]

크리스말로윈은요?

[서태지 : 크리스말로윈도 그런 예예요. 하나하나까지 신경 써서]

[앵커]

하나하나 어떤 의미를 담을 것인가까지 신경 써서요?

[서태지 : 그렇죠.]

[앵커]

소격동은 전자에 속하나요?

[서태지 : 그렇게 되네요. 약간 편안하게 얘기했던 것 같아요.]

[앵커]

그러면 본인이 생각하시는 크리스말로윈에 대한 분석은 제가 오늘 얘기한 것에서 다 나온 건가요?

[서태지 : 아니죠, 더 많은 분석을 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앵커]

그런가요? 어떻게 분석하기를 가장 원하시나요?

[서태지 : 그냥 선과 악이라고 보통 규정되어 있는, 우리가 알고 있는 통념적인 걸 한번 뒤집어봐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만 하셨으면 하는 정도의 바람이 있어요.]

[앵커]

알겠습니다. 듣고 보니까 좀더 어려워진 듯한 느낌이 드네요.

[서태지 : 그런가요.]

[앵커]

알겠습니다. 사회 문제에 어차피 관심이 많으시잖아요.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3집 앨범부터 그런 평가를 많이 받아왔습니다.

[서태지 : 평가는 많이 받았지만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제가 그쪽에 전문지식이 없어요. 저는 그냥 음악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전에 컴백홈이든 교실이데아든 제가 겪었던 일들 또 제가 약간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그냥 가사로 옮기고 좀 직설적으로 표현하다 보니까 많은 분들이…]

[앵커]

그게 20대 때의 어떤 문제의식이었다면 지금은 40대 문제의식에 의해서 이런 곡들 수 나올 수 있다, 그렇게 해석하면 되겠군요?

[서태지 : 맞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아무튼 이번 앨범이 과거보다는 조금 더 감성적인 측면이 더 강조가 된 측면이 있어서 그런지 편하게 느끼시는 분도 있고 그런 가운데서도 이런 날카로움을 여전히 잃지 않았구나 하는 이런 걸 표시해 주는 분들도 많이 계신 것 같습니다. 조용필 씨께서 많이 조언을 해 주셨다면서요?

[서태지 : 많이 조언해 주신 게 아니라 최근에 한번 찾아뵙고 제가 결혼도 하고 이제 한국에 정착도 하고 그래서 되게 오랜만에 뵀었어요. 그래서 인사도 나누고 특히 공연쪽에 많은 말씀 나눴었는데. 한 가지 기억나는 부분이 있는데요. 조용필 선배님께서 공연을 위해서 뮤지컬 같은 걸 많이 보신대요. 브로드웨이 같은 데 가셔서. 그런데 어떤 뮤지컬을 12번 정도 보셨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정말 재미있으셨나 보다 했는데 한 번은 무대만 봤고 한 번은 조명만 봤고 한 번은 음향만 봤고 이렇게 12번을 보셨다고 해서 저는 그때 약간 소름이 돋았다고 할까요? 나는 너무 게을렀구나라는 큰 배움, 깨달음 같은 거를 얻었어요.]

[앵커]

하긴 음악도 드럼만 듣고 베이스만 듣고 기타만 듣고 그런 버릇을 가진 분들도 있거든요.

[서태지 : 아주 좋은 거죠. 그렇게 들으셨나 봐요?]

[앵커]

저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서태지 : 대단하십니다.]

[앵커]

이거는 잘난 척하려고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서태지 : 새로운 발견인데요.]

[앵커]

96년 1월에 은퇴하셨을 때 그때는 9시 메인뉴스에서 톱으로 보도했을 정도였습니다. 혹시 그 이후에 정말 그냥 음악계를 완전히 떠나버렸더라면 하고 생각한 적은 없으시나요?

[서태지 : 실제로 그때는 떠나버릴 각오를 하고…]

[앵커]

왜냐하면 안 돌아올 수도 있다고 모두들 생각했거든요.

[서태지 : 그렇죠. 실제로 저도 그랬어요. 저는 안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고 정말 모습 하나 비치지 않고 그냥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물론 지금 생각하면 제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조금 힘들다고 감당을 못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멋있고 박수칠 때 떠나는 게 얼마나 멋있을까, 이런 어린 마음도 있었고. 지금도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 선택을 했을 것 같고요. 다만 지금 나이었으면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앵커]

그런가요. 요즘 재결합해서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god도 다시 나왔고 외국에는 레드 제플린도 그렇고 이글스도 그렇고 결국은 다시 재결합해서 열심히 공연들을 하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나요?

[서태지 : 아니에요. 예전부터도 가끔 그런 얘기들은 나눠왔었어요. 그런데 제일 걸림돌이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 정말 우리는 행복하고 아름답게 공연도 하고 그랬었는데 그 모습을 혹시 해쳐서 실망을 주면 어떻게 할까 하는 게 제일 큰 걸림돌이었고 그런데 그거를 아직도 극복을 못한 것 같아요. 나이가 먹을수록 더 못 할 것 같다는 자신감도 떨어지기도 하고.]

[앵커]

그건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도 있는데요. 나이가 들어서…물론 음악은 그때 음악을 그대로 할 수는…아니, 그대로 해야죠. 요즘도 보면…

[서태지 : 음악이라면 할 수 있죠.]

[앵커]

그런데 춤추는 분들이 좀 힘들 것 같기는 합니다.

[서태지 : 맞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죠. 저도 춤을 춰야 되고 어렸을 때는 앙증맞은 모습도 있고, 난 알아요 같은 경우에. 그런 것들을 지금 잘못 했다가는 그때의 추억에 금이 가게 할 수 없다는 그런…]

[앵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그때 존재함으로써 빛났지, 그 이후에 계속 서태지와 아이들이 계속 지속한다는 것은 어쩌면 운명적으로 아니었을 가능성, 이런 것도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서태지 : 그렇죠. 운명적으로 따지면 맞을 수 있죠.]

[앵커]

저희가 우리 시청자분들께 질문을 받았는데 너무 많이 와서 제가 이걸 다 해 드릴 수는 없고요. 몇 가지만 좀 질문드리면서 마쳤으면 좋겠는데요. 마친다고 하니까 혹시 서운하지 않으신가요?

[서태지 : 서운하죠. 저는 밤새도록 얘기하고 싶어요.]

[앵커]

정말입니까?

[서태지 : 실제로 손석희 앵커님 팬이기도 하고 예전부터 너무 좋아했었어요. 실제로 JTBC 뉴스 보면서 희망도 얻고 위로도 얻고 그랬어요.]

[앵커]

방송용 멘트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서태지 :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앵커]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무척 기다려 왔습니다.

[서태지 : 감사합니다.]

[앵커]

아직 우린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컴백홈의 가사 일부죠. 스크린도어 광고에 사용했는데 이제는 3, 40대가 된 팬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인가라고 김동원 씨께서 질문 주셨습니다.

[서태지 : 아직 우린 젊기에라는 문구를 이번에 컴백을 하면서 약간 사람들한테 어필을 많이 하면서 컴백을 했었어요. 그 이유가 제가 그 가사를 썼을 때는 아마 22, 23살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그 가사를 지금 다시 보니까 아직 우리는 젊구나. 진짜 그 느낌이 확 다르게 다가오는 건데. 저희 팬들도 3, 40대가 됐잖아요. 그래서 제가 듣기에는 이 희망을 팬들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다시 그 문구를 꺼내들었어요. 실제로 그런 세대들인 것 같아요, 지금 저희 세대들이.]

[앵커]

딱 그런 세대이기도 하죠. 사실 그맘때 팬들이나 또 주인공인 서태지 씨도 마찬가지이실 것 같고요. 다음 앨범에 같이 작업해 보고 싶은 가수는 누구인가?

[서태지 :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앵커]

그렇습니까, 진짜로?

[서태지 : 네, 실제로 이번에도 아이유 씨 이후에는 떠올리지 못했는데 아직 나오지도 않은 곡을 떠올리기는 어렵네요.]

[앵커]

랩 잘하는 사람이 앞에 있지 않습니까?

[서태지 : 해 주실래요, 콜라보레이션? 아마 팬들이 굉장히 많이…손석희와 서태지의 뱀파이어, 어떠세요?]

[앵커]

부조 안에서 저를 비웃는 소리가 많이 들립니다.

[서태지 : 그러네요.]

[앵커]

한 가지만 더 마지막으로 질문 드리겠습니다. 사실 저도 더 오래 말씀 나누고 싶은데요. 다음 기회가 분명히 있으리라고 믿고요.

[서태지 : 좋죠.]

[앵커]

다시 태어나도 서태지로 태어나고 싶은가?

[서태지 : 그럼요. 물론이죠.]

[앵커]

김도희 씨의 질문이었는데.

[서태지 : 제 인생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면 되게 익사이팅하고 좀 버라이어티하고 그래요. 그래서 저는 예전부터 이 질문을 받았을 때마다 무조건 다시 꼭 또 해 보고 싶다, 더 잘해 보고 싶다라는 생각 갖고 있어요. 죽을 때 웃으면서 서태지 잘했다, 이렇게 죽고 싶어요.]

[앵커]

알겠습니다. 제가 가끔 삼청동, 소격동 이쪽도 자주 걸어다니는데요.

[서태지 : 그러세요, 북촌마을이요?]

[앵커]

네. 언젠가 소격동 어디선가 길에서 우연히 만나뵙길 바라겠습니다.

[서태지 : 감사합니다.]

[앵커]

고맙습니다, 오늘.

[서태지 : 감사합니다.]

[앵커]

서태지 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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